겨울호 다섯번째 주제 : 용서
1.
“안녕하세요. 이번 인터뷰에 흔쾌히 동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인터뷰에 대한 주제는 ‘용서’입니다. 용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얼마 전 절에 방문했는데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이라는 수행법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보살 수행의 여섯 가지 방법인 육바라밀(六波羅蜜) 중 하나로 상대방의 어떠한 행동에도 원망심을 내지 말라는 수행법이죠. 불교에서의 용서는 상대방을 위해서라기보다 자신의 마음의 평온과 행복, 나아가서는 깨달음을 위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말해요. 달라이라마 님의 용서라는 책에서 나오는 구절인데,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나간다면, 나 자신의 마음의 평화만 깨어질 뿐이다. 하지만 그를 용서한다면 내 마음은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아마 용서는 행복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싶네요."
2.
“그를 용서할 생각은 없나요?’
“용서요? 당신이 제 입장이 되었어도 그런 소리가 나왔을까요? 아내를 잃고 애지중지 키웠던 소중한 딸이었단 말입니다. 제 아빠 힘들까 봐 오히려 자기 힘든 걸 표현하지 못한 그런 착한 딸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감히... 그런 딸을 죽인 그 자식을 제가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겠어요? 며칠 내내 술만 퍼마시고 있던 저에게 친구가 말하더군요. 잊으라고, 잊으며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는 나를 딸도 바랄 거라고. 세상이 숨기려 해도, 세상이 잊으라 말해도 어떻게 감히 제가 그걸 잊으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흔히들 말하죠. 용서란 게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평생을 복수와 보복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현실이 지옥 같을 거라고. 아니요. 저는 진실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그 현실이 아마 지옥이었을 거에요. 기자님,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복수를 택한 것이, 그 결과로 이 철창 안에서 남은 생을 보내야 한다 해도, 이런 아빠를 보고 하늘에 있는 제 딸이 슬퍼할지언정,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3.
안녕하세요 기자님. 기자님이 ‘용서’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메일을 발송합니다. 혹시 저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주실 수 있을지요?
며칠 전 동창회를 다녀왔어요. 근 10년 만에 보던 동창 사람들이었죠. 사실 별로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같이 가자는 친구를 뿌리칠 수 없어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를 알아봤는지 저 멀리 제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한 여자를 보고 저는 경악하고 말았어요. 저의 고등학교는 걔 때문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거든요. 은근한 따돌림은 당연했고, 틈만 나면 괴롭힘을 당했어요. 웃으며 잘 지냈냐고 제 어깨에 손을 두르는 그 여자를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습니다. 네가 나한테 친한척할 입장이 되지 않지 않냐고, 그런 제게 그 여자는 말하더라고요.
“에이, 어렸을 때 조금 장난친 거로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어? 미안해 미안해, 화해하자.”
“뭐라고?” 정색하는 저를 보고 그 여자는 다시 입을 열었어요.
“아니 미안하다니까? 뭘 그리 예민하게 굴어?”
순간 할 말이 없더라고요. 옆에 있는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바로 그 자리를 나와 집으로 향했습니다. 화를 참기 힘들었어요. 미안하다고요? 미안하다는 그 한마디로 제가 겪었던 고통과 상처는 없던 일이 되는 건가요? 미안하다는 사과를 들었다고 저는 그 여자를 용서해야 하는 건가요? 애초에 그 사과가 정말 진심이었을까요?
한참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껏 내가 행했던 사과는 정말 사과였을까 하는 의문이 말이에요. ‘미안해’라는 말에는 강요가 존재하는 거 같아요. 내가 사과를 했으니 당연히 너는 받아들이고 나를 용서해야 한다는, 그런 강요 말이죠. 제가 지금 느끼는 이 서러움과 억울함도 분명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시간 속에서 나로 인해 누군가가 느끼는 감정이겠죠? 기자님, 어쩌면 ‘용서’는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단어일지도 모르겠어요.
4.
“엄마, 엄마에게 용서는 뭐야?”
한잔 두잔, 술과 함께 밤도 깊어지는 어느 날.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엄마에게 물었다.
“용서라... 너희 할머니가 너 10살쯤에 돌아가신 건 알지? 벌써 20년도 지난 일인데, 나는 그날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해. 왜 너를 낳고 나이가 들어서도 엄마에게는 한없이 어리광만 부리고 짜증만 내는지. 그날도 정말 별거 아니었어, 정말로 별거 아니었는데 엄마가 할머니한테 짜증을 한껏 부렸어. 저리 가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엄마가 뭘 아냐고. 그렇게 너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왔지. 혼자 있는 할머니를 그렇게 내버려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그날 밤,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았어. 급하게 너희 아빠랑 병원으로 갔는데, 할머니를 본 순간 정말 너무나도 무섭더라고. 힘겹게 손을 내미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는데, 할머니가 뭐라 했는지 아니? 미안하대. 용서해달래.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어.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건 나였는데, 용서해달라고 해야 하는 건 나였는데 말이야. 엄마에게 용서는 말이야, 평생의 한이야. 평생의 후회고.”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보니 뭐라 위로해줘야 할지 몰라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용서’는 이토록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용서는 과연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든 결코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세상에 완전한 용서는 없을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용서, 순간 이 기사의 제목은 이것 말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from.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