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 다섯째주, OHMJ : 우리의 용서

겨울호 다섯번째 주제 : 용서

by 어느 저자

카페에선 노래가 흘러나왔다

‘…I’m fine thank you thank you and you 우리 옛날에 사랑을 했다니 우스워…’

정곡을 찔린 기분이다. 우린 속이 뻔히 들어다 보이는 표정을 하고도 짐짓, 모른척 하기 바빴다.

우스운 상황이다. 마침표인지, 반점인지 애매한 우리의 관계. 손을 뻗는다면 이 온점에 꼬리를 남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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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을 걷듯 휘적휘적대며 걷는다. 점점 무거워져가는 공기들은 시침마저 붙잡아 시간이 멈춰버린듯 했다.

사람사이 관계를 죽이는 건 애매함.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그런 상황들. 띄어쓰기마저 아껴보낸 사랑들이 이제는 긴 공백만이 남은 대화가 오고갔다.

그렇게 어느 결론하나 나지 않은 우리는 꼭 해야 할 무언가를 남겨 놓은 채로,

명백한 그 일을 가운데 두고 한 평생 목줄을 반지름으로 하는 원을 벗어나본적 없는 개처럼 빙빙 제자리를 돌 뿐이었다.

우리의 세계는 딱 그만큼일까 그 줄을 끊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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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추억과 기억을 반추해 본다.

의미를 붙인 나날들이 일년을 채워 갈때쯤, 우리는 작은 상처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한번 들여다보고 상처의 존재만 알아도 스스로 치유되던 작은 상처들을 안일함으로 덮어버렸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나중에 말하지 뭐’, ‘에이 뭐 이정도로 상처 받겠어’ 하는 안일함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새 우리의 맘을 좀 먹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그걸 알고도 그저 지켜만 봤다.

네가 소복히 쌓인 내 마음에 자꾸 안일함이 앉으려 자리를 밀어내려하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래, 작은 일 이라도 그렇게 넘어가면 안됐는데. 같이 그 문제를 마주하고 서로 사과하고 용서 했어야 했는데.

용서를 구하는게 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생각될때쯤, 우리는 이 잠시간의 접점을 끝으로 서로의 그래프를 그려야겠지.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전과 같을 수 있을까? 이미 너무 얽혀 버린 상황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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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익- 맥주를 한캔 깐다. 차가움을 견디지못한 공기들이 맺혀 흐른다. 나는 가만히 그 물방울이 흐르는걸 바라보며, 이처럼 차가웠던 새벽이 얼마 만인지 물방울들을 보며 생각한다.

나는 한참을 그 캔을 쥐고 마실생각도 하지 않은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불도 켜지 않은채 간간히 들리는 밖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생각속으로 빠져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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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 울리는 핸드폰. 분명 너의 연락임을 안다. 너도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무거운 새벽을 보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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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 / 기형도


이제 내 마음을 더듬거리며 문고리를 찾아야겠지.

한 없이 널브러진 우리의 사랑을 주워 넣고 문을 잠가야겠지.

향할곳 없는 우리의 마음은 이미 빈 것 이라 가득 주워넣어도 텅 비겠지

오늘 새벽은 너의 연락을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



from.OH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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