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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Oct 22. 2021

[여름호] 다섯째주, 만춘 : 다시, 현수의 이야기

여름호 다섯번째 주제 : free(자유주제)

 부엌에 난 작은 창으로 노을빛이 파고들었다. 현수는 현관 앞에 앉아 운동화 끈을 고쳐 묶었다. 아침에 달리는 것을 선호하는 현수였지만, 웬일로 늦잠을 자버렸다.


 일층으로 내려온 현수는 스트레칭을 하고 가볍게 뛰기 시작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길을 따라 달렸다. 편의점이 있는 모퉁이를 돌아서자 저 멀리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현수는 참지 못하고 고양이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녀석은 버려진 의자 위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무슨 소중한 물건이라도 품은 것처럼 두 손을 오므린 채 엎드려서 말이다. 현수는 그 앞에 쪼그려앉아 조용히 녀석을 지켜봤다. 작은 숨을 내쉴 때마다 벌렁이는 조그만 콧구멍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현수는 유난히 고양이들과 자주 마주쳤다. 심부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혼자 놀고 있던 놀이터에서, 아파트 현관 출입구 옆에서.


 가끔은 쓰다듬어 주길 바라며 다가오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현수는 혹시 자신에게서 고양이가 좋아하는 냄새라도 나는 걸까 싶어 코를 킁킁 거려 봤지만 고양이가 아닌 현수는 알아챌 수 있을 리 없었다.


 늦은 저녁,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놀이터 풀숲 아래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새끼 고양이였다. 눈병이라도 걸린 건지 한쪽 눈에 눈곱과 고름이 가득했다.


 혹시라도 어미가 찾아올까 봐 한참을 기다려 봤지만 어미는 나타나지 않았다. 병원에 데려가기에는 치료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집에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현수는 급한 대로 종이 박스를 주워왔다. 새끼 고양이를 박스에 담아 아파트 근처 담벼락에 방치되어 있던 구둣방 컨테이너 안에 넣어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현수는 종이컵과 참치캔을 챙겨 새끼 고양이가 있는 컨테이너로 향했다. 다행히도 컨테이너 문을 열자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현수는 종이컵을 찢어 녀석이 먹기 좋은 정도의 물그릇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참치캔을 따서 기름을 따라내고는 녀석에게 건넸다. 밤사이 목이 탔는지 녀석은 종이컵에 코를 박고 허겁지겁 핥아댔다. 참치캔을 먹기에는 너무 어렸는지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더 오래도록 녀석과 있어주고 싶었지만 학교에 지각할 수는 없었다. 현수는 컨테이너 문을 잘 닫아두고 학교로 갔다. 그렇게 한동안 현수는 등교 전에 컨테이너에 들러 녀석의 물을 갈아주고, 먹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챙겨주었다.


 평소보다 학교를 빨리 마친 날이었다. 현수는 녀석에게 주려고 급식에 나온 우유를 챙겨두었다. 컨테이너로 가는 동안 두 손으로 우유팩을 감싸 녀석이 먹기 좋도록 미지근하게 만들었다. 들뜬 마음으로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 컨테이너 안은 조용했다. 녀석이 울지 않았다.


 현수는 컨테이너 문을 닫아버렸다. 녀석의 시체를 묻어주어야 하나 했지만 차마 다시 문을 열 자신이 없었다. 무서웠다. 미안했다. 슬펐다. 현수는 집으로 도망쳤다.


 도로 공사 때문에 컨테이너가 치워질 때까지 현수는 그곳을 피해 다녔다. 비싼 돈이 들더라도 엄마에게 부탁해볼걸. 녀석을 길러줄 수 있는 친구라도 찾아볼걸. 더 이상 현수의 주변에는 고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현수가 고양이들을 외면했다.


 시간이 흘러 열아홉 현수와 지현이 함께 하교를 하던 길이었다.


 "어, 고양이다. 현수는 고양이 좋아해?"


 현수는 지현에게 녀석을 돌봐주었던 일과 그때의 미안한 마음 때문에 고양이를 마주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래도 그 새끼 고양이는 현수가 고마웠을 거야."


 지현의 말을 들은 그날 밤, 현수는 고양이 꿈을 꿨다. 다 자란 고양이였지만 녀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현수의 다리에 몸을 비비고는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고개를 내밀었다. 현수는 녀석을 쓰다듬어 주면서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녀석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야옹거렸다.


 그 후로 현수는 다시 고양이들과 자주 마주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렇게 쪼그려앉아 고양이를 지켜보고 있다. 현수는 벌떡 일어나 편의점으로 향했다. 고양이 전용 통조림을 하나 산 현수는 의자 위에서 졸고 있던 녀석에게 돌아갔다.



from.만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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