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밖에 없는 울산 최고의 코스
2025년 8월 30일 토요일 새벽 5시, 무거운 몸을 힘들게 일으킨다. 그날은 엄마와 함께 그토록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해파랑길 7-8코스를 가는 날이었다. 해파랑길은 총 50코스로 되어있는데, 코스를 즐기는 방법은 크게 2가지이다. 첫 번째는 주말마다 1~2코스씩 가는 것이고, 두 번째는 1~2달 정도 시간을 확보하고 1코스에서 50코스를 쭉 다녀오는 방법이다. 두 가지 방법 전부 매력적이지만, 엄마께서 집안일과 식사 준비를 매일 하시고, 나도 평일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충분하게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은 주말, 토요일이나 일요일뿐이다. '힘들지 않냐.'는 주변의 걱정도 있었지만, 이제 일주일 아니면 이주에 한 번씩이라도 한 코스씩 다녀오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힐링이 될 정도로 몸에 적응이 되었다.
엄마께서는 최근 몸이 아픈 곳이 여러 곳곳에 생기면서 한의원과 병원을 몇 달 동안 들락날락하셨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고혈압, 고지혈증, 척추측만증, 목디스크, 무릎통증, 당뇨직전의 단계까지 온몸에 구석구석 병이 없는 곳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1~2년 전에 은퇴를 하시고 나서부터 몸이 긴장이 서서히 풀어지면서 염증이 온몸 곳곳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음에도 제일 신경 쓰이는 부분이 머리, 두통이라고 하셨다. 머리가 종종 수시로 아프실 때마다 나도 걱정이 돼서 '해파랑길 걷기를 잠시 중단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도 끝도 없이 해보았다. 하지만 엄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몸을 쓰지 않으면, 걷지 않으면 더 아프다.'라고. 슬펐다. 우리 둘 딸을 사랑으로 키우시느라 고생하셨던 모습이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큰딸이지만 엄마 속을 썩인 적이 많아서 참으로 죄송드렸다.
다행히도 해파랑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로 엄마께서 건강이 조금씩 호전되고 계셨다. 두통은 여전하셨지만. 자연 속에서 파묻힌 채 바닷길을 따라 걷고, 산길을 따라 걷기 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엄마께서 몸이 아픈 것이 조금 덜하시다고 말씀하셨다. 이 해파랑길을 조금씩 꾸준히 계속해서 걸어서 마지막 50코스에서는 거의 다 회복되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특히 두통이 심하신 것은 우선적으로 해결이 되었으면 한다. 마음 같아서는 병원에 가서 MRI 검사를 받아 뇌에 이상이 있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빨리 받고 싶지만, 아직 엄마께서는 검사가 무섭다고 하셨다. 엄마께서 하기 싫은 것은 되도록 권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한테 병원에 가자고 설득하는 것보다 우선 엄마의 의견을 따라보기로 했다. 대신 운동으로 걷기를 꾸준히 해서 서서히 건강이 회복되기를 바랄 뿐이다.
8코스는 처음부터 '염포산입구'가 등장하면서 '등산'이 시작이 된다. 8월 30일 뜨거운 더위와 습기가 한꺼번에 내 몸 안에 몰아치며 들어왔다. 엄청난 습기와 뜨거운이 공존하는 찜질방에 있는 것 같은 그날, 뜨거운 통증이 너무 커서 모기한테 물린 통증과 가려움마저 금방 사그라드는 느낌이 나는 그날이었다. 산을 코스마다 탔기 때문에 힘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역시나 힘들어도 때로는 힘들지 않더라도 올라갈 때만큼은 그저 힘들게 느껴진다. 이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천천히 깊이 있게 하면 좀 나아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힘들면 중간에 잠시라도 바위를 찾아서 앉거나,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는 것을 추천한다. 어차피 오늘 안으로 종점지에 도착하면 되니까 말이다.
산을 내려오고 나서 물이 다 떨어질 때쯤, 우리 모녀는 '울산대교전망대'에 도착했다. 울산대교전망대 모습은 지어진 지 몇 년 되어 보이지 않았다. 새 건물 같았다. 안에 물 한 모금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정수기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감사하고 다행히도, 울산대교전망대 1층에 안내데스크와 울산대교전망대 기념품관, 그리고 정수기가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 순간 물을 물통에 얻어서 마시기만 한다면 생명을 다시 되찾는 듯할 것 같고, 살 것 같았다. 냉수를 마시자마자 시원함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데 '여기 안에 와보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산대교 전망대는 대한민국 대표 조선소와 항구 전경을 전부 다 볼 수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 올라왔을 때 탁 트인 하늘 아래에서 멋지게 바다를 차지하고 있는 조선소들과 항구들을 볼 수 있었는데,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한국이 자랑스럽기도 했고, 큰 배들과 조선소와 바다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의 그 아름다움에 입이 벌어졌다. 심지어 울산의 발전이, 국가의 발전이 한눈에 보였을 때 잠시동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전망대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나면 더위와 온몸의 찐득거림은 거의 사라진다. 아까 등산을 했던 때와 달리 뜨거움 힘듦에 지쳐있었던 몸도 다시 일으켜지고, 머리도 서서히 맑아지기 시작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1층에 내려와서 화장실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이번에 8코스는 길이 11.8km, 소요시간 약 4시간 30분, 난이도 보통이다. 코스는 크게 염포산->울산대교전망대->방어진항->대왕암공원->일산해변입구로 구성되어 있다. 울산대교를 빠져나오면 또다시 방어진항에 가기 전 숲 속길이 꽤 산책하게 좋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 길이 참으로 아름다워서 8코스의 마지막도 기대가 되었다.
이번코스는 울산대교전망대를 지나면 몇십 분에 한 번씩 화장실과 편의점이 곳곳에 사용하기 가능할 수 있게 설치되어 있다. 숲 속 길과 수산물 경매시범, 다양한 고기 잡기 이벤트로 볼거리가 많은 '방어진항'을 지나가면, 내가 제일가고 싶었던 그 장소가 드디어 나온다. 이번 8코스의 꽃이라고 불리는 '대왕암공원'이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몇 년 전에 가족과 울산 대왕암에 놀러 간 추억이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때당시 대왕암 쪽에 출렁다리를 처음으로 개통을 했는데 그 출렁다리를 건너고 바닷길을 따라 들어간 대왕암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웅장함과 멋짐을 한껏 뽐내고 있었고 '또 여기 와야겠다.'라고 다짐한 유일한 관광지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오늘로부터 몇 개월 전에 또다시 한번 지인과 함께 울산 여행을 하면서 두 번째 대왕암을 방문했다.
대왕암공원에 대해서 신비한 전설이 있다. 대왕암 바닷속에서는 커다란 용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그런데 신라시대 삼국통일을 완성시켰던 문무대왕은 왕비가 죽고 나서, 그 용은 문무대왕을 따라 호국룡이 되어서 울산 동해의 대암 밑으로 깊숙이 잠겨버렸다.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그럴듯하다. 용이 실제로 살 것 같이 기암괴석의 웅장함과 거대함이 돋보이는 장소이다.
대왕암공원에는 '4가지 코스'가 있다. 그중에서 '전설바위길'은 가족과 같이 갔었고, 소나무가 우거진 숲, '송림길'은 지인과 같이 갔었으며, 이번에 8코스는 '바닷가길'로 가는 코스이다. 마지막은 '사계절길'이 있다. 전설바위길은 말 그래도 바위길과 출렁다리를 이용해서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를 볼 수 있다. 송림길은 1만 2천 그루의 소나무 사이로 이어진 산책로이다. 마치 동화 속 비밀의 숲에 있는 듯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제일가고 싶었던 그 길, 바로 바닷가길이다. 대왕암공원 해안선을 따라서 슬도까지 이어지는 바닷가길 코스는 시원한 파도 소리를 벗 삼아서 걸을 수 있는, 말 그대로 최고의 해안 산책로이다. 엄마와 나는 해파랑길 8코스를 통해서 '대왕암 해안 산책로'를 걸을 수 있었다.
해안 산책길로 걷다 보면 저 멀리 기암괴석 대왕암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15,000그루 해송이 어우러진 대왕암공원까지 방문하면 금상첨화다. 특히 대왕암공원은 해송 덕분에 그늘이 져 있기 때문에 시원하게 산책하듯이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8코스에서 대왕암 해안길로 들어오기만 하면 파도가 치는 바닷가 더불어 거대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대왕암과 사랑에 푹 빠진다. 여기서 시간을 보내면 1~2시간은 순식간에 그냥 지나간다. 그 정도로 멋진 곳이다.
대왕암에서 사진을 실컷 찍고 이 바위 저 바위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마음컷 힐링하다가 일산해변 쪽으로 길을 갈 때는 송림길로 그늘진 곳으로 천천히 갔다. 8코스는 나에게 '사랑'이었다. 누구나 푹 빠질 수밖에 없는 사랑말이다.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와서 더 좋다고 말이다. 바로 나의 엄마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와 나는 해파랑길을 처음시작했을 때부터 늘 함께했다. 물건을 챙길 때 꼼꼼함이 별로 없는 나와는 달리 엄마께서는 부지런하게 잘 이것저것 챙기신다. 물, 간식, 약, 우산, 양산, 수건, 물티슈, 여벌옷 등등 가방은 꽉 차지만 엄마의 애정도 같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해파랑길을 버티면서 걸을 수 있는 것도 전부 엄마의 정성이 들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엄마께는 늘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함을 가지고 있다.
'일산해변'으로 내려오면 관광객들이 선호할 만큼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잘 구비되어 있다. 부산에 해운대나 광안리 해변과 같은 느낌과 언뜻 나서 좋았다. 이렇게 일산해변에 있는 해파랑길쉼터에서 우리 모녀는 종착지를 찍었다. 해파랑길 1코스와 8코스에는 '해파랑길 쉼터'가 있다. 해파랑길 쉼터란 곳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건물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쉼터 안내원이 한분이 문을 열고 나오시면서 아주 인자한 미소와 함께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시원한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 더위를 식히면서 조용하게 차 한잔 마셨다. 안내원 분들께서는 질문이 많으셨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냐, 8코스 인증한 것을 보여주면 기념품을 줄 수 있는데 받겠느냐, 인증숏 사진 폴라로이드 하나 찍겠느냐, 등등 우리에게 이것저것 관심을 보이셨다.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아서 거절을 좀 했다. 하지만 마음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때 우리 모녀에 서서히 눈에 들어온 두 분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몰랐는데 한분은 20대 정도 청년으로 보였고, 또 한분은 나이 지긋한 중년에서 노년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이었다. 그 두 분의 얼굴빛은 완전히 햇빛에 노출이 되어서 타버린 구릿빛으로 물들여져 있었는데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에다가 어디서 막노동을 하고 오신것 같은 지친 표정까지. 처음에 별 신경 쓰지 않았던 이유는 마지막 종점지에서 우리 모녀가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지치면 타인에게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중년에서 노년쯤 되어 보이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하면서부터 조용해서 딱딱했던 분위기가 얼음이 깨져 녹듯이 완전히 풀어졌다. 방금 전만 해도 청년분은 계속 어딘가로 전화를 하고 있었고, 중년분은 안내원분과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 뒤에 나이 드신 남성분의 시선이 우리 모녀에게 다가온 것이다.
"몇 코스까지 지금 하고 오신 거예요? 어디서 오셨어요?"
그때부터 두 분의 남성과 우리 모녀가 신나게 이야기가 오고 갔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여행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이유로 이 해파랑길을 걷는지 등등. 알고 보니 두 분의 관계는 부자지간이었고, 1코스부터 50코스까지 순서대로 한 것이 아니라, 50코스에서 1코스로 역순으로 해파랑길을 걷고 계시는 중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모녀처럼 1~2주일에 한번, 주말에 가는 방법이 아닌,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로, 숙박을 하면서 해파랑길을 걷고 내려오셨던 것이다. 하루에 1코스나 1~2코스를 해내다니. 왜 그분들께서 얼굴빛이 거의 태닝급 이상의 수준이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시원한 가을이나 겨울, 그리고 그렇게 덥지 않은 봄을 놔두고 왜 8월에 그렇게 뜨거운 날씨에 시작했는지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그저 처음에는 두분이 더위를 잘 견디고, 인내심이 보통사람들보다 강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집중해서 끝내버리겠다는 추진력과 결단력이 돋보였다고 할까.
그 이후로는 아드님은 어디로 바쁘게 계속 통화 중이었고, 아버지는 우리 모녀와 쉴 틈 없이 계속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때부터 이들 부자지간에 알게 된 사실이 또 여러 개 있었다. 알고 보니 20대 청년은 군대 입대 전에 해파랑길 도전을 했다는 것이었고, 아버지는 그의 말에 따라 거절하는 것 없이 아들에 뜻에 따라 같이 와주었다는 점이다. 충청도에서 왔고, 8월 뜨거운 여름 내내 50코스부터 9코스까지 해내고 지금 우리 모녀를 만난 것이다. 참으로 뜨거운 부자간의 여정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그 아버님께서는 지친 표정과는 다르게 유쾌한 말솜씨도 드러내셨다. 그냥 한 말씀인데 그 말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재밌었다. 해파랑길 계속해보니 멋진 것은 잘 모르겠고, 산과 바다밖에 없어서 그곳이 그곳 같다고 하시는 말씀. 아들과 함께 다니고 있지만 마음이 서로 맞지 않아서, 많이 싸웠다는 이야기 등등 해파랑길을 곧 완주할 사람치고는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나 생각을 툭 내뱉으셨다. 이제는 너무 많이 다녀서 지겹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너무 솔직한 모습에 그냥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한번 더 그들 부자지간에 돋보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고향을 잠시 떠나서 30일 이상동안 아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고 있었다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뜻일 거다. 정말 그렇듯이 이야기 도중에 알게 모르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내 눈엔 그것이 보였다. 그날따라 유독히. '부자지간의 사랑이 이런 것이구나'하고 깨달을 정도로 말이다. 역시, 말로 굳이 하지 않아도 사랑은 무엇인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