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크 아일 주립공원에서 큰 실망을 해서 나이아가라 폭포도 실망하지 않을까란 두려움이 많이 앞섰다. 사실 미국의 국립공원을 여행하면서 크고 놀라운 자연의 신비로움 앞에서 감탄을 한 적이 많지만 주립공원은 우리나라의 도립공원보다못한 곳이 많았다.
“왜 나이아가라 폭포는 국립공원이 되지 못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불안감으로 증폭되었다.
장모님과의 여행 중에는 여행할 관광지의 역사와 현재의 이야기를 항상 들려드린다. 아는 만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고 기억에 더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안감 때문인지 이번에는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운전만 했다. 나의 이야기의 빈자리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대신해주었다.
몇 시간 시골길과 끝이 안 보이는 포도밭을 지나다 보니 어느덧 캐나다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 있기에 폭포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나이아라가 폴스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위한 도시이다. 심지어 미국도 캐나다도 같은 도시명을 쓴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캐나다로 갈 수 있는 다리가 많이 보인다. 코로나로 인해 다니는 차도 거의 없었지만 차로 국경을 넘어갈 수 있다는 느낌이 참 생소했다. 캐나다를 바라보며 잠시 설레었던 마음도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물보라와 함께 잠시 잊었던 프레스크 아일의 실망이 불안감이 되어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도역시나이아가라폭포|
분명히 해 질 녘 나이아라가 폭포가 가장 멋지다는 평가를 얼핏 보았기에 아름다운 폭포도 보고 마음속 불안감도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장모님께 제안했다.
“장모님. 지금 폭포 보러 가실래요?”
“내일 볼 건데 오늘은 그냥 쉬는 게 어떤가? 운전도 오래 해서 피곤할 텐데.”
“해 질 녘에 보는 폭포가 멋지데요. 한번 보러 나가요.”
호텔 체크인 후 바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나갔다. 한 발짝씩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까워질수록 또 주립공원에 실망할까 봐 걱정했지만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는 순간 그 걱정은 이내 사라졌다. 비록 폭포의 측면에서 보는 것이 었지만 석양빛에 비친 나이아가라 폭포는 크고 장엄했다.
장모님도 크고 시원한 폭포에 꽤나 만족하시는 눈치였다. 다른 곳에는 사진도 찍는 둥 마는 둥 하셨는데 아주 다양한 포즈로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으셨다. 결정적으로 카카오톡 프로필에 등록하실 정도로 만족하신 것 같았다. 장모님과 여행을 떠난 뒤 여행을 떠나길 잘했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다만 아쉬운 건 캐나다에서 보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훨씬 아름답다는데 갈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미국에서는 폭포의 측면 밖에 볼 수 없지만 캐나다에서는 폭포의 정면을 바라보기에 조금의 아쉬움이 남았다. 안개 아가씨 호라는 유명한 유람선은 폭포 바로 앞까지 다가가서 폭포수를 흠뻑 맞는 재미도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잠정 중단 상태였다.
이미 캐나다를 갈 수 없고 유람선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실망하진 않았으나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젠 아쉬움을 뒤로 한채 선택의 시간이 왔다. 넉넉지 않는 일정이라 워싱턴 D.C. 또는 뉴욕 중에 선택을 해야만 한다. 평소 같으면 뉴욕을 선택하겠으나 코로나로 인해 뉴욕에서 아시안 혐오 사건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었고 뉴욕은 아직까진 삭막한 도시인 반면에 워싱턴 D.C. 는 나름대로 활기를 찾아가고 있었기에 선택이 더욱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