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풍차 돌리는 날 10
달지도, 쓰지도, 짜지도 않은.
by injury time Sep 14. 2023
“혹시 김화란 님 가족이신가요? 여기 고대병원 응급실입니다.”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마누라가 쓰러졌다는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마누라가 제대로 사고를 친 모양이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다급해 보였다. 대충 머리에 물을 묻혀 까치집 지은 머리칼을 비벼 가라앉히고 구겨진 운동화를 질질 끌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마누라는 코에 산소 줄을 달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두 번째 손가락에 산소포화도 검사하는 집게가 꽂혀 있고, 침대 머리맡에는 무슨, 무슨 수치 측정기계가 세워져 있었다. 중환자실 같은 분위기에 겁이 났다. 안 본 사이에 아내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 마지막 호텔에서 스치듯 봤던 얼굴에서는 고급스럽게 윤이 났지만 지금 모습은 자글자글 주름지고 거무튀튀한 기미가 가득 덮여 안색이 좋지 않았다. 루프스 증후군은 혈액을 응고시킨다. 피곤과 스트레스가 마누라에겐 쥐약과 같았지만 마누라는 돈을 벌겠다고 집을 나가 병원 생활을 했다. 아니, 나를 피해 나갔는지도 모르겠다.
마누라가 입고 있는 '천사'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낯선 분홍색 티셔츠는 색이 많이 바래있었다. 담배 피우러 왔다 갔다 하면서 봤는데 그 분홍색 티셔츠는 요양보호사 유니폼 같은 것이었다. 마누라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누구를 간병하고 있었나 보다. 정수리가 훤한 게 머리숱도 많이 빠지고 손톱도 많이 거칠어져 낯선 얼굴로 마누라는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김화란 님 보호자시죠? 환자가 루프스 증후군을 앓고 계시던데 알고 계셨나요?”
“예, 그전부터 약을 처방받아먹고 있었을 겝니다.”
“예, 약은 보조적인 역할만 할 따름이에요. 식생활을 제대로 하고, 힘든 일은 하면 안 되는데... 환자분이 관리를 못 하셨나 봐요. 혈전으로 의식을 잃으신 것 같은데, 입원해서 정밀검사가 필요할 듯합니다.”
마누라는 5인실 화장실 옆자리로 배정되었다. 제일 불편한 자리였다. 침대 밑에 숨어있는 낮은 보호자용 침상을 끌어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모로 누워있는 마누라의 발을 주무르고 있을 때 식사가 도착했다.
“김화란 님, 식사 왔습니다.”
식판을 들고 온 조리사가 마누라 팔목에 끼워져 있는 바코드를 어느 기계에 찍고 나갔다. 얼른 침대 맡에 있는 테이블을 열어 밥 먹을 준비를 했다.
“안 먹어. 입맛이 없어.”
마누라가 손사래를 치며 음식 냄새에 비위가 상한지 입을 틀어막았다.
“왜 그래? 맛있어 보이는구먼. 조금씩 나눠먹어.”
나는 마누라를 어르고 달래 밥 한 숟가락을 뿌연 북엇국에 적셔 입안에 넣어주려 했다.
“안 먹는다니까.”
마누라는 한 입 받아먹더니 곧바로 누워버렸다.
“맛있겠구먼, 내가 먹어야겠네!”
나는 토라진 마누라의 식판을 간이 침상으로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북엇국을 씹으며 저녁을 때웠다. 마누라는 등지고 누워 옆집 침상을 가리고 있는 커튼만 쥐어 잡으며 용을 쓴다.
밥을 다 먹을 때쯤 마누라와 같은 분홍색 옷을 입은 머리 바글바글한 여자가 병실로 찾아왔다.
“오메, 화란아, 괜찮다냐~?”
돌아누워 용을 쓰던 마누라가 힘겹게 일어나 여자를 맞이했다. 같이 일하는 요양 보호사 동료라고 했다. 여자는 마누라가 쓰러지기 전에 돌봤던 환자를 대신 돌본다고 했다. 그리고 마누라가 전에 쓰던 살림살이를 챙겨가지고 왔다. 가져온 트렁크를 열자 일회용 비닐봉지에 담긴 주먹만 한 냉동 밥이 봉알봉알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마누라가 그동안 그 냉동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끼니를 때웠다고 했다. 옆에 환자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간병인들이 그렇게 냉동 밥에 환자가 남긴 반찬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달지도, 쓰지도, 짜지도 않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