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풍차 돌리는 날 9
바퀴들은 어둠보다 조금 더 어둡다.
by injury time Aug 19. 2021
돈을 쓰고 보니 2억도 안 되는 로또 2등은 서울 한복판에서 집 한 채도 살 수 없는 돈이었다. 시골에 계시는 엄니 앞으로 3천만 원을 넘겨드리고 나니 이제 내 수중에는 8천 조금 넘는 돈이 남았다. 대출금을 갚자니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이미 8천만 원의 대출이 있었다. 대출을 받을 때 여러 조건을 맞추고 최저금리 이자로 받았기에 이제 와서 갚아버리자니 아쉬운 생각도 들고 나중에 돈이 필요해서 다시 대출받을 때 골치가 아플 듯해서 여러 궁리를 하고 있었다.
정말, 돈 쓰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는 밤이면 청담동 샬롱에 가서 이든을 만났다. 이든은 첫날 내가 현금 200만 원을 들고 찾아간 술집에서 만난 아가씨다. 이든은 이마부터 목덜미, 팔목까지 뽀송뽀송 잔털이 난 아가씨였는데 벗겨보니 등에도 귀여운 털이 터실터실 날렸고, 특히 이든의 배꼽 밑은 흑진주를 잘게 부수어놓은 듯 반짝거리며 윤기 나는 털을 가지고 있었다. 살롱에서 조니워커 블루라벨로 기분을 내고, 근처 노보텔에서 이든과 침대에서 구르고 있으면 천사와 함께하는 그리스 로마시대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들이 된 듯했다. 이든은 작고 귀여운 입으로 못하는 게 없는 여자였다.^///^
화장실에 붙어있는 매미를 괜스레 꾹-눌러본다. 매미조차 짧은 생을 다했는지 바람만 피식 나온다. 나는 오늘도 화장실에 앉아 늦은 아침을 맞이했다. 다시 시작된 변비로 식욕도 없고 게다가 사는 의욕은 더더욱 없다. 2등 당첨금 1억 7천은 3개월 만에 공기처럼 나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대출금이라도 갚을 걸, 일자리는 괜히 관둬가지고 지금은 쿠팡 택배 기사 일을 하고 있다.
마누라는 호텔 생활 한 달 만에 있을 곳이 없어서 다시 이곳 반지하방으로 들어왔고, 나는..... 이든 품에서 두 달을 살았었다. 이든은 내가 사업가이든 회사원이든 백수건달이든 상관없이 사랑한다고 했으나 정작 내 주머니에서 돈이 떨어지자 매몰차게 나를 내쫓았다. 이든에게 오피스텔 보증금까지 몽땅 털어준 채 나는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
중고 그랜저는 웬일인지 시동이 자주 꺼지고 탄내가 나면서 문제를 일으켰다. 브레이크 패드가 나갔다고 했고, 마후라까지 터졌다고 했다. 정비소에서는 사고가 많이 난 차 같다면서 아무래도 중고차를 잘못 산 것 같다며 혀를 끌끌 찼다. 당첨금으로 통장이 두둑했던 그때 중고차 딜러에게 나는 호구였나 보다. 마누라는 내가 이든과 지내느라 호텔로 돌아오지 않자 나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했었다가 결국 반지하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지금 요양보호사로 요 옆 병원에 들어가 앉아있다. 내 삶은 가관이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 이놈의 바퀴들이 이 집을 다시 점령했다. 밤에 불을 끄면 참새 새끼만 한 바퀴벌레들이 현관문틈으로 기어들어와 펄럭거리며 짧은 날갯짓으로 날아다닌다. 깜깜한 밤에 오줌 누려고 일어나 불을 탁 켜면 화장실 문에 좁쌀만 한 바퀴들이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순식간에 우글우글 어디론가 숨기 바쁘다. 자려고 누우면 코를 박고 자고 있는 벽마다 바퀴들이 움직인다. 어둠 속에서 그게 보인다. 바퀴들은 어둠보다 조금 더 어둡다.
밤새 바퀴벌레가 집안 구석구석을 바삐 돌아다니는 소리가 내 귓바퀴 속까지 파고들었다. 이젠 마누라가 아니라 바퀴벌레랑 쥐들과 살고 있다. 쥐는 자꾸 우리 집 비누를 갉아먹고, 바퀴들은 내 삶을 갉아먹는다.
-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