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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Sep 07. 2023

그들의 임테기

#6

"학원 그만두고 아무래도 정시로 가야겠어요."

현민이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갈 즈음에 갑자기 선전포고를 했다. 이번 시험을 망쳐서 등급이 낮아졌다며 본인이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없을 것 같다며 회복불가능이라고 했다.

현민은 그동안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싶어서 그쪽으로 수업을 듣고, 독서를 하고, 프로젝트나 동아리 활동도 하며 착실히 학종과 교과전형을 맞춰가고 있었다. 당연히 학원에서도 이제 와서 정시로 입시준비를 하는 건 너무 늦었고, 너무나 힘든 과정이라며 적극 말렸지만 현민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자경은 도대체 대학입시에 관해서 듣고 있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고 어렵기만 했다. 자경은 입시설명회에 가고, 담임 선생님을 면담하고 각종 유튜브를 보며 아들의 상태를 파악해 나갔다.

2학년때까지 2.45등급이었던 현민은 3학년이 되면서 3등급 이하로 떨어졌다. 세종대 물리천문학과를 바라보던 현민은 결국 제대로 된 대학 못 가면 아무 의미도 없다며 입시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엄마 때문에 공부한거예요. 스무 살 되면 나가서 독립할 거예요. 사업해서 돈 벌 거니까 대학은 안 가도 돼. 이태원에서 술집 해서 돈 벌 거야."

현민의 돌발 행동에 자경은 눈앞이 깜깜해져 무너져 내렸다. 한 번도 하지 않던 반항을 하며 현민은 한동안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자경은 하루종일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지옥으로 지옥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현민이 좀 나와봐라."

"내가 왜 나가야 하는데!"

현민은 머릿속에 또 다른 아이가 들어가 있는지 기분이 오락가락, 성질을 부렸다가 또 예전처럼 밥 잘 먹는 예쁜 아들이었다가 도통 종잡을 수 없는 상태의 시간을 보냈다. 도무지 대책 없이 무모한 한 학기는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학교가 끝날 즈음 지호는 현민의 학교 앞 이디아에 앉아있다. 지난번 현민을 만났을 때보다 어두운 표정의 지호는 연신 폰을 열어 뭔가를 검색하고 있다. 검색하는 손끝의 네일아트가 반짝이며 소녀의 눈을 비춘다.  몹시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지호는 주머니 속 나무젓가락마냥 딱딱하고 길쭉한 그것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다.

종소리와 함께 카페 문이 열리고 현민이 무거운 책가방을 지고 들어왔다.

"아, "

현민은 작은 탄식을 한다. 그리고 앉아있는 지호를 보자마자 탄탄한 배꼽 앞으로 그녀의 머리를 끌어당겨 안아준다. 지호도 현민의 허리를 감싼 채 한동안 그렇게 엉거주춤 안고 서서 서로의 숨소리를 느꼈다.

"괜찮아?"

"모르겠어. 계속 속이 안 좋아. 오늘 아침에 오바이트했어."

"아,,, "

"이거 봐."

지호는 주머니에서 계속 만지작거렸던 딱딱하고 길쭉한 그걸 꺼냈다.

"임테기 어떻게 보는 거야?"

"여기, 여기에 두 줄 나오면 임신이야."

"한 줄이잖아."

"자세히 봐. 옆에 희미하게 한 줄 더 있는 거 같아."

"난 잘 모르겠는데."

"속도 안 좋고, 분명 임신 같아."

"너 생리 끝나고 3일 만에 한 거잖아. 네가 괜찮다고 했고."

"몰라.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근데 아닌가 봐.  원래 예민하잖아. 예민한 사람은 임신 하루 만에도 증상이 나온대."

"어떻게 하지?"

지호는 비장한 목소리로 누가 들을까 조심하며 현민에게 바짝 다가갔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임신 초기에 담배 피우고 술 먹고 섹스하면 유산될 수도 있대."

"진짜?"

"오빠, 우리 다시 하러 가자. 내가 방 잡아줄게."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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