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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Sep 13. 2023

<2001 무인모텔>

#7

모텔 입구에 웅장하게 세워져 있는 낡은 아치형 간판은 언제 청소를 했는지 녹이 슬고 먼지가 덕지덕지 낀 상태로 이 나간 레온사인 불빛만 깜박였다.

왕복 6차선 도로가에 자리 잡은 이 <2001 무인모텔>은  마치 오래된 놀이동산처럼 보였다. 모텔 뒤편으로는 은밀하게 차를 세워두고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주차장이 있고, 차 없이 걸어오는 사람들은 아치형 간판부터 카운터까지 50미터는 걸어가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익명성과 접근성을 모두 충족할 만한 이 무인모텔은 그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게 공개된다. 서로 같은 이유로 방문한 그들은 비슷한 사연으로 서로가 서로를 눈감아주고 눈감고 지나친다. 건물을 관리하는 주인의 모습만 볼 수가 없다. 우렁각시처럼 몰래 와서 방정리를 하고 몰래 사라진다.

입구에 전자식 체크인 시스템은 각자가 알아서 다양한 디자인의 방을 선택하고 결재할 수 있다. 그러나 먼저 계산을 하고 있는 손님이 있다면 뒤에 온 손님은 뻘쭘해진다. 또한 한 대의 엘리베이터는 드나드는 커플들끼리 눈인사라도 나눠야 할 정도로 협소한 공간이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따로 온 사람처럼 각자 딴청을 부리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숨 막히게 약 30초가량은 갇혀있어야 한다.


현민은 교복 셔츠를 벗어 책가방에 쑤셔 박고 하얀색 면티만 입은 채 익숙하게 <2001 무인모텔>로 들어갔다. 지호가 4만 원을 현금 결제기에 넣자 또르륵 마치 커피 자판기처럼 전자키가 기계에서 떨어져 나왔다.

민증검사를 빡시게 하지 않는 곳으로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편의점까지 들렀다 왔다. 그들은 담배와 팩소주와 토닉워터와 소시지와 과자부스러기들을 사들고 2층 구석방 문을 열었다.

익숙하게 전자키를 벽에 꽂고 지호가 클러치 속 던힐을 꺼내 입에 문다. 문 앞에 주의사항으로 '미성년자 혼숙 불가' 안내판이 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현민이 가방을 던져놓자마자 지호의 등뒤에 가서 살포시 소녀를 안는다.

"우리 어떻게 하지?" 현민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안 되면 우리 같이 살지 뭐." 지호가 테이블에 비치된 종이컵에 소주와 토닉워터를 비율 좋게 섞어서 현민에게 내민다. 

"걱정 마. 우리 아빠 부자야." 지호는 후드티를 훌훌 벗고 침대에 벌러덩 누워 모텔 천정을 향해 연신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현민도 서둘러 바지를 벗고 지호와 함께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다시는 안 할 거야." 현민이 한 모금에 소주를 들이켜며 말했다.

"그럼 내가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 빨간 입술의 지호는 현민의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아직도 어리기만 한 이 연인들은 그토록 어렵기만 했던 섹스를 참으로 쉽게도 척척 해내고 있었다.




현민은 밤 12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스카에 있다는 톡을 끝으로 연락이 되지 않던 아들의 부재가 웬일인지 불안하여 자경은 저녁도 거른 채 안절부절이다. 자경의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퇴근하고 돌아와서 갈치조림에 막걸리를 마시며 미우새 재방송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다.

자경의 남편은 회피형 인간이다. 며칠 전에 아들이 여자 집에서 외박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금세 잊고 시시덕거린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걸 못 견뎌하는 자경의 남편은 최대한 심플하게 살고자 하는 태도다. 자경은 뭐 하나 도움이 안 되는 남편이 못내 서운하고 원망스럽고 못마땅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들이 삐뚤어진 게 본인 탓인 것만 같아 어떻게든 혼자 수습하려 애를 썼다. 아들을 순진하게도 자경은 믿었다. 어떻게든 결국 잘 될거라고 믿었다. 자경이 단 하루도 살아보지 못했던 자유로운 삶을 아들은 꼭 이룰 거라는 무한 믿음의 어리석은 생각을 놓지 못했다.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 아들을 기다리던 자경은 멀대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어오는 아들의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어깨가 축 처진 아들이 자경은 무서웠다. 저러다 말겠지. 다 큰 놈을 어떻게 하겠어, 정신차릴 때까지 기다려야지, 라며 자경 스스로를 다스렸다.

"스카로 데리러 오라고 하지, 힘들게 걸어오니?"

아들과 엄마의 고단하기만 한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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