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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Sep 18. 2023

여보, 우리 같이 죽을까?

#8

"엄마, 나 어떻게 해?"


현민이 퇴근시간에 맞춰 엄마에게 연락을 해왔다. 자경은 하루하루가 참 고달프다. 한숨 먼저 나온다.


"또 무슨 일인데?"

"집에 들어가기 전에 차에서 좀 얘기해요."


자경은 아들 현민이 기다린다는 학교 앞 버스정류장으로 차를 몰고 달려갔다. 현민은 어두운 표정으로 하교하는 학생들 사이에 풀 죽어 서있었다.


"어서, 타라."

현민이 가방을 뒷자리에 던져놓고 운전석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

"음....... 엄마, 놀라면 안 돼요."

"뭔데 그러냐니까?"

"아............ 그게............"

현민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한다.


"저기............. 여자친구가 임신한 거 같아요."


끼--------------익


자경은 끼익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녀는 이마트 고개를 넘어가다 말고 차도 옆 주머니도로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담대하게, 담대하게, 첫 입을 떼었다.


"어떻게 된 건지 처음부터 설명해 봐."

"속이 안 좋아서 임테기를 했더니 임신인 거 같대요."

"아니,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하라고! 그러니까 걔가 누군데?"

"포천 사는 여자친구."

"포천? 아..."


자경은 숨이 막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너무 많은 궁금증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치며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횡설수설, 자경은 지금 말문이 자꾸 막힌다.


"그 아이는 누군데?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민수가 소개팅 앱에서 알게 된 여자애인데, 어쩌다가 저랑 사귀게 되었어요."

"어디 학교 학생인데?"

"학교 안 다녀요. 1학년때 자퇴하고 지금 혼자 살면서 직업학교 다녀요."

"미쳤구나. 니가! 그래. 그럼, 그 아인 언제 마지막으로 생리를 했는데?"

"그러니까 저번에 나 포천에서 자고 왔을 때 생리 끝난 지 3일 됐다고 했어요."

"미친놈. 이 놈아, 너 정말, 엄마한테 어떻게 이래. 다 컸다면서 피임도 몰라! 너 고딩엄빠 몰라? 그리고 3일 지났으면 임신가능성도 없는 날이야. 이 미친놈아!"


자경은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킨다. 우선 임신기간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그 뒤 현민의 말에 자경은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걔가 속이 안 좋다고 테스트를 해봤는데 확실히 나오지 않아서.... 임신한 줄 알고 일주일 뒤에 또 했어요."

"뭐라고?"


자동차 핸들을 아들의 모가지라도 되는 냥, 자경은 마구 힘껏 마구마구 흔들며 비명을 질렸다.


"마지막은 술 먹고 담배 피우고 하면 낙태된다고 해서 한 거예요."


현민은 공포에 질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도 용케 말을 잇고 있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자경은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여자친구가... 인터넷에서 봤다고..."

"흐읍.."


자경은 이를 앙 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현기증이 났다.

   

"임신하면 아기 낳을 거래요. 낙태 못한대요."


현민은 90도로 반듯하게 앉아서 양손으로 차시트를 손톱으로 움켜쥐며 위대한 의식이라도 치르듯 그렇게 담대하게 사건의 전말을 쏟아냈다.


아들의 이야기가 뭐라 뭐라 길게 이어졌지만 눈과 귀가 희미해지며 자경의 의식은 점점 안갯속으로 빠져갔다.


아들이 포천에서 자고 오던 날, 그날 아들을 억지로라도 앉혀놓고 단속을 했어야 했다. 그 후 현민은 엄마와의 대화를 단절하고 피하기만 했었다. 그날 그렇게 생각 없이 아들이, 설마, 여자를, 안았을 거라는 걸 자경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아직 아들은 어린데, 미성년자가 섹스라니. 티브이에 나오는 아이들과 자신의 아들은 분명 다를 거라는, 밑도 끝도 없이 순진한 생각이 이런 사달을 만들었다.


얼마 전 이웃 학교에서 사귀던 얘들이 임신을 했고, 그 아이들 양가 부모가 만나 뱃속 아이를 유산시키고 사건을 마무리지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그런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도 학교에서 만나 서로 엉겨붙어 애정행각을 한다는 소문이 자경 귀에까지 들어올 정도였으니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성생활에 개념이 없는지 혀를 끌끌 차게 만들었다.  


자경은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인성 하나는 특별히 올곧게 키우리라 생각하여 뭐든 약속과 규범은 반드시 지키게 했고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은 극도로 주의를 주곤 했었다. 책임지지 못한 행동을 아들이 생각 없이 저질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게 실망스럽고 자경 역시 죄책감이 들었다.


"우선 병원을 가보자. 그 아이랑 엄마가 통화 좀 하게 연결해 줘."

   



"여보, 우리 같이 죽을까?"


그날 밤, 자경은 오늘도 미우새에 빠져있는 남편 옆에 조용히 다가가 앉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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