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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Sep 21. 2023

섹스, 그 모든 구질구질한 것들

#9

"현민이 엄마란다. 방금 얘기 들었단다. "

"예, 맞아요. 안녕하세요?"

"그래. 몸이 안 좋다고? 임신인 거 같다고?"

"예. 맞아요. 아주머니. 제가 좀 예민해서, 인터넷에 보니까 빨리 느끼는 사람은 하루 만에도 느낀대요."

"햐... 그래. 아무래도 병원 가봐야겠는데, 같이 갈 사람은 있고?"

"제가 혼자 동네 병원 갔는데 일주일 있다 오래요."

"나랑 같이 가보자. 언제 시간이 되니?"

지호는 너무나 당당하게 말대꾸를 했다. 아이가 '예, 맞아요. 아주머니.'라고 할 때 머리가 쭈삣 서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말투였다. 자경이 뭐라 뭐라 얘기하면 말끝마다 '예, 맞아요.' 했다. 요즘 얘들 언어인지, 이런 말투를 갓들어온 신입 여직원에게서 들은 것 같은데, 말대꾸하는 것 같아서 자경은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시 전화하자고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철없는 아들이 어이가 없고, 원망스러웠다. 특히 정신과 약을 먹고 있으니 전신마취하는 낙태수술은 할 수 없다고 여자친구가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고 하니, 아들을 한심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혼을 내더라도 이 긴박한 문제를 해결하고 멱살을 잡든, 주리를 틀든 해야 할 문제였다. 자경은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이를 악물었다.    

 

다음날, 지호가 자경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며칠 뒤에 대학병원으로 정신과 예약이 되어있어서 이모랑 가기로 했다는 거였고, 그날 이모랑 같이 산부인과도 갈 거라는 지호의 말에 자경은 참았던 분노가 끓어올랐다.

"정신과 다닌다는 얘기는 현민이에게 들었단다. 약까지 먹는다면서 아이를 낳겠다니, 아줌마는 너무 어이가 없구나. 어떻게 술담배 하고 섹스하면 유산이 된다는 생각을 하니, 약까지 먹는다는 얘가! 대체!!"

"인터넷에 그렇게 나와서.."

"햐... 우선 엄마 몸부터 관리하고 임신하고 출산하는 거잖아. 그걸 몰라???"

"예, 맞아요."

대학병원 정신과 검진이란 말에 자경은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아이에게 끝 간 데 없는 잔소리를 했다.

"니들은 정말, 어떻게 그래!!!!"

지호는 말끝마다 '예, 맞아요.'라는 말만 하며 통화는 끝을 맺었다. 우선은 이모라는 사람이랑 병원을 간다니 기다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하루하루 피 말리는 시간들이었다. 정확하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남편에게 아무것도 알리지 말고 혼자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자경은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이유 없이 방에 들어가 불 끄고 나오지 않고, 집안일은 올스톱이 된 채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자경은 문득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잤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 순간, 그것들이 모두 역겨워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든 성적인 것들에 구역질이 났다. 지난 시간들, 남편과 뒤섞여 서로의 몸을 탐했던 그 모든 행위들이 미치도록 수치스러운 미친 짓처럼 역겨워졌다. 그 단단하고, 울퉁불퉁 힘줄이 사납게 도드라진 성기를 한방에 형체도 없이 난도질하고, 너덜너덜 짓이기고만 싶었다. 그걸 물고 빨고 했던 자신이 한없이 더럽게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경은 그 모든 순간들을 부정하며 자신의 몸을 쥐어뜯으며 보냈다. 남편이 샤워를 하고 벗은 채 집안을 돌아다닐 때는 소리를 지르며 과격한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같이 자겠다고 자경의 이불속으로 들어오는 남편에게 미친년처럼 발길질을 하며 섹스, 그 모든 구질구질한 것들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남편뿐만 아니라 현민을 보면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현민의 속옷조차 보는 게 불편하고 불쾌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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