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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Sep 26. 2023

씨발,  읽씹

#11

정신없이 지나간 시간들에 자경의 남편은 옆에 늘 없었다. 자경의 남편은 더욱더 자경을 몰아세우며 어떻게 해결할 거냐며 윽박지르고 자포자기, 막걸리로 끼니를 때웠다.  

만년 과장에서 10년째 올라서지 못해 늘상 패배자의 모습으로 집에서 소확행이나 즐기는 남편, 이제 막 어린 티를 벗은 철없는 게임중독 중2 둘째 아들, 매일 밤 두세 시면 잠에서 깨어나 집안을 이리저리 돌며 마음 편히 누일 자리 없어 헤매는 갱년기 자경, 거기에 이제 내일모레면 운전면허 시험을 봐도 된다고 신나 하는 나사 빠진 고3 아들. 자경의 집 식구들은 늘 각자의 사정으로 지독히 외롭고, 지독히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자경은 답답한 마음에 사이버법률상담에 사연을 올리고, 무료 법률상담하는 곳을 알아보며 동분서주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무료 법률상담이 있어서 어찌나 반갑던지, 날이 밝으면 9시 문이 열리자마자 첫 상담을 해야겠다고 마음이 분주했다. 하지만 무료법률상담은 생각보다 이용자가 많아서 한 달 후에나 상담이 가능했다.

자경은 이제 무료 전화상담을 신청했다. 주말이라 통화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어찌어찌 청소년법률상담 전문가와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는 자경의 사연을 듣더니 '어머니가 잘못하셨네요'라는 비극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자경은 끝내 침대에서 나오지 못하고 눈물로 실신하기 직전이었다.

이 상황을 두 눈으로 보고 들은 현민은 당장 여자친구를 만나 단판을 지어야겠다며 흥분하고 억울해했다. 갑자기 가족 편이 되어 정의 구현이라도 할 듯 세상 지극정성 효자로 변해 엄마의 끼니를 걱정했다.

머리를 싸매고 누워만 있던 자경은 정신을 차리고 돈이 들더라도 실제로 변호사를 만나 직접 상황을 설명하고 속시원히 정말 이게 아동학대인지,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하는 게 맞는지 의논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근처 제법 규모가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집에서 출발하던 시간에 남편은 잘 갔다 오라며 짧은 톡을 보내왔다.  씨발. 자경은 읽씹으로 응징했다.


지호와의 통화, 지호이모와의 통화가 녹음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자경에게 변호할 수 있는 증거는 그 자경의 갤럭시폰에 있는 자동 통화녹음 기록이다. 지호와의 첫 통화는 아들의 아이폰으로 이루어져서 녹음자료가 없었다. 그때서야 알았다. 아이폰은 자동통화녹음기능이 없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대화하는 건 처음이었다. 선입견인지 모르지만 무척 똑똑해 보이고 현명해 보였다. 부럽기도 했다. 사무실은 직원 여럿이 바쁘게 서류정리를 하고 업무를 보느라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바빠 보였다.

잠시 후 깔끔하게 화이트셔츠에 네이비 슈트를 입은 젊은 피 남자 변호사와 못생겼는데 고급스러움으로 어느 정도 못생김을 감추고 우아해진 여자 변호사, 이렇게 둘이 상담실로 들어와 수첩을 내려놓고 앉았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태도로 보아하니 여자 변호사가 선배인 듯 좀 더 노련해 보였다. 젊은 피 남자 변호사는 지방끼 하나 없이 잔근육으로만 이루어진 팔목을 보이며 소매를 둘둘 걷어올리고, 연신 자경의 사연을 메모하느라 바빴다. 둘은 자경 갤럭시 폰에 녹음된 내용을  꼼꼼히 들으며 상담을 이어나갔다.

상담은 두어 시간 이어졌다. 한 시간에 상담료가 16만 원이라고 했고, 10분당 3만 원씩 올라간다는 설명을 들어놔서 자경은 최대한 간략하게 상황설명을 해야지 싶었다. 하지만 변호사 둘이 어찌나 꼼꼼히 묻고 정리하는지 자경은 눈치껏 시간을 확인하며 상담은 이어졌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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