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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Sep 25. 2023

사과다운 사과

#10

피 말리는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자경은 축 늘어진 가슴으로 아들의 색 바랜 하얀색 면티만 입고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얼마나 자주 삶아댔는지 아들의 면티는 낡아서 숭숭 구멍이 뚫려 있는, 그런 오래된 티셔츠다.  그 구멍 사이사이로 자경의 쇄골과 겨드랑이와 배꼽이 칼에 베인 것마냥 서글프게 들여다보였다. 게다가 늘어난 넥라인 때문에 자경의 어깨는 자꾸 흘러내려 그 사이마다 자경의 쭈그러진 가슴까지 의미 없이 흔들렸다. 흘러내린 소매를 추스릴 때쯤 낯선 전화가 왔다.


"지호 이모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자경은 뜻밖의 전화에 조용한 방으로 가서 대화를 이어갔다.


"지호한테 들었는데, 지호 정신과 약 먹는다고 무시하셨다면서요? 얘들끼리 있었던 일을 어른들이 잘 수습하면 될 일이지, 왜 우리 지호에게 뭐라 떠들어욧? 지호 아직 미성년자예요. 우리 지호한테 소리 질렀다면서요? 지들끼리 좋아서 그랬는데, 요즘 티브이에서 하는 고딩엄빠도 안 봤어요? 잘못이 있다면 당신 아들에게 피임 교육 안 시킨 당신 잘못 아니요? 우리 지호 스트레스받아서 지금 상당히 상태 안 좋아요."


몹시 격앙된 목소리의 지호이모는 자경의 인사치레에도 전혀 반응 없이 냉랭하고 사나운 목소리로 다다다다 무섭게 자경에게 쏘아붙였다.


"예? 저... 저는 지호에게 그렇게.. 소리치지... 않았...."

"미성년자에게 어른이 위화감 조성하면 아동학대라는 거 몰라요!"

"저... 지호이모님, 저는 절대... 그런 짓..."

"전 도저히 용납이 안되니까 직접 찾아와서 우리에게 사과다운 사과하세요."

"지호가 상처받았다면 정말 죄송한데, 전 정말..."


자경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사나운 목소리의 여자에게 코너에 몰린 생쥐마냥 찍소리도 못하고 연신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건...'이라고만 했다.


"아무튼 제 앞에서 지호한테 제대로 된, 제대로 똑바로 사과하세요."


지호이모라는 사람은 며칠 뒤 지호가 다닌다는 대학병원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자경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덜덜 떨고 있었다. 난데없는 아동학대라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동학대라니, 그렇게 지호에게 그 이모라는 사람 말처럼 학대에 이를 만한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자경은 억울하고 어이없고 당황스러워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자경이 방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자 자경의 남편이 어슬렁거리며 자경 곁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인데 그래? 누구 전화야?"

"그게... 사실은..."

자경은 그동안 현민에게 있었던 일들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통화를 해!!"


남편 조차 자경에게 소리치고 한숨짓더니 방문을 쾅 닿고 나가버렸다. 자경은 허허벌판에 발가벗겨져 세찬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서 있어야만 했다. 고단하고 무섭고 두렵고 외로웠다. 옆에 도와줄 그 누구도 찾을 수 없이 위태롭기만 했다.

제대로 된 사과라는 말이 웬일인지 금전적 합의를 바라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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