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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Oct 09. 2023

단편소설/장님 고양이 11.

결국은, 결국

결국은, 결국을 만들었다.


어느 날, 가느다란 그녀의 팔에 아인을 매달고 그의 어머니 댁에 가는 날이었다. 어머니 생신이라고 해서 생일 케익과 선물까지 준비한 종서는 이제 좀 아인과의 시간이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종서가 온다며 졸지에 시력을 잃은 아들을 둔 어머니의 집은 북적거렸다. 헛헛한 생각을 잠시나마 잊은 듯 수다스러운 어머니는 녹두전을 하고 두부조림을 하며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한껏 들떠있었다. 종서는 아인을 안전하게 거실에 앉히고 서둘러 집안일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의 방, 예전에 자주 같이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어머니는 자주 일을 나가셨고, 그의 집은 자주 비어있어 그럴 때면 그와 집안에서 데이트를 하며 보냈었다. 가족들 모임에 종서도 늘 참석하고 자연스럽게 종서도 가족이었다.


그때였다. 그때 그걸 보지 않았더라면 종서는 아직도 아인에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본 것은 방안을 가득 채운 거리에서의 작품들. 그리고 아인의 책상 유리에 꽂아진 여러 장의 사진들. 아인이 길거리를 다니며 허세스런 작품 활동을 하던 시간들, 거리의 예술가들과 술에 취해 웃고 떠들며 흥청망청 시간을 낭비하던 치기 어린 기억들, 그 속에 종서를 찾아왔던 이혼녀까지. 거기에 한 귀퉁이에 삐딱하게 꽂아진 생뚱맞은 종서의 오래된 증명사진. 그때 그의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와 사진을 들여다보는 종서를 발견했다.


"아니, 아인이가 그래도 예전에 알던 사람들 사진인데 버리기도 뭐 하고, 간직하고 싶대서 꽂아놨지. 이제는 뭐 필요도 없는데 말이야. 아이고."


그의 어머니는 종서의 눈치를 보며 그녀의 등을 쓸어내린다. 아인이 연락이 안 되던 시절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한번 만났던 아인의 그 이혼녀 생각이 그때서야 다시 떠올랐다. 지방의 소도시까지 가서 아인의 자질구레한 화구와 소지품을 가져왔던 기억이 지저분하게 구겨져 종서의 기억 속에 튀어나왔다. 그때도 종서는 헤어졌어야 했지만 헤어지지 못했었다.


시력을 잃은 채 과거의 사소한 사연까지 모두 놓지 못하고 사는 아인의 구역질 나는 허세스런 삶에서 이제는 종서도 제발 벗어나고 싶어졌다. 유리에 꽂힌 아인의 호시절 속에 종서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도 아인의 사소한 인연 하나에 불과한데 너무 오래 끈을 놓지 못한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종서에게 그는 점묘화의 작은 점이었을지 모른다. 더 많은 추억의 점들을 모아 그녀의 삶을 그려 나갔어야 했다.       


이제는 그녀도 그녀 다운 크고 멋진 그림을 그려야 할 때가 왔다. 그녀가 바란 사람은 그저 소탈하고 건강하고 어딜 가나 인사 잘하는 사람이면 족했다. 그리고 종서는 얼마 후, 착실하고 반듯한 월급쟁이 남자와 결혼을 약속했다. 집 앞만 나가도 이웃끼리 웃으며 '요 옆에 사는 농협 총각 샥시~'라며 인사할 것 같은 남자면 됐다. 다행히 그 농협 총각은 종서의 찰방찰방한 가슴을 더없이 사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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