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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Oct 09. 2023

단편소설/장님 고양이 12.

나 결혼해.

미야오


그가 앉아있던 승강장 벤치 바로 옆에 나는 미야오, 하고 앉아 있었다. 뒷다리를 쭉 펴고 누워 눈과 코와 볼때기와 콧수염까지 살뜰히 침을 발라 맛나게 닦고 있었다. 그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나른해지려는데 그가 그의 코딱지를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가 가끔 주는 간식이다. 그의 코딱지를 살살 녹여먹고 있는데 여자가 소리 없이 나타나 남자의 어깨를 두세 번 두드렸다. 남자가 서둘러 일어나 의자에 무릎을 찧고, 지나가는 사람과 어깨가 부딪혔다. 내가 야옹야옹 그를 불렀으나 그는 나를 뒤로 하고 케인을 탁탁 두드리며 더듬더듬 여자의 손에 이끌려 승강장을 빠져나갔다. 여자는 오늘따라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다. 약간 서두르는 것도 같다. 오늘은 내가 저들을 좀 따라가 봐야겠다. 총총총     


둘은 터미널 지하상가로 내려가 반대편 뉴코아 방면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신아파트 옆에 허름한 경신 빌라로 들어갔다. 꼬리를 하늘에서 누군가 한껏 잡아당기듯 높이 높이 치켜세우고 나는 어슬렁거렸다. 마침 102호 집 베란다 창문 사이로 그들이 보였다. 여자의 집이다. 나는 여자의 집, 살짝 열린 베란다 창문 사이로 사뿐히 올라가 베고니아 화분 사이에 몸을 숨긴다. 커튼 사이로 그들이 보인다.  


남자는 두 손을 휘이 휘이 뻗으며 겨우 거실 소파에 엉덩이를 조심스레 갖다 대더니 그때서야 풀썩 주저앉아 등받이에 등을 댔다. 몇 시간을 경직된 채 긴장하며 앉아 있어서 그런지 그는 푹신한 패브릭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여자도 그의 옆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는다.


"어머니한테 수염이라도 깎아달라고 좀 하지 그랬어."


말없이 지켜보던 여자는 턱에 자란 그의 수염을 한 올 한 올 세기라도 하듯이 엄지손가락으로 튕기다가 한참을 그의 얼굴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웬일인지 긁히고 까진 상처가 많다. 여자의 눈빛이 흔들린다. 오래되고 낡은 빗자루처럼 구부러진 그는 영혼의 반쯤은 오다가 잃어버린 듯한 표정으로 소파에 기대앉아있다. 여자가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더니 그가 좋아하는 피자 한쪽을 접시에 담으며 말한다.


"나 결혼해."


무미건조한 그녀의 말에 갑자기 새로 분양받아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빈 아파트처럼 집안이 적막해졌다. 지잉~거리는 형광등 소리도,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도, 째깍째깍 벽시계 소리도, 타다닥 탁 이웃집 층간 소음도, 쫄쫄쫄 윗집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도, 희희낙락 놀이터 아이들 소리도 다 사라지고 백색 고요가 그들의 거리를 꽉 매웠다. 고작 두세 걸음의 거리였으나 거실과 주방은 정적으로 달과 우주의 거리만큼 멀게 느껴졌다.

백색 고요를 깬 건 그였다.


"그래. 잘됐다. 내가 그 남자 만나서 너 성질머리 하나하나 말해줘야 하는데. 씨발!"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여자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와 회한에 찬 표정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마지막으로 보냈던 그들의 깊은 밤. 불 꺼진 방은 앞이 안 보여도 그는 여자를  다 알아챘다. 만지는 손길 하나하나가 여자의 쇠골 어디쯤이고 어깨의 주사자국이고 몇 번째 가슴뼈인지 기억하는 듯했다. 옆으로 돌아누운 여자의 치골과 둔부를 더듬거린다. 보이지 않아도 다 볼 수 있다. 남자는 돌아누운 여자의 뒷목덜미에 코를 박고 낮고 뜨겁게 숨을 몰아쉰다. 여자의 뜨거운 눈물이 콧등을 타고 귓불로 흘러내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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