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jury time Oct 09. 2023

단편소설/장님 고양이 13.

기묘한 고양이

몇 달 후 여자는 몹시도 추운 날에 결혼을 하고 뜰이 있는 작은 집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뜰에는 메리골드와 자운영을 심고, 널찍하고 판판한 디딤돌을 구해와 여자의 남편은 대문과 집안을 이어놓았다.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신발에 흙탕물이 묻지 않고 따뜻한 집으로 들어올 수 있어졌다. 여자는 예쁜 여자 쌍둥이를 낳아 매일매일 촘촘히 아이들의 머리를 땋아주며 포근포근 늙어갔다.


결혼 후, '남자는 병세가 깊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저 멀리서 어렴풋이 들었지만, 믿지 않았고, 못 들은 척했다. 더 열심히 꽃을 가꾸고 딸아이들을 가꾸고, 집안을 가꿨다.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따뜻한 두부를 사서 청국장을 끓여가며 깔깔거리고 살아갔다.


그런데 며칠 전,


뒤뜰에 심어놓은 방울토마토를 몇 개 따고 있는데 뒷산 오솔길 사이로 낯선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올오오오오오올          


나는 이제부터 고양이들만 아는 비밀 하나를 털어놓으려 한다.

인간들은 <고양이 괴담>이라며 우리 고양이를 영악하고 뒤끝 있는 동물로 여기는 어이없는 소문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우리는 사려 깊고 무엇보다 유난스럽지 않고 인간들 사이에서 조용히 사는 '고양이'일 뿐이다.

그런데 한 가지, 나 역시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 있다.

내가 이 이곳 터미널에서 오고 가는 여럿 고양이 친구들에게 들은 얘기이다.

우리  평범한 '고양이' 사이에는 <기묘한 고양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그냥 코딱지나 받아먹는 고양이가 아니라, 무늬만 고양이, 그러니까 모습은 고양이이지만 그 안에 인간의 영혼이 들어간 고양잇과 인간이 고양이 시늉을 하며 우리들 사이에 섞여있다.

인간들은 죽으면 한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이 죽은 자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이때는 영혼도 죽었던 모습 그대로 고통스럽게 떠돌아다니게 된다. 늙어 죽은 사람은 늙은 채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은 피칠갑을 한 채로, 수술하다 죽은  사람은 배가 갈라진 채로. 그렇게 떠돌다가 점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서 잊히면 그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 온전한 평온을 찾는다.

그런데 죽은 자들 중에는 몇 해가 지나고도 잊히지 못하는 영혼들이 있다. 너무나 사랑하거나, 너무나 억울해서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상태. 이렇게 자연스럽게 잊히지 못하는 영혼들은 더 이상 고통 속에 떠돌아다닐 수 없어서 허약한 고양이 몸으로 들어가 잊지 못하는 인간들 옆에 스며들어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고양이들은 우리 같은 평범한 고양이와 울음소리부터 다르다. 우리는 목젖을 때리며 '미야모' 하는데, 그 <기묘한 고양이>는 폐에서부터 끓어오르며 '아올오오오오올' 하는 낮고 깊고 서글프고 괴상한 울음소리를 낸다. 그들은 잊지 못하는 인간들 사이에 끊임없이 끼어들어 구슬프게 소리를 내며 인간의 삶 속을 파고든다.

이 근처 중국집 길용각 사장님도 몇 해 전에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사모님이 남편을 잊지 못하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가 어느 날 낯선 고양이가 길용각 앞에서 밤낮으로 아올오오오올 울어서 결국 그 <기묘한 고양이>를  품어주었다. 정말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사이다. 아저씨가 살아있을 때처럼 사모님을 졸졸 따라다니고 손님이 오면 카운터로 올라가 사장 흉내를 낸다.         

그 여자의 잘 가꿔진 뜰에는 어느 날부터 아올오오오올 울어대는 장님 고양이가 찾아왔고, 여자는 부드러운 쿠션을 현관 앞 널찍한 디딤돌 위에 놓아주었다고 그 근처 사는 어느 지인 고양이가 내게 전해주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들의 첫정은 알 수가 없다옹.



<끝>

이전 12화 단편소설/장님 고양이 1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