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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Jun 28. 2023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2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소꿉친구에 대하여

20년 만에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어젯밤 너무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1도 관심 없는 회사 사람들 무리에서 하루종일 눈칫밥을 먹으며 하루를 버텨내는 직장인에게 이는 더더욱 큰 환희고 행복이다.

 그 시작은 SNS였다. 나 포함 모두가 SNS는 인생의 낭비고 본인의 자존감을 끌어내리는 매체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유일한 SNS의 순기능이라 할 수 있다. 오랜 내 인연을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어떤 남자가 친구신청을 해왔다. 인스타그램을 잘하지 않아 2주 전에 한 것이었는데 이제야 수락을 눌렀다.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근데 아이디를 보니 영문으로 20년 전 같은 아파트에 살던 친구와 이름이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반가울 수 있단 말인가. 삭막한 하루 속에 큰 행복이었다.

 밤에 오랜만에 전화를 하니, 목소리도 그대로고 성격도 모두 그대로였다. 어렸을 적 총 놀이, 공놀이하던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였고 20년이 지나 세월만 흐를 뿐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친구도 나에게 사진을 보니 모든 것이 그대로라고 한다.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 그만큼 가치가 있다. 내가 쿠바를 두 번이나 간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모든 나라에는 맥도날드가 있고, 백화점이 있다. 스타벅스도 이탈리아를 제외하면 모두 다 있다. 하지만 쿠바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본연의 쿠바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기에  사람들이 순박하고 그 자체로 흘러온 시간을 지키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친구와 나는 어렸을 적 같은 아파트에 살며 정말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난 친구다. 내가 무엇을 하든 그 친구가 무엇을 하든 질투나 시샘, 경쟁이라고는 서로에게서 찾을 수가 없다. 무조건적으로 서로가 잘 되길 바라는 사이다.

 이 친구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부분을 발견했다.  오랜만의 연락 속에서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 근황 등을 이야기하니 아낌없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스스럼없이 본인 지금 백수이며 조금 힘든 시기라고 얘기해 주었다. 오히려 꿈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하루를 산다고 한다.

 아무렇지 않게 20년 만에 연락을 해도, 전혀 숨기지 않고 다 드러내주어 너무 고마웠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부러워하는 친구에게 오히려 머쓱하고 부끄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전화 스페인어를 하면서도 선생님과 자랑, 남에게 보이는 것(스페인어로 por orgullo라고 한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하든, 여행을 가든, 물건을 사든, 취업을 하든 이 세상에 놓인 무수한 선택 속에서 우리는 늘 내 행복은 뒷전이고, 남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한 선택을 할 때가 많다. 원래 백만장자들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다. 적당히 조금 많은 사람들이 어중간하게 재산을 뽐낸다. 이 친구는 아니었다. 20년 만에 연락을 하는데도 당당하게 꿈에 대해 얘기하며 내 마음을 오히려 더 깨끗하고 편하게 만들었다.

 늘 더 나아져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무언의 압박을 주는 이 서울에서, 그것도 여기서 만난 사람들 속에서 내가 익숙해진 걸까. 아니면 20년 지기의 진정한 우정아래 진짜 막역하고 소중한 관계의 중요성을 이제야 느낀 것일까.

 관계의 깊이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무조건적인 관계는 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이다. 자식이 그 무엇을 하든 부모는 그저 잘되길 바라고 무조건적으로 응원해 준다. 마치 내 일처럼. 그건 이 세상 만물 중 부모만 가능한 것이다. 자매나 형제도 돈 때문에, 가치관 때문에, 여러 이 유로 돌아서는 경우를 참 많이 봤다. 친구도 본인의 상황이 괜찮을 때에나 내 옆을 신경 쓸 여유가 보인다. 하지만 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10년 전, 20년 전 내 소꿉친구들과는 확연히 상황이 다르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마디로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본심을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나를 들어냄으로써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행동과 말, 언행들이 아무리 친할지라도 본인의 이익에 맞게 움직인다.

 하지만 정말 오랜 친구들의 특징은 가장 먼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나도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어쩌면 진심 어린 응원과 위로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주변이 잘 되어야 나한테도 기회가 오는 게 자본주의의 맥락이도 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 조건이 있는 관계가 그 관계를 피폐하게 하고 오래갈 수 없만든다. 

 친구는 아무 걱정 없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공놀이, 총놀이만 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우리가 지금 잃은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길고 긴 터널일 것이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일어나지, 나는 왜 안되지 라는 마음속에서도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 못 할 일은 없다고 본다. 그 친구가 꼭 본인의 바람대로 학교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에게 희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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