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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Sep 27. 2023

축의금 액수는 친함의 정도일까?

3,700만 원의 축의금과 친함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2주 전에 결혼을 했다. 즐거운 신혼생활의 시작을 알린다. 재밌는 신혼생활 속에서도 혼자 살 때와 같이 희로애락은 늘 존재하기에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마냥 괴롭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 확실한 것은 혼자 살 때보다는 정서적으로 충분히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더도 말고 그저 흘러가는 매사에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큰 거사를 치른 것은 맞으니, 마음만은 한결 편안하다.  

 결혼 직후에는 모든 부부들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꼭 하는 빠질 수 없는 절차가 있는데, 바로 축의금 정산이다. 결혼식 때 누가 나에게 얼마를 주었는지 본인은 알 수 없기 때문에 거사를 치르고 나서 집에서 같이 돈을 세 보며 확인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계에 대한 여러 생각의 파고가 휘몰아친다. 나에게는 부모 제외 지인 및 친구에게만 3,700만 원이라는 돈이 들어왔다. 와이프는 아직 안 세봐서 모른다. 액수가 많다해서 내가 잘 인생을 잘 살아온 정답도 아닐 것이고, 적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다. 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크게 뿌리지 않았는데도 생각지도 못한 이들에게 많은 축의금을 받았다면 상대방은 본인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맞으므로 인생을 잘 살았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현대사회는 철저한 자본주의로 움직인다. 돈이 곧 마음이다. 아무렴 축의금은 설령 돌려주어야 하는 금액이라 할지라도 적게 받는 것보다 많이 받는 것이 좋은 건 맞다. 많은 이들이 나를 이렇게 축하해 준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절차를 모두 건너뛰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집에서 간단히 맥주를 한잔 마시고,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다음 날은 아내와 함께 밥을 먹고 저녁에 바로 하와이로 허니문을 떠나는 바람에 축의금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누나와 매형이 모두 액셀에 정리해서 카톡으로 보내줬으나, 누가 얼마를 보냈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다. 결혼식을 이미 치러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이 세상에는 수없이 많다. 직접 나를 보러 결혼식에 와주고, 결혼식 자리를 끝까지 지켜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보낸 사람들보다 한없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결혼을 하기 전에는 몰랐다. 결혼을 하면 절실히 느끼게 된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결혼식이 10일이 지나서야 파일을 열어본다. 신혼여행 중 카카오톡으로 나에게 보내주신 수많은 축의금을 모두 합쳐 계산했다. 놀란 감정은 둘째 치고, 결혼 하나 했을 뿐인데 내가 이 금액을 받을 정도의 축하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가 먼저 머릿속을 맴돈다. 벅찬 고마움과 감동이 밀려온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근차근 갚아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32년간 인생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사람들이 축의금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한다. 축의금이 들어오면 다 부모님 줘야 하는 거냐, 우리 다 가지는 거냐, 뿌린 대로 받는 거 아니냐, 축의금이 실제로 많이 남냐, 결혼식 비용내고 하면 없는 거 아니냐 결혼을 아직 서울에서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질문을 한다. 정답만 말하자면 남는다. 엄청 많이 남는다.  당연히 남을 수밖에 없다.  부모님이 모두 갖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부모님 손님이 얼마냐에 따라 다를 것이고, 결혼을 하는 데 있어 이건 양가지원여부에 따라 갈릴 듯하다.

 결혼식에 직접 와준 사람이 당연 1순위로 고마운 것이 맞다. 그 외에 축의금을 파헤쳐보면 대충 이렇다.


 경우 1: 나는 10만 원을 이 친구 결혼식 때 했는데 20만 원을 한 친구가 있다. 나는 5만 원을 했는데 10만 원을 보내온 지인도 있다.

 경우 2: 나는 10만 원을 했는데 5만 원만 달랑 보내온 친구도 있다.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축의금은 상부상조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덜 돌려받았으면 넌지시 말해서 돈을 돌려받거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고, 내가 한 것보다 축의를 더 한 사람이 있다면 살아가며 그대로 조금씩 갚아나가면 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축의금은 현실적으로 친함의 정도가 맞다. 요즘 유행하는 MBTI <ENFP>로만 32년을 살았다. 모두가 어쩌면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상대방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더럿 있었고, 반대로 내가 별로 안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의외로 축의를 많이 하는 경우도 있다. 그 사람들은 내가 평생 챙겨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다.

 앞에 언급한 경우의 수 말고도 가령, 내가 생각했던 ‘아 이 정도 친하면, 적어도 얘는 얼마 이상은 내겠지”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다. 근데 거의 다 기대와 다르게 10만 원, 15만 원으로 축의를 하는 것을 보고 다소 서운한 기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절대 서운한 티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 돈을 대하는 기준이 천차만별이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친구는 30만 원이 우리의 10만 원처럼 여겨질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10만 원이 부담스러운 돈일 수도 있다. 우리는 각자가 대한 돈의 무게를 일일이 가늠하지 못한다.

 또 사정이 생기거나 거리가 매우 먼 경우도 있다. 나는 상대방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그 상대방이 갑자기 내 결혼식 당일에 사정이 생겨서 못 오는 경우, 내가 한 금액보다 축의를 더 하기도 한다. 직접 못 간 게 미안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축의금이 천만 원대 정도였고 나보다 온 사람이 훨씬 적었지만 단 한 명도 사정상 못 온다고 한 경우가 없었다. 모두 의리를 지켜주었다. 꼭 많이 온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넓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관계가 넓으면 실속 없는 관계도 존재하는 법이다.

 거리에 따라서는 천차만별인데, 나는 결혼식은 서울에서 했고, 고향이 울산이기에 정말 친한 사람들은 호텔을 잡아주거나, 교통비를 5만 원씩 다 줬는데 교통비+뷔페 정말 최소금액 10만 원만 낸 사람도 있고, 50만원이나 낸 사람도 있다.

 앞서 말했듯, 사람마다 모두 돈을 대하는 기준이 다르기에 이에 왈가왈부해서는 안된다. 다만 축의금 먹튀, 즉, 나는 축의를 했는데 내가 결혼할 때 축의를 하지 않은 사람. 이 경우는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번 기회에 손절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얼굴 붉히지 않고 서로에게 좋은 길이다.

 

 결혼이라는 관습적인 제도를 통해 관계라는 것이 어쩌면 돈의 액수로 치부되고 있는 사실이 애석하고 먹먹하다. 자본주의에서는 이를 더 빨리 적응하고, 돈의 액수와 별개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진짜 승자다.

 3,700만 원이든 3억 7천만 원이든, 천만 원이든 결혼이라는 제도를 경험한 1인으로서 이젠 내가 관계에서 누구에게 더 집중하고 살아야 할지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이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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