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비즈니스부터 이해하라
멕시코에서 돈 벌고 싶은가? 실제로 내가 아는 멕시코에 거주하는 40대 이상 모든 지인은 다 부자다. 돈이 넘쳐난다. 성공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멕시코의 비즈니스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를 시작하기에 앞서, 멕시코 비즈니스에 대해먼저 알고 덤벼들자.
먼저 대인관계다. 멕시코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어느 나라도 그렇겠지만 멕시코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대인관계를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 워낙 태생적으로 낙천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유머가 함께 하고 긍정적으로 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꽌시’라고 해서 무조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 사람들도 데낄라의 고향답게 술을 참 좋아하지만, 술을 안 마시는 사람도 많기에 안 마셔도 무방하다. 단, 슈트나 셔츠차림의 외적인 부분은 신경을 꼭 써야 한다.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늘 사람과 사람사이에 정장, 슈트, 머리를 단정히 하는 것을 기본으로 알고 있으며, 그렇게 입지 않았을 시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멕시코 사람들은 친근하고 외향적이라고 해서 비즈니스가 바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중요시 여기는 만큼 그만큼 오래 보고, 서로에게 신뢰가 바탕이 될 때에 비로소 사업을 시작한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들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메일 회신도 늦고, 전화도 안 받을 때가 많기 때문에 한국인 입장에서는 다소 답답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로 더 자주 보고, 만남을 이어가며 신뢰를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답례품이나, 기념품, 비즈니스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경우도 흔한데, 크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 선물이 얼마의 값어치냐에 따라 그 비즈니스와 관계를 얼마나 중요시 여기는지가 판가름 나는 국가도 있는 반면에 멕시코는 선물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늘 친구를 소중히 여겨 작은 선물을 주고받고, 집에 초대하는 문화가 익숙한 그들에게는 지역특산품이나, 건강식품(홍삼, 인삼), 비즈니스에 필요한 물건(예를 들면 만년필, 키링 등)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준비를 하면 된다.
멕시코 사람들과의 첫 대화는 어떤 식으로 이어가는 것이 좋을까? 보통 서로 국가의 전반적인 상황으로 스몰톡(Small talk)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상대 국가에 대해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을 말함으로써 최소한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다. 특히나 멕시코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정말 호의적으로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궁금한 것이 많기에 서로의 국가 얘기를 하면서 전반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좋다.
두 번째로는 가족얘기를 하는 것이다. 멕시코의 가족에 대한 견해를 먼저 얘기하겠다.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 후 사회경제적인 불안 속에 지금까지 이렇게 유대감 있게 나라를 발전시켜 온 원동력은 바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가족을 중요시 여긴다. 늘 일보다는 가정이 우선이고, 일을 하는 목적 자체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조카, 삼촌, 사촌, 먼 친척까지도 늘 기념일에 같이 모여 행사를 가지며 가족 간의 매우 강한 결속력이 있다. 멕시코 모든 집안의 가장은 내 가정을 지키고, 나보다 가족이 우선인 삶을 살기에 어쩌면 멕시코가 마초 문화, 가부장적인 문화를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마초(macho) 도 남성성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내 가족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희생, 헌신할 수 있으며 일 때문에 내 가정의 급격한 변화가 있거나(가령, 해외출장, 발령, 타 국가 거주 등) 했을 때 전혀 선호하지 않는다. 본인의 다양한 경험이나 커리어보다 가족이 우선인 국가가 바로 멕시코다. 따라서 가족관계를 물어보면서 서로의 말수를 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족은 몇 명이고, 자녀는 있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데 가장 좋다. 오히려 가족 얘기를 하면 침묵을 깨는 용도가 아닌 얘기가 길어져 중간에 말을 잘라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처럼 멕시코 가족문화의 집단주의에서는 개인의 삶보다 집단이 우선이기 때문에 늘 다른 사람의 기분을 고려하고,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말을 해야 하니 일본 사람들처럼 다소 우회적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오차즈케라는 음식이 있다. 오차즈케는 지은 밥 위에 차나 국물을 부어만든 일본의 간단한 요리다. 현재는 그렇지 않지만 일본 교토에서는 집에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 오차즈케를 주면 ‘이제 집에 돌아가라’는 의미를 가질 만큼 사람들이 겉과 속이 다르다.. 멕시코 사람들도 본인의 본심을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으므로 비즈니스에서 곤욕을 치를 때가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급격한 경제발전 아래, 가족, 친구보다 개인의 삶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개인주의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사람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의 성과에 따라 평가받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 근무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타인에게 구애받지 않는 나만의 삶을 살고자 한다. 하지만 멕시코에서는 일보다는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이 가족문화에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본인의 가족을 채용하기 위해 없는 일자리도 만들어내며, 가까운 사람일수록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그들을 돕기 위해 애쓴다.
멕시코 관세청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당시, 그곳의 국장님과 대리님은 가족관계였다. 이처럼 한 기업 안에 가족이나 친인척이 있는 경우가 굉장히 흔하다.
따라서 나에게 굳이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거절을 스스럼없이 직접적으로 한다. 거절하는 주체자 입장을 생각해 보자. 거절을 했을 때 상대방이 기분 안 좋아해 하는 것을 두려워해 거절을 못하고 어영부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 둘에게 모두 손해다. 맞는 말이다. 상대방은 답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답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본인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여기니 말이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거절의 끝을 비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절과 함께 또 다른 기회의 문을 열 수 있으며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에 반하여 멕시코 사람들은 거절을 잘 못한다. 눈치껏 대화 중에 알아듣고, 돌려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집단주의적 성향과 개인주의적 성향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같은 경우는 회사 내에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을 때 ‘내일부터 나오지 마’ 라든가, ‘너 해고야’와 같이 자연스럽게 레이오프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만큼 노동의 유연함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멕시코는 집단에서 융화되지 못한다는 것을 큰 부끄러움, 실패, 좌절이라고 생각하며 조직에 피해를 끼친다는 것이 곧 내 인격이랑 연관 지어 생각한다. 일과 내 인생, 인격의 분리가 아니고 일과 내 삶을 동일시 여기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즈니스의 결과가 갑자기 틀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멕시코 사람들만의 미리 언질을 준 행위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