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최고 미술 천재 부부의 사연
멕시코를 여행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어디일까? 나는 당시 같이 갈 친구가 없어 혼자서라도 1박을 하고 온 곳이기도 하다. 바로 보석, 광산의 도시 과나후아토다.
과나후아토는 은광이 발견되면서 발달한 곳으로, 멕시코시티와 3시간 정도 떨어진 알록달록한 소도시다. 이도시는 멕시코에서 가장 안전하고, 가장 야경이 이쁜 곳으로 알려져 있어 여행객들이 잠깐 머물며 어학당에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가기도 한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벽화가 참 많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그린 질 낮은 그림이 아니라, 과나후아토의 마을과 어울리는 벽화가 마을을 더 예술적이고 아름답게 꾸미고 있다. 우리나라의 2000년대 홍대를 떠올리면 된다.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가장 중심이 된 곳으로, 그곳에서 예술도 하고, 음악도 하고, 놀이터에 모여 기타를 치고 노는 장면들은 본인의 색깔을 예술로 표현하기 위한 젊은이들의 갈망이다. 과나후아토뿐만 아니라 멕시코에 있는 모든 벽화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과나후아토와 벽화의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굴까? 멕시코의 500페소(한화 3만 원)의 주인공인 디에고 리베라다. 뒷면에는 그의 부인 프리다 칼로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둘 중 한 명은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화가나 예술가로서 한 국가의 화폐 모델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그가 천재였다는 반증이다. 디에고 리베라는 중남미지역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로 꼽힌다. 가장 유명한 여자 화가 프리다 칼로와 결혼해서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프리다칼로도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500페소 모델로써 함께 자리한다. 이 디에고 리베라가 태어난 곳이 바로 과나후아토다. 사회사실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배출했으며, 특히 멕시코가 독립되기 전 멕시코의 정체성을 알리는 미술작품들을 많이 그려 현재까지도 멕시코에서 가장 추앙받는 화가이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유럽으로 건너가 그림을 배우고 멕시코혁명 때 벽화를 그림으로써 유명해졌다.
반면 디에고 리베라의 부인, 먼 훗날 디에고리베라의 재능을 넘어선 부인, 몇백억에 본인 그림을 낙찰받은 프리다칼로는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를 앓고 있었다. 소아마비를 앓으며 사고까지 당해, 임신이 불가했다.
이 그림을 보면 본인의 허리를 그가 겪은 사고를 절실히 드러내준다. 흰색 특별 코르셋이 그녀의 척추를 간신히 지탱해주고 있다. 그녀는 18살 때 본인이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여 이처럼 끔찍한 사고를 당하게 된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온몸에 못이 박혀있다. 이 못은 아마도 못이 박혀있을 만큼의 극심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인내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임신이 안 된다는 이유로 리베라는 결혼을 하고 나서도 수없이 많은 바람을 피웠다.
사고로 인해 아이를 가질 수 없고, 낙태를 권유한 의사의 말을 듣고 그린 그림이다. 맨 위 가운데가 낙태한 아이를 표현한 것이며 침대는 허공에 떠있고, 피가 흥건하다. 붉은 탯줄이 본인이 놓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가까스로 연결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낙태로 인한 절망을 사실적으로 나타낸다.
디에고 리베라는 심지어 본인의 처제와도 바람을 피웠다. 내는 작품마다 예술의 걸작이라고 천재소리를 듣는 리베라지만, 가정에서는 결코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이에 프리다칼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를 그녀는 그림으로 승화하는데 이 그림들이 추후 몇백억에 낙찰받는 그림들이다. 특히 <하늘로 떠난 태아>, <작은 사슴>, <두 명의 프리다> 등은 프라다칼로만이 가진 이별에 대한 정서와 리베라와의 끝을 그림에서 아주 직설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사진만 보고 알 정도로 우리나라 대중들에게도 유명하다.
이 작은 사슴은 몸통은 사슴이고 얼굴은 프리다다. 몸에 새겨진 상처와 생이 감당하는 고통의 실상을 알 법하다. 대체로 그녀의 사진들은 누가 봐도 고통임을 알 수 있게끔 힘든 상황을 나타내는데, 이는 그림으로써 고통을 이겨내고자 했던 그녀의 마음일지 모른다.
내가 처음 글을 쓴 계기도 이와 같다. 모든 것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고,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조차 삐걱댐을 느낄 때, 내 감정을 어떤 방향으로든 분출해야 함을 느꼈다. 내 안의 부정적인 요소를 빼내야 했다. 프리다칼로에겐 그림이 유일한 돌파구였으리라.
이 사진을 보자. 두 명의 똑같은 프리다가 앉아있다. 왼쪽은 유럽풍의 드레스를 입고 있고 오른쪽은 멕시코 전통의상 같아 보인다. 반대로, 드레스를 입은 프리다의 심장은 오른쪽과 달리 병들어 보인다. 무릎 위엔 둘을 잇고 있는 혈관을 자르려는 가위가 놓여있다. 오른쪽 프리다의 무릎 위엔 희생이라는 아즈텍문명의 상징인 장식이 놓여있다.
이는 프리다의 분리된 두 개의 인격 혹은 두 개의 인생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실 이걸 가위로 잘라 분리해 살고 싶지만 자르지 못하는 것은 혈관으로 연결된 두 개의 프리다가 있을 때만이 진짜 본인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넉넉한 부와 남부럽지 않은 명성, 외모, 남부럽지 않아 보였던 그녀의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은 교통사고, 남편의 외도로 무너진 한 편의 불행한 인생의 단편을 드러낸다.
예술이란 뭘까? 그냥 나를 드러내는 것을 넘어 나를 뛰어넘는 행위라 여긴다. 사실 그녀보다 훨씬 유명했던 디에고 리베라였으나 시간이 지나 그녀의 그림이 훨씬 더 비싼 가격에 낙찰을 받고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시간이 지나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다. 단순히 가죽처럼 물질적인 것 말고 말이다. 목표를 앞에 둔 우리의 처절한 노력들, 연륜, 지적자산, 친구와의 우정, 부모의 희생•••
손흥민은 손흥민의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지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보이는 것을 뒤에서 만들게끔 한 부수적인 것들이 실로 더 소중하고 우리가 평생 갚아나가고 지켜내야 할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