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신중함이 값진 세대
50대는 40대를, 40대는 30대를, 다시 30대는 20대를 부러워한다. 그건 체력적으로 더 팔팔하고 외모가 받쳐주는 젊음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삶에 무언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인생을 살아갈수록 후회는 더 많이 자리한다. 포기할 것도 많고 가진 게 많아 잃을 것도 늘어난다. 그러니 새로운 것이 꺼려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인연, 새로운 도전 등등.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매일 같은 현재를 불만족하게 되니, '만약'이라는 이루어질 리 없고 되풀이될 리 없는 허상에 기대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그 나이 때 가장 했었어야 하는 것. 어릴 적부터 많이 했어야만 좀 더 편한 것. 모두가 그렇게 말하니 진짜 당연시되는 것. 공부나 여행, 도전의식, 취미생활,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연애'다.
많은 어른들이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한다. 이런 사람도 만나보고, 저런 사람도 만나보면서 본인을 성찰하고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기르라는 의미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만나면서 머릿수 채우기로 가볍고 재밌게 살라는 게 아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로또도 많이 사면 많이 살수록 당첨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연애도 많이 해봐야 본인이 결혼 적령기 때 원하는 배우자를 고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는 일은 배우자의 인생 전체가 내게 오는 것이므로 경험치가 정확히 X2가 된다. 결국 이 경험치는 양적으로 정확히 2배가 되는 거니, 남은 본인 인생 전체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가 맞다. 본인에게 아무 쓸모없는 지식과 경험, 취향과 가치관, 마인드가 온다면 X2는 커녕 결혼 안 하는 것보다 더 못하게 되는 마이너스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남녀 간 서로의 취향이나, 조건이 잘 맞아야 한다. 더 건강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자기 관리를 하는 이유도 결국 본인과 같은 높은 수준의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 위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인 것이다.
즉, 사람들이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하는 이유를 정확히 해석해 보자면 배우자를 고를 때 내 자아와 맞지 않는 사람을 걸러내는 힘을 기르고자 함이다. 많이 만나면 많이 만날수록 스스로 외연을 넓히고, 이는 곧 수련의 대상이 된다.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가 경기 당일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그전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어야 한다. 이 시행착오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넘어져도 보고, 다쳐도 보고, 실수도 하면서 최상의 아웃풋을 낼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을 터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전의 날이 왔을 때 금메달이라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결혼에 있어 그 시행착오가 연애인 거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어떤 사람을 내가 좋아했고, 어디서 매력을 느끼는지 나 스스로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게 된다.
근데 과연 스스로의 자아를 연애를 많이 해야만 가질 수 있을까? 기성세대의 말처럼 ‘연애를 많이 해봐야겠다’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다 이상한 사람 만나서 온갖 트라우마에, 피해의식에, 시간낭비에,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면 그건 어떻게 보상할 건가? 연애를 많이 해보라는 건 한마디로 똥인지 된장인지 많이 먹어보라는 소리다. 그래야 나중에 된장맛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는 것. 근데 현명한 사람은 멀리서 똥냄새만 맡고도 된장과 똥을 구별해 피해버린다. 이건 연애라는 경험 자체를 양적으로 굳이 많이 하지 않더라도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다.
즉, 연애뿐만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을 하거나 본인만의경험, 책과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보는 안목은 충분히 기를 수 있다. 혼자 여행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혼자 여행하며 인사이트를 얻는 목적도 있겠지만 혼자를 즐기는 건 어디에 의존하지 않고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힌다.
연애는 본인이 성숙해지는데 많고 많은 방법 중 그저 하나일 뿐이고, 연애를 할 때 본인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거 하나면 된다. 오는 기회 피하지 않고, 가는 기회 잡지 않으면서 그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우리 세대가 연애를 대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세상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연애를 할 때 효율적인 방법을 소개하자면억지로 내가 좋아하는 걸 찾기보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소거하는 방식이다. 수능시험처럼 5지선다형 문제를 풀 때에도 사실 문제풀이를 해야만 답이 나오는 수학을 제외하고는 하나씩 소거하는 편이 정답을 찾는 데 있어 수월하다. 소거하면 나는 어떤 이성을 결국에 좋아했는지가 보인다. 예를 들어 내가 지난 연애를 겪으며 소거했던 경우는 잘못된 경제관념을 가진 이성과 자존감이 낮은 이성이다. 원색적인 비난이 아니라, 온전히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므로 누군가 그걸 부정할 이유도 없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데 누가 뭐라 하나. 이 소거대상은 많으면 많을수록 진짜 걸러야 할 대상이 누군지가 명확해진다. 즉, 내 자아를 찾는데 가장효과 좋고, 빠른 방법이다. 내 자아가 혹여나 너무 까탈스럽다고 하면 상처도 받아보고, 후회도 해보면서 그 기준을 줄여나갈 수 있다. 반대로 내 자아가 너무 후하다 생각되면 조금 더 마음이 가는 기준을 정해보고, 그 잣대로 사람을 평가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단까탈스럽든 후하든, 지난 인생을 돌이켜볼 때 이성을 볼 때 살아가는 마인드 자체가 깨끗해야 한다는 건 꼭 봐야한다. 이거 하나만큼은 20대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을 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몰카를 찍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본인 의자를 들고 타는 사람 등 현실 세계의 축소판이다. 현대사회엔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다. 경제적인 문제, 가족 간 문제, 진로, 건강, 꿈, 모든 갖가지 문제로 발생한 스트레스가 정신질환으로 나타나고, 본인의 상황을 정당화할 그럴싸할 대상을 찾아 혐오한다. 한마디로 X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이 사이에서 내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찾는 건 사실 하늘의 별따기다. 결혼정보업체에서 남녀 통틀어 왜 돈 많고 잘 나가는 사람이 결혼 못했는지를 살펴보면 결국 본인의 이상형을 못 찾았기 때문이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이런 사람을 찾을확률은 더 희박해지기에 결론은 하루라도 젊을 때 양적인 연애가 아니고 '사람을 보는 안목'을 기르는데 집중해야 한다. 양적인 연애만 고집하다 이런 이상한 사람한테 잘못 걸리면 인생 바로 종 친다. 한번 종 치면 다시 회복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어, 한번 만나보고 좀 아닌 거 같으면 다른 사람으로 환승하고, 또 좀 만나보다 아닌 것 같으면 환승하고. 더 자극적인 거, 더 본인 조건에 맞는 거 짧게 짧게 찾아다니는 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중독이다. 흡연자가 담배를 끊으면 금단현상이 오듯, 알콜 중독자가 술을 끊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즉, "많이 만나봐라, 연애를 많이 해야 사람을 볼 줄 안다"라는 기성세대의 말은 단편적이고 무책임한 말이다. 개인주의 사회에다가, 각자의 인생은 제각각 다르고, 주변환경도 극과 극이라 단순히 많이 하면 좋다는 건 더 이상 이 현대사회에 성립되지 않는다. 가볍게 조금조금씩 자주 아무나 만나는 게 아니라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그 관계가 '양질의 관계'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설령, 그 노력을 했는데 끝이 안 좋았다 하더라도 그게 양질의 관계가 쌓였다면 타인에 대한 존중이 깊어지고 관계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고, 내가 어떤 상황일 때 이런 행동을 하는지 스스로를 더 깊이 알게 된다.
연애 많이 해서 성숙해질 사람이었으면, 이미 다른 걸로 더 성숙해지고도 남았다. 그저 누군가 이득 본 거 같으니까 성숙해진 것 같으니까 맹목적으로 따라 해보라하는 건, “내일 이 주식 오르니까 너도 따라 사” 이 말과사실 뭐가 다른가 싶다. 나랑 맞는 옷이 아닌데 남들이 이쁘다고 따라 사면 만족스럽나? 연애는 양보다는 질이다. 본인만의 '색'에 더 중점을 두고 인생의 선택을 해가야 한다. 우린 그걸 하루빨리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