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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Aug 19. 2024

돈 안 섞인 의사결정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리뷰

돈미새. ‘돈에 미친 새끼’를 줄여 모두에게 통용되는 말이다. 이걸 응용해 여미새(여자에 미친~), 남미새(남자에 미친~)로 얘기한다.

제목 그대로,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나라는 세계를 가지는 것.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본인이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 이 책은 돈의 액수로만 규정되어 온 삶의 평가와 척도, 의미에 대해 일침하며 이 세상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작가에, 좋아하는 제목에. 이 두가지가 맞아떨어지면 나는 책을 펼쳐보지도 않고 이렇게 바로 사는 편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한 가지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저자는 그 인생을 본인과 비교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 가지 선택으로만 쭉 달려왔다면, 선택을 바꾸며 산전수전 겪은 저자의 인생을 회고한다. 결국 지금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해가며 한번뿐인 인생 잘 살아보자는 이야기. 순간의 선택이 삶을 좌우한다고 믿는 내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자, 우리는 어떤 선택을 마주했고, 현재 어떤 선택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에 맞선 이들은 저마다 각자의 절실한 이유가 있다. 대개 스스로를 합당하다고 설득하며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이는데 이는 대개 타인에게 더 나은 본인의 모습을 투영하기 위한 확률이 높다. 나이가 어릴수록 더 그렇다. 가령, 40대의 선택보다 20대의 선택이 좀 더 타인에게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삶을 대하는 안목을 기르는 과정이라 그렇다. 무엇보다 아직 본인 스스로가 누군지 잘 모른다. 이 결정은 대개 사회 시스템이 큰 영향을 끼치곤 한다.

예를 들어, 스무 살의 대학생이 있다고 하자. 사회는 여태껏 보통 일반인으로 정직하게 클 기본 교육과 소양에만 집중하기 위한 시스템으로 짜여있다. 20살이 되기 전까지 사회는 그냥 시키는 것만 곱게 하는 사람들이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A는 달리기를 잘하고, B는 수영을 잘하고, C는 말하기를 잘하는데 공부만 잘하는 사람을 치켜세운다. 그 이유는 본래부터 획일화된 한국교육의 문제점도 있지만 이는 번외로 두고, 진짜는 선택을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애써 본인의 과감한 선택이 더 위험하다고 가르친다. 리스크를 애초에 없애버린다. 그게 개인을 관리하는 조직입장에서는 편하니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살 수 없고, 타인과 연대하면서 살아간다. 서로 어려울 때 도움을 받기도 하고, 힘들 때 위로하기도 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하기도 한다. 이를 핑계로 늘 인생의 선택은 타인이 개입돼 있다. 우리 서로는 겉으로는 모두 같은 길을 감으로써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이는 위험한 리스크를 햇지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사실은 더 이상 높이 오르지 말라는 ‘암묵적인 강요와 억압’이다. 권력을 가진 기득권자가 그 권력이나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경쟁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쇼를 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일반인들과 다른 선택을 하면 더 삶이 도전적이고, 모험적이고, 예정된 어려움 속에 예상치 못한 성공과 행운이 닥칠 수 있거든. 그걸 애초에 다 막는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는 이 메커니즘을 파악하고, 본인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평일에 연차 내고 백화점 한번 가봐라. 아니면 공원에 가봐라. 스타벅스에 한번 가봐라. 이 말만 들어도 사람 별로 없을 것 같다. 본인처럼 회사원에, 자영업자에 모두 일하느라 바쁠 것 같다. 근데 실제 가보면 느낄 텐데 사람 참 많다. 물론 이 중에는 여행하러 온 사람도 있고 본인처럼 연차 써서 여유를 즐기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편하게 남들 놀 때 쉬면서 돈 버는 사람들이 진짜 많은 거다. 이들은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도 그 자체의 틀을 깨지 않고 그 안에서 나만의 것을 만들어간 사람들이다.

이 시스템은 견고하고 거의 완벽에 가깝다. 그러니 1960년대 보릿고개를 거쳐 근 60년이 넘도록 모두가 잘 교육받아 지금 경제대국 한국을 만들었다. 그중에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한 사람들은 대통령도 하고, 고위 공무원도 하고, 총장에, 국회의원에, 전문직에, 개인을 너머 조직, 국가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 근데 이 시스템을 충실히 따른 사람들은 단편적인 '성공'이라는 개념보다 좀 더 잘 살 수 있는 기회의 '확률'을 좀 더 얻은 것뿐이란 걸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 시스템을 쓸데없다고, 본인만의 길을 가라고 일침 할게 아니라 우리는 철저히 이용해야 한다. 그냥 버리고 본인의 독단적인 길을 고집하기보단, 이 시스템 자체를 깨고 나오기보다 이 시스템의 틀 안에서 나라는 우주를 조금씩 만들어가야 한다. 그게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진정한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법이다.

  

자, 그럼 이 시스템 안에서 결국 돈이 아닌 어떤 걸 욕망하며 살아야 의미가 있는 걸까? 누군가 "너는 돈 말고 뭘 갖고 있니?"라고 물었을 때 뭐라고 답할 것인가. 내 욕망에 무슨 메커니즘을 넣어야 할까? 나만의 시간을 불어넣는 것이라 생각해 보면 된다.

사람의 모든 행동에는 관성이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더 하고 싶어지고, 안 좋아하면 더 안 하고 싶어진다.가령, 천원을 벌었으면 만원을 벌고 싶고, 십만원을 벌고 싶다. 연봉이 3천만 원으로 평생 같은 회사를 다니고 싶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인간의 욕망의 메커니즘을 알기 때문에 회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시간의 가치에 대한 보상으로 연봉을 2년 차에는 4천만 원, 3년 차에는 5천만 원 이렇게 올려주는 것이다.

반대로, 산책을 하기 싫어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산책하는 순간을 그 사람은 더 피하게 된다. 기회가 있더라도 어떻게든 산책을 더 안 하려고 한다. 그게 관성이다. 어릴 적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수영을 시키기는 매우 곤란하다. 물과 상관없는 상황으로 본인을 더 몰게 되고 결국 어떤 엄청난  '계기'가 본인에게 있지 않는 한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즉, 내 욕망에 시간이라는 메커니즘을 넣을 때 우리는 비로소 관성을 깨고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것을 만들어갈 수 있다. 누구는 100억 자산가 밑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인도 카스트제도 신분제에서 ‘수드라’로 집도 없이 태어난다. 이와 같이 출발선이 다른 돈과 자산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시간은 하루 24시간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 시간을 내 욕망과 결부해 쓰고 싶은 대로  움직이는 것이 곧 스스로의 삶을 주도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물을 무서워하는데 수영을 해서 이 트라우마를 깨야겠다고 기존의 관성을 깨고, 시간을 들여 어떻게든 수영을 배워보는 것이다. 더 힘들고 불편하겠지만 어떻게든 하는 거다.


어떤 선택지가 있을 때 A길은 내가 늘 해 오던 것이다. 익숙하기도 하고, 관계자도 모두 알고, 언제든 해도 편한 일이다. 근데 B는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다. 일도 하나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더 어렵고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 같나? 기존의 익숙한 걸 버리고 내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는 B로 가는 게 맞다. A는 익숙하기 때문에 더 노력하고자 하는 시간을 들이지 않으나, B는 더 나아지고자 시간을 투자하기 때문에 미래를 볼 때 더 발전된 스스로를 만날 수 있다. 어떤 분야든 이 메커니즘은 동일하다.

예를 들어, 물건 하나를 사는데도 관성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간을 충분히 고려해 조사를 해서 무언가를 구매했을 때는 비로소 그 물건이 더 값지게 된다. 명품백 하나를 사도 그 회사의 가치에 대해 충분히 반해 팬이 되기도 하고, 커피 하나를 마시더라도 공정무역과 관련된 소비를 하기도 한다. 연필 하나를 사더라도 그냥 연필이 아닌 커피 찌꺼기로 만든 연필을 사서 친환경을 대해 깊이 고심할 수도 있다. 즉, 모든 것에 본인의 시간이 투영된다는 것이다.

이런 삶만이 타인에 대한 비교와 부러움, 질투를 막는 가장 큰 기술이 된다. 아무리 돈이 많이 벌리는 선택지를 다른 사람이 해도, 아무리 의미 있는 일을 해도  내 시간이 들어가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그건 그냥 남의 일이 된다. 그냥 인생엔 결국 ‘나 혼자밖에 없구나’라고생각하면 삶이 더 주체성이 띄게 되고 값지게 변한다.


우리는 이 삶을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는 관성을 깬 내 들인 시간이 바라는 나만의 이상을 꿈꿔야 한다. 체게바라도 그렇게 말했다.

Seamos realistas,
Pero hagamos lo imposible.

(현실주의자가 돼라, 그러나 가슴속엔 늘 불가능한 꿈을 꿔라)


그게 지금 내 삶을 가장 ‘안전히’ 빠른 시일 내 바꿀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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