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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Feb 15. 2023

무뎌짐에 관하여

성장과 만족, 그 사이의 균형에 대한 소고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 '쾌락적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원하는 것을 얻거나, 간절히 하고 싶은 일을 이루었을 때 행복지수 변화 과정이 참 흥미롭다. 물건을 사거나 간절한 일을 하기 전보다 행복지수가 급격히 높게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행복지수는 단 2개월만 지나면 쾌락의 정도가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마치 애초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린 시절로 돌아가보자. 누구나 어릴 적 남자아이는 로봇, 여자아이는 인형을 부모님께 사달라고 조른 적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지금 나이가 되도록 선명히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한 두 번이 아니라 매번 그랬나 보다. 마트에 가면 종종 장난감을 보는데, 장난감 가격을 보면 늘 부모님께 뒤늦게 죄송하다.

 장난감을 안 사주면 울며 떼쓰고, 삐지고, 눈이 퉁퉁 부어 사진을 찍었던 적도 부지기수다. 마침내 부모님이 큰맘 먹고 나에게 장난감을 사주셨을 때 난 한없이 기뻐했다. 하지만 1개월만 지나면 그 장난감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미 질려버렸고 또 다른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다녔다. 인형도 마찬가지다.

 늘 새로운 것, 색다른 것, 많은 것을 소유하는 삶은 그 물건의 본래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한다. 소중한 것도 더 소중하지 않게 되고 끝내 그 어느 것으로도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애초에 미니멀하게 사는 삶은 사람과 물건의 본질적인 가치를 높게 사기 때문에 현재에 충실하고 내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누구나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요즘은 벌기도 싫다고 한다. 그냥 굳이 벌지 않고 많이 가지고만 싶다고 한다. 23년 대한민국 근로자들은 얼마를 벌면 행복해하고 만족해할까? 유튜브 취업준비생들이 많이 보는 캐치티비에서는 길거리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본인의 연봉에 만족하냐고 질문을 한다.

 10명 중 9명이 불만족한다고 답했다. 연봉 1억이 넘는 고소득자의 경우에도 본인의 연봉에 만족하지 않고 벌어야죠”라고 답했다.     

이처럼 물질만능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소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근로자의 경우 월 600만원이,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의 경우 월 1480만원이 행복감의 정점을 느끼는 소득이었다. 이 이상의 돈을 버는 대신 만약 내 시간을 들여 더 일을 해야 한다면 오히려 일을 안 하고 돈을 안 벌겠다는 것이다. 일정 수준 소득을 넘어서면 내 행복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반증이다.

 이것이 무뎌짐이다. 새로운 장난감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높은 연봉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자연스레 흥미를 잃는다.  늘 사람에게 자극적인 것은 또 다른 자극적인 것으로 대체된다. 회사는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새로운 아이템들을 개발하고, 고객은 광고와 마케팅에 현혹되어 구매로 이어지는 무한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답은 바로 만족에 있다. 성장과 만족의 균형을 찾는 것. 정신과 사고를 간단하게, 지금에 만족하고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며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인생을 현명하고 가치 있게 사는 가장 빠른 길이다.      

 

 길고 긴 취업준비를 끝내고 마침내 강남에 왔다.

'나 같은 울산 촌놈도 이런 땅을 밟아보는구나'

타이밍이 운 좋게 잘 맞아떨어져 해외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서울 강남은 나에게 해외보다 더 낯설다. 외국인 친구가 나에게 서울에 관해 물은 적이 있다. 많은 형용사가 생각났다.

 서울은 크고, 어지럽고, 넓고, 높고, 춥고, 사람이 많고, 근데 외롭고, 욕심이 들끓는 곳이야

그 외국인 친구는 서울에 사는 나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렇다. 서울 강남은 탐욕이 들끓는 그런 곳이다.

 불과 처음 서울에 왔던 3년 전보다도 몸집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강남을 바라볼 때면 이 도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도시를 닮았을 테다. 경이로운 야경과 거대한 빌딩숲 속 명품을 둘러맨 사람들의 가슴은 한없이 외롭다.  

 숨만 쉬어도 무언가를 갈구하게 만드는 곳. 가만히 있으면 도태된다고 여기는 곳. 사람들은 늘 어디에 쫓기는 사람처럼 빠른 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삶은 대체로 초라하고 낯 부끄러운 일의 연속이다. 모두가 평범하게 매일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번다. 고층빌딩과 한강뷰 아파트로 큰 팝콘소리를 뿜으며 외제차가 들어간다.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은 어떻게 부를 이뤘는지도 궁금하면서도, 나 스스로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맴돈다. 이마저도 적응하고 무뎌지고 있다. 나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나가기 위해 오늘도 나만의 철학을 되돌아본다.

 한강뷰아파트 속 사람들에게도 만족은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찾고 그것은 또 언젠가 무뎌진다.

 마라톤과 같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즐기는 것이다. 주변에 소중한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자.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주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것을 성실히 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뎌짐을 견딜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원룸에서 아파트로 오면서 나는 내 행복지수가 미국주식의 3배 레버리지 TQQQ와 동일하다고 믿고, 내 행복지수도 3배 증가할 줄 알았다. 입주를 하지도 전에 지금 내 행복지수는 원래대로 돌아왔다. 전세가 아닌 내 집을 언젠가 갖게 되더라도 이마저도 기필코 무뎌질 것이다.

 더 넓은 집, 더 좋은 차, 더 성장하는 내 삶. 그 성장사이의 만족이 내 삶을 가장 행복하게 함을 20대에는 알지 못했다.      




비교는 그 어떤 환경에서도 나에게 독이다.  SNS를 켜보자. 지금 나는 나의 평범함과 비교한 남들의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다. 굳이 스크롤을 계속 내려가며 열등감을 더 느끼는 중이다. 정작 기분은 좋지도 않은 의미 없는 좋아요를 누른다. 단연 내 인생이 초라하게 비칠 수밖에 없다. SNS는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고 내 삶의 의구심을 품게 한다. 지금 나는 괜찮은 걸까?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없던 질투와 시기가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유일하게 허락하는 비교가 있다면 바로 나 스스로와의 비교다. 내가 한강 아파트뷰를 살지 않아도, 내가 강남에서 외제차를 끌지 않아도 나만의 길을 개척해 가며 성장과 만족의 균형을 저울질하며 인생의 행복을 찾아갈 것이다. 그 행복이 정확히 어디 있을지는 모르지만 행복을 찾는 방법만큼은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다.

 여기서 맹점은 행복은 막연하게나마 찾을 수 있지만, 내 안에 불행만큼은 확실히 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바로 후퇴하는 삶이다.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1년 전의 나와 비교해서 지금 객관적으로 후퇴하고 있다면 그것은 명백히 불행한 삶이다. 본인의 삶을 지금 당장 바꿔나가야 한다.

 내가 6평 원룸에 2년간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하면 행복지수가 (쾌락적응에 의해 얼마 가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자녀를 가지고 더 큰 집을 매매한다면 전세로 사는 행복보다 또 다른 더 큰 행복을 주겠지.

 하지만 넓은 아파트의 내 집이 없어지고 6평 원룸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건 기필코 불행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늘 새로운 것에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32평 넓은 아파트에도 내 삶이 적응이 이미 되어있는 상태이기에 원룸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을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빠 사업이 부도가 나고, 원룸 빌라에서 잠시 산 적이 있다.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았으며 어린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자진해서 할머니댁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 생활을 2년 동안 했다.

 어쩌면 강남 빌딩숲의 수많은 무표정의 가면을 쓴 사람들도 삶을 더 나아지기 위한 수단이 아닌 지금 삶에서 조금이라도 후퇴하지 않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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