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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그리 Oct 28. 2024

겉모습도 (꽤나) 중요한 이유

두 눈으로 우린 뭘 보고 있는가

옷차림, 외모, 표정과 헤어스타일, 키와 몸매 그리고 말투. 이에 3초 만에 정해지는 한 사람의 첫인상.

그 첫인상은 누구에겐 매력적으로, 누구에겐 최악으로그렇게 상대적으로 기억된다. 평가자가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중요도는 달라진다. 이 첫인상은 상대방을 제대로 알기 전까지 대개 그 사람의 선입견으로 자리한다. 그 선입견에 본인이 휩싸이지 않기 위해 남녀를 불문하고 현대인은 성형수술을 하고, 비싼 브랜드 옷을 사 입는다. 여성은 가슴수술을 하며, 남자는 키높이구두를 신고, 지방사람들은 사투리를 고치려애쓴다. 그 주체가 개인 대 개인이라면 평가와 재단은 각자의 몫이나 집단이라면 자칫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십상이다. 현대사회에서는 그 집단을 직업, 나이, 국가, 지역, 인종, 종교로 대개 묶는다. 말 그대로 나이 먹고 유치하게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이다. 하나의 범주로 여기기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특정 종교와 직업을 배척하거나 무시하고 얕잡아보는 일은 일상에서 아주 흔하며 심지어 오늘자 뉴스에서도 나왔다. 현대차가 삼성전자보다 왜 좋은 회산지, 왜 취업준비생들은 어떤 특정기업에 취업해야 하는지 상세히 말해주고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언론사에서 이런 기사를 뿌려대니 아직 한국도 많이 멀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처럼, 오늘은 보이는 것이 왜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인지 말해보고자 한다. 단 전제가  있다. 그 보이는 것에 있어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에 치중해야지, 타인이 중심이 되어 본인이 아닌 모습을 꾸며내는 마치

SNS 세계처럼 보이는 것은 오히려 인생에 해를 끼친다. 내 삶을 가장 빠르게 망가트리는 길이니 명심할 것.


자, 보이는 것엔 먼저 직업이 있다. 앞선 기사처럼 대기업에 다니면 그 누구에게도 본인의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본인의 위치를 나타내주는 가장 굳건한 증명이 된다. 설령 안에서 그 어떤 하찮은 일을 하고 있든 말든 그 명함은 보이는 것에 있어 타인의 무조건적인 존경을 받는다. 그 이미지로 얻는 것도 무시하기 힘들다. 결혼에서나 소개팅에서나, 교우관계나 모든 면에서.

그다음 외관. 남자는 눈썹을 잘 깎고, 손톱발톱 그리고 수염과 코털만 잘 관리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얘기가 있다. 옷은 그냥 평범하게 여름에는 반팔티에 청바지, 그리고 겨울에는 무채색의 코트에 슬랙스만 입어도 무난하다. 정 본인이 옷에 관심이 없다면 연인이 골라주는 옷을 사 입어도 상관없다. 이게 진짜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게, 비즈니스 미팅은 물론이고 처음 보는 이들과 모임에서 얘기를 나눈다 해도 얼굴에 털이 많거나 눈썹정리가 안 되어있거나 하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려 해도 어떻게든 눈길이 간다. 단적으로 이거 하나로 자기 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라 단정 짓긴 어렵지만, 대화의 깊이가 깊지 않다면 결국 시간이 지나 상대에 대해 생각나는 부분은 이 외관상 모습이다. 개성 있게 자기만의 취향을 가지고 신발이면 신발, 옷이면 옷, 헤어스타일이면 헤어스타일 드러내는 것도 좋다. 난 취향이 인생의 전부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본다. 이들은 본인의 취향을 세상에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들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 본인이 뭘 좋아하고, 어떻게 입어야 더 잘 어울리는지 아는 이런 사람들은 단순히 멋진 스타일을 넘어 본인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삶도 패션처럼 본인의 역량껏 꾸밀 수 있는 사람이다. 특히 패션업계에 있는 사람들이나, 관련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최근에 많이 만났는데, 그 아우라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근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적어도 최소한의 것들은 챙겨야 한다는 거다. 비즈니스미팅이 있을 땐 더하다. 반팔을 너저분하게 입고 미팅에 나간 사람과 와이셔츠와 양복을 멀끔히 차려입고 미팅에 나갔을 때 거래가 성사될 확률은 실제로 천지차이다. 미국에서 표본집단 100명을 상대로 반반 나눠 몰래카메라 형식으로 이를 기획한 적이 있는데, 양복을 멀끔히 입은 쪽이 79% 이상 상대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고 표현했다.

과거보다 유해진 오피스문화에서도 그렇다. 사람을 대하는 서비스업 특히, 여의도 증권맨 옷차림이 양복을 고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겉모습 하나로도 고객에게 더 큰 신뢰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벤츠나 BMW등 외제차를 파는 딜러도 양복을 입지 않은 모습을 난 못 봤다.


누군가는 겉모습보다 심성, 가치관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맞다. 근데 이들도 겉모습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상대가 본인을 대하는 태도가 겉모습하나로 달라지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겉모습이 누추해도 실력만 있어서 뜬 사람도 물론 소셜미디어나 연예계에 부지기수다. 뜨고 나서 그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변했나를 보자. 특정 실명을 언급하긴 어렵지만 이들 거의 모두가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변해있다. 개과천선이다. 평가에서 자유로운 삶이 가장 이상적이며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은 맞으나, 굳이 우리가 타인에게 본인을 안 좋게 평가하도록 둘 이유는 없다. 날 싫어하는 사람을 굳이 만드는 건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일이다. 심지어 현대사회는 겉모습으로 그렇게 사람을 재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본 중에 기본은 하자는 얘기다.


겉모습은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행동도 포함한다. 친절만 베푼다고 좋은 사람이 아니다.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올해 초 모임의 장을 맡아,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끌어간 적이 있었다. 참여하는 인원은 모두 나보다 최소 5살 이상 어린 인원들이었고, 내 기준에서는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으로 대한다고 생각했다. 허물없이 가깝게 지내는 것이 좋은 인상으로 기억될 것이라 믿었다. 근데  결과는 달랐다. 그들은 나 스스로를 전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 오히려 그 친절과 호의를 불편해하는 인원도 있었다. 결국은 나만의 호의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으며, 서로 간의 선을 지키고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선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관점은 현대사회에서 더 중요시되는 게, 요즘 청년들은 아무도 피해를 보지 않으려 한다. 피해는 최소화하고 본인의 권리만 챙기는 게 당연시됐다. 그들이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접근하면 당사자인 나도 손해를 똑같이 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타산이 맞다. 서로가 단단해진 상태에서 긴장을 가지고 개인감정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또 나처럼 이런 내게서 상실감을 받을 걸 생각하면 두려움이 엄습하는 아이러니. 이건 세상을 탓할 문제다.


결국은 어느 한 사람에 있어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관점은 ‘거리를 둔 적당한 예의와 깔끔한 외관’이 합쳐졌을 때다. 남자는 여자, 여자는 남자 이런 이성관계에서도 결국 이성적인 호감을 살 수 있는 것은 본인을 치장하는 것에 관심 두는 게 아니라, 깔끔함과 적당한 예의 이 두 가지가 우선시 돼야 한다고 본다. 이 두 가지에서 서로는 본인이 배려받는다고 느낄 것이고, 이는 앞서 말한 옷차림, 말투, 첫인상 이런 총체적인 부분들이 모두 결정한다.


이 말을 왜 하게 됐냐. 오늘 중국을 8년 만에 왔다.

8년이 흘렀음에도 여기만 시간이 멈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공동체의 예의를 부탁하기엔 중국은 아직 꽤나 낯설고 어렵다. 이 감정은 베이징과 상해처럼 중국 해안가 도시가 아닌 내륙으로 올수록 더 짙어진다. 새치기를 한다거나, 길거리에 가래를 뱉고, 덥다고 웃통을 벗고 다닌다거나, 어깨를 치고 가고, 최소한의 자기관리된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본인이 선한 심성과 호의를 가지고 있더라도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호의가상실감으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나는 타인의 어떤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나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본 어쩌면 느끼는 게 많은 값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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