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그리 Nov 05. 2024

고마운 사람이 있으신가요.

무엇이 기적을 만드나

청년들이 일을 안 한다.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최소 100:1의 경쟁이 예고돼 있다. 자영업자들이 장사가 안돼 죽으려 한다. 의사들이 파업을 한다. 정치는 개판이고, 북한은 옆나라 전쟁에 참여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회사 삼성전자가 망해간다. 대기업들이 희망퇴직을 받는다. 미 대선은 하루 남았다. 누가 되든 많은 게 바뀔 것이다. 희망찬 얘기보다는 국익에 좋지 않은 일들만 예견돼 있다. 자국우선주의에 따라 이제 약육강식 즉 강한 국가, 강한 사람만 살아남는다. 그만큼 기술과 능력을 가진 사람은 더 부를 축적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한없이 나락으로 가 격차는 더 벌어진다. 과거에 이론으로만 알고 있었던 이 논리는 이제 곧 우리 모두가 피부로 체감한다는 소리다. 나도 그랬다. 적어도 내 주변엔 없는 줄만 알았다. 착각이었다.그들을 반면교사, 타산지석 삼으라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얘기하고 싶어 나는 오늘 글을 쓴다.


일전에 2030의 인생이 꼬이는 과정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은 없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건 최소한의 자기 객관화와 주변인들의 시선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꼭 해야 하는 건 없지만 꼭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늘 명확했다. 각자 인생의 이정표는 답이 아니라, 이렇게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인지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 근데 이걸 말하면 뭐 하나. 가장 가까이서 우울과 무기력으로 삶이 망가진 동생이 있다.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다. 주변도 못 챙기는데 사실 이런 말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니는 건 큰 의미가 없다. 그는 페루에서 초중고를 나와 달랐던 문화로 한국사회에서의 적응을 힘들어했다고 한다. 자유분방한 성격과 솔직함으로 재밌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부모님은 아직 페루에서 사업 중이시고, 한국에서 혼자 아무도 본인을 케어해 줄 사람이 없었다. 처절한 외로움과 한국 사회생활의 막연한 두려움은 본인을 더 움츠리게 했다. 똑똑하고 외국어 역량이 뛰어나지만 활용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의 삶은 실제로 처참했다. 한 달짜리 계약직을 전전하고 그 한 달이 끝나면 그 돈으로 집안에 다시 틀어박힌다. 밤새 게임을 하고 오후 1시에 일어난다. 심할 때에는 오후 4시~5시에 일어난 적도 있다. 그때서야 일어나서 배달음식을 시킨다. 그리고 폰을 보면서 빈둥대다 밤 10시부터 다시 게임에 빠진다. 그게 일주일이 되고, 이주일이 되고 바깥세상은 점차 본인에게서 다른 세상인 듯양 그렇게 멀어져 간다. 살은 계속 찌고, 피폐해진다. 돈이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으면 다시 계약직을 알아본다. 외국어 역량이 뛰어나기에 단기 통역알바나, 번역거리는 합격이 잘 되는 편이다. 이게 오히려 그에겐 필요악이었던 것.

사회는 그를 루저라고 손가락질한다. 희망을 주기는커녕 더 숨게 만든다. 그는 이 환경 속에서 누군가에게 손내밀기가 힘들고, 위로해 달라할 수도 없고, 주변인들과 연락도 끊겨 기대어 투정 부리기도 힘들다. 누구는 결혼하고, 누구는 대기업에, 전문직에 다 자리 잡고 떳떳한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는 좌절에 빠진다.


근데 그에겐 딱 한 명, 그를 지켜봐 주는 친구가 있다. 그의 잠재력 하나 믿고 계속 아침마다 동기부여를 해주고 힘내라는 말을 한다. 게임을 정 하고 싶으면 시간을 정해 할 수 있도록 절제력을 가르친다. 배달음식이 건강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말한다. 단순히 힘내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외국어 능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채용공고나 온갖 기회를 찾아봐준다. 본인이 퇴근하고 직접 자소서첨삭을 해주고, 본인이 지원하는 것처럼 성의껏 도와준다. 지원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학교선배를 찾아, 잘 봐달라는 말까지 한다. 친구는 그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빚진 것도 없다. 받아야 할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그저 이 친구가 잘됐으면 하는 대가 없는 선한 영향력이다. 그냥 ‘친구’니까.

결과는 어땠을까. 실제 지금 그 동생은 새로운 기회를 얻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고 있다. 100% 곁을 지켜준 이 친구 덕분이다. 나는 현재 그 둘을 가장가까이서 바라보고 있다.

 

기적은 결국 사람이 만든다. 그걸 본인이 만들 수 없다면 주변에서 이렇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이것도 다 본인 복이다.

누군가는 돈 많이 벌어 잘 사는 게 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한다. 근데 그게 목적이 되면 결국 끝은 공허뿐.본인의 가치와 꿈이 어그러지지 않도록 그 수단이 되어주는 것이 돈이어야 한다. 그 본연의 가치는 이 동생처럼 본인이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일 수도, 나만 잘살자가 아닌 함께 가자는 공생일 수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둘만의 우정일수도, 가족에 대한 사랑일 수도, 본인이 이루고 싶은 꿈일 수도 있다.


더 부자여야 하고, 더 강해야 하고, 더 잘나야만 하는 이 세상 속에서 과연 그걸 다 가졌을 때 나는 뭘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을까를 스스로 떠올려본다. 인생은 나이테로 우월을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오늘만큼은 이 동생이 내겐 꼭 형 같다. 그냥 그렇다.

이전 24화 한국 청년은 왜 우울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