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의미
지인이 퇴사를 고민하면서 전화가 온다. 상사에게 너무 시달리고, 월급도 쥐꼬리만 한 데다가 앞으로의 비전이 없다고 한다. 잠시 쉬다가 다시 일자리를 알아볼 계획이라고. 이와 반대로, 오늘은 S-OIL 신입사원 채용이 급작스럽게 중단이 됐다. 인적성검사까지 다 치렀는데 지원자들은 허탈해하며 충격에 빠져있다. 보통채용에 있어 특히나 이런 대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회사에 대한 이미지와 신용, 모든 것이 날아가기 때문에 회사로서는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어쩔 수 없는 최후의 보루였을테다. 이유는 역시나 관세 부담으로 인한 회사 경영 악화라고. 누구는 퇴사하고 싶고, 누구는 채용 인적성검사가 취소됐다고 좌절할 정도로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아이러니.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얘기고, 이 좌절한 이들도 끝내 어느 곳에는 취업을 할거고, 하루에 8시간 이상 일을 할 것이고, 일에 찌들어 퇴근길에 삶에 대한 회고로 가득 찰 것이다.
이와 반대로 누군가는 일자체를 하기 싫어한다. 언론은 그 대상이 청년이라고 그럴싸하게 비꼬아 말하지만청년들 중 일부는 실제로 '그냥 쉼'이라는 단어로 그들의 인생을 대변하고 있다. 그냥 일도 싫고, 그 어떤 권력도 가지기 싫다. 권력자체를 염세적으로 바라본다.근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권력을 싫어한다는 것은 사실 현대사회 전체를 부정한다는 의미와 같다. 권력은 가진 자에게는 득이 되고,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당연히 해가 되는데 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권자로 들어가는 모든 단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권리, 권한,권능, 권익. 권력이 싫다는 건 아름답고 평화로워보이나어떻게든 권태로운 말이다. 일을 해야 권력이 생기는 꼴이니, 다시말하면 본인은 일 자체를 하기 싫어하는 걸 합리화하는 꼴이다.
그렇다면 우린 왜 이토록 하루의 1/3을 일로 매달려 있을까. 단순히 생계목적에만 올인하면 우리 삶은 한없이 처량해진다. '일을 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밖에정의 내려지지 않거든. 사실 까놓고 말해 일? 안 해도 된다. 돈은 별로 없지만 자연으로 돌아가 산속에서 자급자족을 사는 삶도 사실 숭고한 삶이고, 돈에 집착하지 않고 평생을 봉사하며 사는 사람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삶이다. 일을 열심히 해 권력을 잡아 회사에서, 혹은 정부부처에서 한자리하는 사람도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일 안 하고 주식투자나, 부동산으로 부자가 돼서 본인과 주변인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생각 자체도 숭고하다. 결국 이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사는지의 방법론적인 문제다.
이때 우리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무에 매달리지 않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패착에 대해 집중하면 매일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이 나온다.
주지스님의 고민 상담영상에서 한 여성분의 충격적인 인터뷰영상을 보자. 그녀는 말한다.
" 직장생활을 한지 일 년이 넘었는데, 일을 하고 집에 와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내 자유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게 몇십 년간 일을 하면서 살 생각을 하니 답답하다. 일을 안 하고 소설작가 같은 걸 하면서 살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안된다. 나는 왜 이렇게 가난할까? 부자는 세금내서 나같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한다.프랑스는 단두대에서 처형도 하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착한 것 같다. 이 억울한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올해 본 영상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된다. 일을 하지 않으면.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는가? 타인이 만든 성과는 공짜처럼 여기고, 한없이 일천한 본인의 노력과 경험은 운이 없어서 그렇다는 논리. 현대사회는 이렇게 한 여성을 괴물로 만들었다. 그 괴물이라 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단한 걸 바라는 사람. 일은 하기 싫고 공짜로 부자가 된 그들은 나를 도와야 한다. 왜냐면 본인은 소설작가가 될 거니까. 단언컨대, 이 사람이 소설작가가 되면 출판계를 포함한 대한민국 독자들의 지적 수준자체는 급격한 하향평준화에 접어들 것이다.일을 안 하면 어떻게 남의 노력을 공짜로 뜯어먹고, 편하게 살지만을 고민하게 된다는 거다. 본인 노력으로 얻은 가치와 공짜로 주어진 가치는 그것이 금전적으로동일하다고 할지라도 무게자체가 다르다. 본인 노력으로 피땀 흘려 얻은 것이기에 더 소중해지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갈 동기부여가 생기는 반면, 후자는 어차피 공짜로 또 생길 것이기에 소중한지 모르고 돈을 펑펑 쓴다. 타인과 가족, 국가에 빌붙어 사는 인간보다 못한 빈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하는 것이다. 단순히 생계를 넘어 내가 이 사회에서 최소한의 기여를 하고 있다는 긍지를 통해 삶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깨닫는 것. 그게 인간이 하루 24시간 중 1/3이나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동기가 된다.
이게 충족될 때에 우리는 일에 대해 그다음 생계와, 자아실현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일 자체가 자아실현은 되기는 매우 힘들다. 본인이 진짜 좋아하는 걸로 성공한 일부 유명인 빼고는 사실 일로써 꿈을 이룬다는 건 매우 희박한 확률이다. 생계와 자아실현. 이 둘 중에서는 어떻게든 지금 하는 일로써 내 목표를 이루겠다는 처절한 다짐보다 일은 단순히 원화체굴일 뿐이라는 생각이 훨씬 더 현대사회에서 정신건강에 이롭다. 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것이고, 내 삶은 내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지만, 내가 하는 일과 그 일을 하는 일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내 통제 밖의 영역이거든.
자, 그러면 답이 나온다. 일이라는 것이 결국 앞서 말한내가 사회에 조금이나마 무언가를 기여하는 원초적인 동기라던가, 생계라던가, 자아실현이라던가 모든 걸 포함해 일은 이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상징적이고 숭고한 행위인 것이다. 과거에 시간을 조선시대로 거슬러가도, 100년 뒤 우주를 탐험할 미래가 오더라도 이 한가지 명제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요즘은 온갖 미디어와 정보의 홍수로 돈 벌 수 있는 길이 널리고 널린건 사실이다. 실제로 그렇다. 언론은 더 이상 노동자의 삶을 살지 말고 콘텐츠 크리에이터 같은 생산자의 삶을 살라고 한다. 아침 뉴스 1면에는인기유튜버들은 연 몇십억씩 번다고 서민들을 터무니없는 환상 속으로 부추긴다. 본인도 그렇게 못하고 회사출근해 기사나 쓰고 있으면서. 이외에도 스마트 스토어를 하란다. 사업아이템을 발굴하란다. 주식투자에 몰빵에 트레이더를 하란다. 블로그에 진정성 있게 맛집 리뷰를 쓰란다.
자, 주식을 예로 들어보자. 유튜브만 켜면 요즘 주식투자로 파이어족이니, 배당주로 은퇴한다니, 말이 많다. 돈이 없는 가난한 상태를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닌 금융지식의 부재나, 투자에 대한 무지로 몰면서 가난을 부끄럽게 하는 인상을 준다. 진짜 실제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매달 벌어들이는 소득 자체가 없는데 목돈 얼마 쥐고 주식에 올인하라니. 경제상황, 차트몇개 보고 올인하라니. 그럼 월세는 누가 내고, 식비는 어디서 생기며, 옷은 어떻게 사 입나? 정녕 월 50만 원, 100만 원 벌면서 전재산 주식에 올인하면 '일'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프리터족처럼 일을 하루에 몇 시간을 하든, 인생에 일이 존재하는 사람에게는 언제까지나 이는 '자발적 선택'의 영역이겠지만, 일을 아예 등한시하고 그 명분을 재테크로 삼는 건 일로써 인간이 가지는 모든 상징성을 부정하는 느낌이다. 가난과 불행의 원인은 결국 금융지식의 부재가 아니라 일로써 어떤 더 큰 삶의 양분을 얻는 방법을 모르는 무지에 있음을 우리는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아무쪼록 요즘 이직을 하거나, 면접을 보거나, 그 어떤 영역에서든 구직자를 볼 때면 나는 경외심이 든다. 면접을 보러 가는데 넥타이를 맬 줄 모르는 구직자의 넥타이를 매주는 길가의 아저씨를 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따스하던지. 노동이 등한시되는 이 시대 속 우리는 '일'이라는 것에 대한 재해석이 지금 꼭 필요한 시점이라 본다. 그 재해석과 동시에, 각자의 좋아하는 일을 찾는 여정을 시작할 때다. 이건 인생의 숙제같은 개념이다. 그게 사랑하는 인연을 만난 것만큼 인생을 가장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