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하루에 남는 것: 꿈
한 40대 중년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한창 본인의 업에서 주가를 올리다 한번 사업이 크게 망해 현재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일을 한다.
또 다른 한 명은 나이도 비슷한 40대 중년이다. 회사에서 동기들은 승승장구하는데 본인은 그렇지 않다. 매월 나오는 월급에 의지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현재 본인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불만족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근데 당장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지금 하는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오늘 출근을 만약 하지 않으면 돈이 나올 구멍이 없거든. 이 둘은 매일 하루하루를 어쩔 수 없이 맞이하고 있다. “그만둬야지”라는 말만 늘 반복하면서.
이들이 만약 10년을 꾸역꾸역 또 버텨 50대가 되었다고 하자. 상황이 달라질까? 그때 되면 자녀가 크고, 자녀가 대학을 갈 나이가 된다. 한국사회에서는 대학까지는 보내야만 자녀를 다 키웠다는 증표가 되기 때문에 본인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도, 더 이상 승진을 하지못해도 어쩔 수 없이 억지로 그 일을 계속할 것이다. 마음에 불만만 가득 안은채. 주위사람들도 이제 그들이 이 일을, 혹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면 아무 반응도 없다. 어차피 못 그만둘걸 아니까. 상황은 어쨌거나 10년이 지나도 더 악화되면 악화됐지 나아지지 않는다는것이다.
이 둘은 어쩌다 이런 상태가 됐을까. 자기 객관화가 안 돼서? 아니 잘 되어 있다. 동기들은 승승장구하는데 본인이 승진을 못하고 회사에서 한직으로 도태된 것이라면 운의 영역을 제외하고 사실 본인이 정치를 잘 못했거나, 윗사람 중 본인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있거나, 업무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잠깐. 이 모든 기준은 상대적으로 그 비교대상인 동기들에 비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건 본인도 안다. 사업도 마찬가지. 다른아이템을 파 노력했던 친구는 장사가 잘돼서 2호점을 내고, 3호점을 내는데 본인은 왜 이 지경인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본인, 아니면 시장에 있다. 본인도 안다. 어쨌거나 성공한 타 자영업자나 사업가 대비 본인의 어떤 영역이 현저히 부족했을 것이다.
근데 이는 절대 불행한 삶이 아니다. 대기업에 다녀 승승장구해 임원이 된 그들도 가정에서의 불화가 있을 수 있고, 중소기업에서 돈을 적게 벌지만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이들도 있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알바를 하는 누군가도 대기업임원보다 행복할 수 있고, 취업준비생인 백수도 성공한 사업가보다 시간이 있기에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현재 행복한 순간이라 느낄 수 있다. 각자 그 자체로 숭고하고 가치 있는 삶이라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앞선 예시의 두 중년은 아주 높은 확률로 후회를 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불만족스러운 현재를 탓하며 그만둘 거야, 더 빨리 그만둘걸, 자녀문제만 해결되면 다른 일을 알아봐야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걸 본인이 그전에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났는데도 상황은 하나도 바뀌어있지 않고 돈에 묶인 삶을 현재 살아가고 있다. 시간을 돌려 그들은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 현 상황에서 몇 배의 돈을더 벌 수 있는 능력도 없다.
후회라도 안 하고 현실에 만족하면 그만인데 그것마저안 된다. 그야말로 불행한 삶이다.
그럼 그들은 20대와 30대 자녀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를 생각해 보자. 살면 살수록 세상에 대한 환멸감은 심해지는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어떻게 하면 이 미래의 환멸감에 대비할 수 있을까. 나 같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무언가 내가 나중에는 하지 못할 거대한 꿈을 지금 한번 꿔 보라고. 돌아보니 인생이 지나치게 짧았다고. 그 꿈이라는 게 사실 누구는 들었을 때 '에라이, 그걸 꿈이라고 얘기하는 거야?'라고 조롱할 수도 있고,
"네가 어떻게 그 꿈을 이뤄?"“라고 기대이상으로 비범한 나머지 질투 섞인 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근데 생각해 보자. 그 꿈이 거대하든, 시시하든 내가 하고 싶으면 그만이다. 설령 못 이뤘다고 하더라도 그가 40대, 50대가 됐을 때 현실이 불만족스러울지라도 절대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젊을 시절에 내 꿈을위한 노력이란 노력은 다 해봤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말을 할 때면 이미 자본주의에 잠식된 청년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그럼 돈은 어떻게 벌어?
생계와 같이 하면 된다. 하루 24시간 내내 내가 직장에있는 게 아니고, 일터에 있는 게 아니다. 같이 조금씩 해보면서 넓히면 된다. 한순간에 본인 모든 걸 쏟아부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고 자부한다. 그냥 아주 조금씩 꾸준히, 무언가 본인이 하고 싶었던 큰 꿈을 계속 되뇌면서 하루에 그 꿈에 다가서는 0.0000001%의 노력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 삶은 그 자체로 값지다 여긴다. 나이가 들어 돈이없으면 비참해진다는 논리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이가 들었을 때 우리 인생에 진짜 후회라는 게 자리하지 않아야 한다. 후회한다한들 그때로 다시 되돌릴 수도 없거니와, 한없이 생기는 그 불행을 그대로 움켜쥘 수밖에 없거든. 그래서 요즘 글을 볼 때마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당찬 글을 볼 때면 이따금 경외심이 든다. 그의 인생은 40대가 돼서 그가 얼마를 가지고 있고,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 있다와 관계없이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우리 같은 보통의 사람들은 하루 중 돈을 벌어야 하는 생계관련된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휴식하기 바쁘다. 본인이 진짜 원하는 어떤 큰 가치를 있을 확률도, 찾아볼 여력도 애초에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걸 찾기 위한 노력과,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현재 자산이 적든, 소득이 적든, 조금 더 큰 가능성을 내포하고있음은 분명하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수록, 도전은 아주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한다는 정의가 되어간다. 무한 경쟁사회에서한 번의 씻을 수 없는 실패는 재기불가능할 수도 있다. 근데 그게 두려워 움츠려 들면 이 세상과 도태되고, 나이가 들면 잘 풀려야 겨우 위의 저 두 예시처럼 된다. 학습된 무기력이 이렇게나 무섭다.
잘 될 거야, 좋아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와 같은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가 많이 들리는 요즘이다. 타인이 이런 말을 내게 해줄 때에는 타인이 생각하는 나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가능성, 진심 어린 마음이 모두 내포된 것일 테다. 그 진정 어린 말을 실제 실현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내 꿈을 품는 것이 그들 앞에 당당할 수 있는 한 줌의 양심이라 하겠다.
요즘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