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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직원의 분노

3화: 2개의 우주

by 홍그리

친구와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만났다. 애초에 정해진 약속도 아닌데, 이렇게 급하게 나와주는 게 참 고맙다. 고마운 김에 하루 자고 가야겠다. 다른 지역이었으면 부를 친구하나 없었을 텐데 서울은 서울인가 보다. 어떻게든 만날 사람 한 명은 있다. 이 친구의 이름은 경섭. 같은 과 동기다. 대학교 졸업을 하기도 전에 통신사대기업에 입사해 우리 과에서 전설로 통한다. 학벌컷을 뚫어내고 스카이졸업자들도 떨어진다는 이 대기업에 어떻게 합격했는지 대단하기만 하다. 대학교에서 맨날 공강시간에 같이 술 먹고 하던 그 친구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얼굴과 복장에서부터 뭔가 이질감이 느껴진다. 같은 정장을 입었지만 나 스스로가 한없이 작아 보인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는 서울 안에서도 핵심 광화문에서 사원증을 매고 일하는 내 친구 경섭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어? 일찍 왔네? 미안하다 늦어서. 갑자기 팀장님이 찾으시더라고”

“에이, 겨우 10분인데 뭐. 교보문고에서 책 보고 있었어! 이야, 너 진짜 직장인 다됐네?“


괜한 칭찬으로 부러움을 감추기엔 경섭이는 벌써 기세등등해 보인다. 뒷골목으로 들어가니 광화문껍데기이라고 대문짝 하게 쓰여있다.


“야, 저기 갈래? 삼겹살에 소주 한잔 어때? 무난하게”

“좋아”


이 녀석이 오늘 재워주니 삼겹살은 내가 굽기로 한다. 서로 소주 한잔씩 따르며 근황얘기를 나눈다. 나는 오늘 대기업 면접을 봤고, 떨어질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한다. 경섭이는 고생했다며 본인도 이 회사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인생은 99%가 운인 것 같아


소주를 연거푸 들이키며 경섭이가 말한다. 사실 이곳은 본인이 바라고 원했던 회사가 아니었다고. 사실 경섭이는 IT회사에 가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 합격해서 왔단다. 와서 다니다 보니 연봉과 조건이 나쁘지 않아 계속 다니는 거라고. 누구는 부럽다고 치켜세워주지만 경섭이는 이곳을 다니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한 번도 과거에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한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그랬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갈성적이 애매해 집 근처 지방대에 왔고, 우연히 선배와 커피 한잔 하다 알게 된 교환학생 모집공고를 보다 미국 교환학생을 갔다 왔다. 미국에서 평생 살 수 있는 그린카드가 없으니 자연스레 한국으로 귀국했고, 돈은 벌어야겠으니 지금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다. 흐르는 대로 살고 있는 것. 근데 그 흐르는 삶의 파고 속에서도 어떻게든 아주 미세한 어떤 끌림이 나를 현재 이곳 경섭이와 대면하는 광화문까지 이끌었다는 생각이 든다.그 끌림 안에는 운이 섞여있다.

자, 잘 생각해 보자. 마침 다른 기업은 다 떨어지고 지금 서류전형을 붙은 회사가 대기업이니까 면접을 네 영역이나 보고 있는 거다. 스트레스받을 게 아닌데 나는 그것조차 불평불만을 하고 있다. 다른 몇천 명의 지원자들은 다 떨어지고 가져보지도 못한 기회를 난 가진 건데? 이게 운이 아니면 뭐겠나. 내가 특출 나게 잘나서? 역량이 너무 뛰어나서? 절대 아니다. 신입사원 면접자는 다 거기서 거기다. 이것뿐만 아니라, 내가 여태껏 지나온 모든 과정엔 그 기회를 가지지 못한 경쟁자가 존재했다. 나는 불만족스럽고 당연하다 생각했던것이 당연한 게 아니었던 것. 지방대도 누구는 떨어졌을 거고, 아무 생각 없이 붙었던 미국교환학생에는 재수, 삼수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게 본인이 간절히 바랐던 꿈이었던 사람도 있다는 거다. 그러면 내가 이 면접을 합격해서 회사를 다닌다 한들, 경섭이처럼 간절히 이 회사를 바랐던 누군가처럼 행복하게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경섭이의 눈은 어느덧 조금은 슬퍼 보이고 불안정해 보였다.


형규, 껍데기보단 진짜를 봐야 하는 것 같아


삼겹살 다 먹고 껍데기를 굽다가 갑자기 뭔 소린가 한다.


“껍데기 말고 다른 거 시키자고? 이미 먹고 있잖아”

“아니, 삶의 껍데기 말고 우리 다른 걸 한번 보자는거지“


대기업에 다니고, 연봉도 높고 곧 여자친구와 결혼도 앞두고 있는 모든 게 안정적인 경섭이. 근데 그는 지금 뭐가 부족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뭐랄까. 예전의 밝은 모습보다는 사회생활에 찌든 듯한 얼굴이다.


“너는 한국사회에서 직업을 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 거 같냐?”


흠. 술 한잔 하더니 갑자기 이 녀석 꽤 진지해진다. 글쎄. 한국사회라. 한국사회는 성공에 대한 욕망이 클수록 실패에 대한 업신여김을 정당화하는 사회 아닐까. 누구나 좋은 대학교에 가길 바라고, 누구나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아까 면접도 마찬가지. 붙여만 준다면 야간근무, 주말출근은 페이 없이도 당연히 할 수 있고, 회사의 주인처럼 정말 시키는 것 뭐라도 할 것 같은 눈빛으로 모든 경쟁자들이 ‘간절하게’ 면접에 임한다. 면접에서도 좋은 대학, 어떤 언어를 할 줄 알고, 본인은 어떤 프로젝트를 했으며, 어떻게 성실하게 살았는지를 어필한다. 그나마 이 실패에 대한 업신여김을 정당화하는 걸 최소화하는 게 면접에서 ‘블라인드’다. 블라인드 전형이란 학교나, 출신지역을 숨김으로써 지원자의 배경에 대한 어떤 차별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채용하는 방식이다.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본인의배경을 암시할 수 있는 단어를 말하지 못한다. 근데 이 블라인드가 의미 없다는 걸 오늘 면접에서 느꼈다.

어떤 대학교인지 암시할 수 있는 동아리 명을 말한다거나, 수업을 말한다거나. 가령 00 대학교에서만 하는 00인을 위한 경영학, 특정대학교의 계약학과에서 하는 프로젝트, 이런 걸 말하는데 어떻게 그 학교 학생인지 모르나. 뭐 타고 왔냐는 말에 KTX 타고 왔다 하면 내 출신이 지방인걸 모를까? 블라인드도 큰 효용성이 없다. 그냥 겉치레일 뿐. 윗사람 정치인들이,

“야! 나한테 그러지 마. 나 공정하게 뽑았어”

라고 하는 그럴싸한 명분에 불과하다. 어쨌든 그 성공에 대한 욕망은 대기업이고, 그걸 이룬 경섭이 같은 사람은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쿠팡 배달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을 비웃고 업신여기는 걸 정당화할 수 있는 권위가 생기는 사회. 그게 한국사회에서 직업을 바라보는 맥락이다. 위너는 한없이 위너고, 루저는 끝까지 루저다.


“근데 대기업 다녀도 그거 알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크게 없어. 거대한 바퀴가 굴러가기 위한 하나의 부품조각일 뿐. 나 같은 부품이 만약 튀거나, 기계에 안 맞다? 그럼 내가 억지로 맞추거나 나는 이 거대한 조직에서 나와야 하는 거야”


경섭이는 술에 취했는지 쌓인걸 내게 토로한다. 오늘 본부장님과 식사를 했다고 한다. 근데 팀장이 미리 식사 중 말할 주제를 만들어가서 언제 본인이 먼저 이 얘기를 하고, 다음엔 다른 팀원이 맞장구를 치고, 그다음엔 자연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모든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점심식사에 들어가는 걸 보고 현타가 너무 왔단다. 심지어 본부장님과의 실제 점심식사 도중, 경섭이가 맞장구를 쳐야 할 타이밍을 놓쳐 중간에 몇 초간 정적이 있었고, 그다음부터 모든 스텝이 엉키는 바람에 팀장이 원하는 ‘화기애애한’ 식사가 못됐다는 거다. 아니, 잠시만. 이게 정상적인 식사인가?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현대사회에 큰 의미가 있다. 단순히 밥이라는 걸, 영양섭취의 목적으로만 둔다면 현대인은 모두 혼밥을 할 것이다. 그게 가장 효율적이니까. 근데 직장 점심시간이든, 주말에 친구를 만나든 늘 시간 내어 함께 밥을 먹는다. 늘 오늘은 ‘누구와 점심을 먹고 무엇을 먹을까?‘ 가 직장인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그럼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무슨 말이냐.

서로의 안녕을 바라고, 안부를 물으며 관심을 표현하는 거다. 서로 간 호감을 표시하면서 기쁠 땐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땐 함께 슬퍼할 수 있는 고독한 인생에서 그렇게 인연하나 가져가는 건데, 어떻게 이게 자연스러운 식사라 할 수 있겠는가.

서로 순서 안 끼어들고, 순서에 맞게 시나리오대로 할 거였으면 아싸리 본부장님 대사도 정하지 왜. 그냥 분위기 좋게 만들어서 본부장님한테 잘 보이려는 팀장의 계략으로밖에 안 보인다. 너무 무의미한 일 같지 않냐며 경섭이는 내게 동의를 구한다.


“맞네, 그건 좀 속상했겠다”


심지어 점심식사를 하는 도중 경섭이에게 본부장님이,


“오 경섭 씨는 왼손잡인가 보네?”


라는 한마디 때문에 아까 퇴근 뒤 팀장이 불러 한소리 듣느라고 약속시간에 늦었다고. 왼손잡이를 고칠 생각은 없냔다. 본인은 괜찮은데 더 높은 사람이 보면 불편해할 수 있다고 팀장이 말했다 한다. 근데 분명한 건 더높은 사람이 와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거라는 거다. 부장이 와도, 본부장이 와도, 사장이 와도 내가 왼손잡인지, 오른손잡인지 관심도 없다. 그냥 본인이 피해받기 싫은 걸다수의 의견인 양 둘러대는 것. 아니, 시X. 그럼대체 누가 안 괜찮다는 거야? 죄다 “나는 괜찮은데~”를 달고 산다. 얼마나 우습나. 여긴 마치, 모두가 이 거대한 조직에 맞춰 움직이는 기계 같다. 본인은 다른 부품으로부터 피해봐서는 안 되고, 아무런 문제 없이 이 조직에 맞춰져야 한다. 경섭이는 말한다.


“와, 형규야. 진짜 이렇게 까지 살아야 하냐? 대기업이라고 마냥 좋은 게 아니야 인마. 남들은 배부른 소리 그만하라 하는데 하, 진짜 미치겠다”


나는 그런 곳에 들어가려 오늘 새벽에 일어나 면접을 보고 왔다니. 난 아무런 대꾸도 못한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 사실 그냥 껍데기라는 생각이 들어. 요즘은 남의 기준이나 잣대에 아무런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했던 것이 뭐였더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언제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걸 해봤었지? 넌 좋아하는 게 있어?”


하면서 소맥을 따르고 짠 한 뒤, 원샷을 한다. 내 면접 고민을 들어주려고 만난 건데, 이 녀석이 더 많은 얘길 한다. 당황스럽지만 나는 들어준다.


이 면접에 간절히 붙길 바랐고, 붙으면 핑크빛 미래만 그려질 거라는 기대 속에 경섭이 한마디에 나는 생각을 달리 해본다.


글쎄. 난 뭘 좋아했었고, 지금 뭘 좋아하지?


그렇다. 나는 경섭이와 다른 각자의 우주 속에 살고 있었다. 힘들게 면접에 합격한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내 인생이 앞으로 뭐가 됐든 어느 정도 미리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겠다.




-4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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