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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면접 생중계

2화: 한탄

by 홍그리

토론면접이 끝나고 잠시 대기시간. 이젠 또 영어면접이다. 아, 대기업 입사가 이렇게나 힘든 거구나.

한 회의실에 들어가니, 누가 봐도 햄버거와 피자를 좋아하게 생긴 수염이 득실득실한 덩치 큰 미국인 아저씨가 한 명 들어온다. 그리고 나 같은 놈 몇 명은 이미 많이 경험한 듯, 형식적인 인사 뒤에 지친 기력으로 아무런 영혼 없이 질문한다.


"Sell me this Galaxy 25 cellphone. you can say anything without any restriction"

(내게 이 갤럭시 25를 팔아볼래? 그 어떤 것도 말해도 상관없어)


흠.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한다. 일단은 영어로 말해야 할 것이고, 갤럭시 25에 대한 장점을 몇 개 생각해야 하는데... 난 아이폰만 13년째 쓰고 있다. 그렇다면..


그 장점을 내가 알리가 없잖아?


진짜 알리가 없다. 누군가는 내게 매국노라고 욕할지 모르지만, 아이폰만 꾸준히 써오고 한번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내게 갤럭시의 장점을 말해보라니.

갤럭시의 장점을 알았다면, 내 폰이 갤럭시겠지 임마.벌써 20초의 정적이 흐르고 있다. 무슨 말을 하긴 해야한다.


"흠,, 일단 갤럭시는 한국 제품이고, 나는 한국인이고,, 인터페이스가 좋고, 번역도 잘 되고, A/S가 우수해.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대답이 너무 짧으면 안 되니 아주 장황하게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설명했다. 내가 겪은 경험을 과장해서 꾸며본다. 그렇게 너무 길게만 느껴졌던 10분이 지났다. 얘기하고 있는데 중간에 자르고 나가란다. 고생했단다. 본인은 안 살 거란다. 그냥 난 아이폰 쓰겠단다라며 주머니에 있는 아이폰을 보여준다. 사실여기서 속으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한국어로 개소리하더니, 이젠 영어로 개소리한다.


힘없이 걸어 나오며 또 대기를 하라고 해서 한다. 벌써 대기시간 포함 이 2개를 보는데 3시간이 흘렀다. 이젠 스페인어 면접을 하러 들어오란다. 제2 외국어는 희망사항으로 선택한 사람에 한해서 볼 수 있고, 가산점을 주는 방식이다. 멕시코에서 보던 아주 흔한 지나가는 행인 1처럼 생긴 어떤 아저씨가 한 명 들어온다.

스페인어는 자신 있었기에 그냥 편하게 얘기하고 나온다.

"아, 진짜 여기 취업 너무 힘들어, 죽겠어. 한국에서사는 건 진짜 힘들어. 여기 왜 왔어? 그냥 너 나라로 돌아가는 게 너 삶에 훨씬 이로울 거야 내 말 명심해"

그는 원하지도 않는 훈계를 늘어놓다 시간이 남아 타코 얘기를 시작한다. 어떤 타코가 제일 본인 인생에서 맛있었는지 타코골든벨을 좀 하다 시간이 다 가서 끝마친다. 나보고 너무 재밌다고 박장대소를 한다. 역시 멕시칸. 나랑 뭔가 맞아. 여긴 아니야. 딱 유일하게 잘 본 면접이다.

자, 또 기다린다. 한 20분 기다렸다. 마지막 인터뷰 해야하는데 지금 시간이 너무 애매하니 점심 먹고 다시 시작하잔다. 엇! 그래도 밥은 주네. 나이스. 안내를 받아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다.


꼭대기 층으로 올라오니 컬처쇼크를 받는다. 면접자 대상 회사에 대한 이미지제고를 위해서 꾸몄다고 보기엔 너무 거창하다. 그리고 회사 임직원들이 너무 편안하고 당연한 듯이 밥을 먹고 있다. 이 모든 건 연기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갑자기 그들이 맨 사원증이 진심으로 너무 부러워진다. 왜냐. A코스, B코스, C코스로 선택해서 먹을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


A코스: 베트남쌀국수, 분짜


B코스: 순대국, 함박스테이크


C코스: 피자, 미니핫도그


한식, 베트남식, 양식 조화도 완벽하다. 옆에는 이해를 돕기위해 그림이 걸려있다. 거기서 뷔페처럼 줄서서먹으면 된다. 여기 다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거야. 제발 붙여만 준다면 주말 노페이 쌉가능이다.


A코스 베트남쌀국수를 맛있게 먹고 다시 면접장으로 온다. 마치 이곳은 공장 같았다. 대거 사람을 뽑아놓고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굴린다. 그 굴리는 데 있어 면접안내자들은 그 톱니바퀴를 관리하는 사람 같았다. 가끔씩 발생하는 바퀴가 엉킨다거나, 기계가 고장 난다거나, 윤활유를 발라 손질이 필요하다거나 그럴 때만 잠시 등장해 고쳐주고 다시 제자리로 가서 감독을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톱니바퀴는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그 하나의 톱니가 갈리거나, 부서지거나, 마모가 되면 감독은 잠시 또 기계를 멈추고 그 톱니만 뽑아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래고 새 톱니로 끼워 넣는다.

지금 나는 그 새로운 톱니가 되기 위해 '제발 절 좀 써주세요' 하고 빌고 있는 수많은 톱니지원자 중 한 명이다. T/O는 얼마나 톱니가 낡았고, 부서졌고, 마모가 됐는지 그 빈자리가 얼마나 났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뭔가 좀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 똑같은 시스템 안에서 굴러가는 톱니를 하려고 하는데도 이렇게 영어, 제2외국어, 토론에, 직무인터뷰까지 거쳐서도 뽑히지 못하는 세상.

자, 이러면 대졸이 무슨 의미가 있고, 인서울 대학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 고3은 그러면 왜 전국에 상위 10%만 갈 수 있는 인서울대학교에 가기 위해 오늘도 밤 10시까지 공부를 할까? 그게 무슨, 도대체 어떤 삶을 위한 공부일까. 그건 부모님이 시켜서 하는 맹목적이고 습관적인 일과에 불과하다. 그들도 다시 톱니가 된다. 감독자는 선생이고, 거대한 바퀴는 학교시스템. 미래에 더 나은 회사라는 시스템의 거대톱니가 되기 위해 힘쓴다. 이마저도 안 될지도 모른닼 아, 혼란스럽다. 무엇이 잘 사는 삶인지.


생각하고 나니 20분이 금세 지났다. 또 들어오란다.

KTX 옆자리 아저씨가 정성스럽게 매 준 넥타이를 고쳐 매고 다시 들어간다. 앞에서 회사에 이미 입사한 정규직 직원(안내자)이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귀띔을 해준다. 밖에서 만나면 그냥 아저씨라고 생각하란다.

엇, 근데 선생님. 전 지금 안에 있잖아요.

들어가니 3명이 앉아계신다. 들어가니, 1분 자기소개를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시키지도 않고 바로 경력과 전 직장에서의 퇴사이유를 묻는다. 전 직장은 식품기업이었는데, 식품업계에 더 있다가는 평생 식품업계에만 있을 것 같아 무작정 때려치우고 나온 게 사실이었다. 그걸 방어하느라, 내 꿈을 찾고 싶었다느니, 이회사 산업에 흥미가 생겼다느니, 어릴 적부터 상사맨을 꿈꿨고, 내 역량으로 회사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또 개소리를 했다. 자, 그런데 여기는 무슨 퇴사를 경찰이 범죄자 취조하듯이 묻는다. 진짜냐고. 아니, 그러면 다니면서 이직준비를 하지 왜 그만뒀냐고. 흠. 진짜 진실처럼 보이지 않았나 보다. 그냥 그들은 딱 보아하니, 본인이 원하는 대답 (상사와의 관계나, 인간관계 등) 이 나올 때까지 나를 물어뜯을 계획이다. 그래야

'아, 얘도 조금 스트레스받으면 금방 퇴사할 애구나'

라고 탈락시킬 명분이 생기니까. 아 젠장. 잘못 걸렸네.

또 다른 이유가 없는지 묻는다. 계속 묻는다. 없어요.

아니, 없다고요.


퇴사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연봉이 적어서, 직장과 거리가 멀어서,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전혀 관심 없는 산업이라서, 개인사업을 꿈꿔서, 상사를 잘못 만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그냥 쉬고 싶어서 등등.

근데 대개 직장스트레스나 혹은 인간관계에서 퇴사를 한 사람들은 이유가 모두 똑같다. 일단 나 하나만큼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냥 연봉이든, 커리어든, 결혼이든, 자산이든 그냥 다 필요 없으니

‘아!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라는 마인드로 퇴사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구직활동에 있어 불성실하고 게으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트라우마가 생겨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이다. 근데 지금 한국사회의 문제는 뭐냐. 그들은 그냥 사회 낙오자다. 내가 이 면접에서 겪은 것처럼 성실하지 못해, 일하기 싫어 나랏돈만 타먹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루저 취급한다. 아니, 루저로 만들도록 캐묻는다. 소위말해 본인에게는 치유의 기간이지만 그들에게는 그냥 무직기간. 이 기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들이 암묵적으로 갖고 있는 선입견으로 취업은 더 힘들어진다. 왜? 이번엔 공백기를 물을 거거든. 공백기동안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이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서술해야만 한국 대기업 면접관들은 납득할 수 있다. 이건 확실하다.


면접은 그렇게 한창 진행된다. 자신 있게 대답한 질문도 있었고, 긴가민가한 질문도, 그리고 아예 몰라서 모른다고 한 대답도 있다. 신나게 해외영업 세컨드무버전략, 시장진출전략 다 외워갔더니 이 분은 시장조사 기법에 관한 질문을 파고든다. 모른다고 하는데 자꾸 시장조사 이거 아세요? 이건 아세요? 반복한다. 다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저분은 시장조사 팀장님이신가 보다.

마지막 한마디를 야심 차게 준비했건만 이것도 시키지않는다. 3초 동안 고민한다. 아, 마지막 한마디 할까 말까. 지금 손 들어서 한마디만 해도 되냐고 할까? 절실함을 어필할까? 그러고는 포기한다. 한국회사는 나대는걸 가장 싫어하니까.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반이라도 가거든.


면접장을 나온다. 드디어 모든 면접이 끝났다. 가만 보자. 지금이 몇 시야. 4시다. KTX를 타고 여기 도착을 9시에 했으니, 장차 7시간 동안 면접을 봤다. 면접 안내자는 너무 고생했다며 결과는 추후 통보하겠다며 흰 봉투를 주신다. 아마도 면접비겠지. 살짝 열어본다. 3만 원. 에게. 그래도 명색이 대기업인데 면접비가 꼴랑 3만 원이라니. 점심 먹을 때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정 떨어지기 시작한다.


어느덧 해는 어둑어둑 져있다. 아, 온 김에 서울에 사는친구집에 하루 자고 소주나 한잔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지방 시골쥐가 서울까지 면접 보러 왔는데 또 바로 내려가서 공부하고 있으면 너무 내 인생이 슬프고 불쌍할 것 같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앞에 빽다방이 보인다. 오늘 너무 머리를 많이 썼더니 카페인 수혈이 필요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나는 커피를 진한 걸 좋아하는데 샷추가 500원이 아까워 그냥 기본으로 시킨다.


너무 처량하지만, 건너편 도로 앞 해지는 노을을 보면서 오늘도 고생했다고 위안 삼는다.


'나 잘 살고 있는 거 맞나?'




-3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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