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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 대졸자의 현실

5화: 생존

by 홍그리

아침 7시.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마음의 준비를 해볼까. 나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 경섭이가 말했던 것이 머릿속을 맴돈다.


"형규야, 행운이 쫓아오게 하려면 일단 가지치기를 많이 해놔야 해"


그래, 가지치기. 내 통장에는 현재 100만 원도 없다. 대기업 정규직은 무슨 대기업이야. 일단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본다. 나는 자존감따위 일찌감치 버린지 오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면접에 합격한 내 경쟁자들은 출근준비를 한다. 나만 지금 이렇게 방구석에 처박혀 있다. 현대인의 정신질환이 요즘 늘어난다는데 이유를 대충은 알 것만 같다.


거실너머 아침뉴스에는 찔리는듯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대졸자 90% 구직활동 중"

"취업하지 않고 노는 청년 최다"


밖에서 엄마는 이 뉴스를 보고 분명 나를 생각하셨을 거다. 그리고 한심하게 여길 거다. 근데 뭐 어쩌겠나?

100만 원도 없는 계좌잔고에 우쭐대면서 독립해 나가 살 능력도 없다. 굽힐 땐 굽혀야 한다. 그래도 엄마는 밥은 주니까. 내가 그들보다 같은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 나는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거든.적어도 취업하지 않고 노는 청년은 아니란 거다. 오늘의 목표는 ‘자소서 3개 쓰기’.


그럼 어느 회사에 지원할 건지, 어떤 직무로 넣을 건지 고민을 해본다. 흠. 나는 인스타그램에 중독됐던 지난 대학생 때가 생각난다. 밥을 먹으러 가던가 여행을 가던가, 데이트를 하던가,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던가,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던가, 유명 브랜드 옷을 사서 입었을 때, 무언가 내가 남들보다 행복해 보이고 특별할 것 같을 때 인스타그램에 뭐든 찍어 올렸다. 인스타능 남들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밑바닥과의 비교라 하지 않나. 늘 좋은 것만 올렸다. 감성적인 글과 함께. 어떤 글로 이 사진을 마무리할지 글을 오랫동안 고민한다. 남들이 내 피드를 봤을 때 멋있어 보여야 되거든.그리고 어디서 듣던 노래가사나, 어려운 단어를 섞어 한번 게시물을 꾸며본다. 그리고 좋아요와 댓글에 행복해한다. 남들은 그냥 손가락을 내리며 아무 생각 없이 눌렀던 하찮은 관심에 거대한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 내가 이렇게 인스타그램을 잘 꾸미고, 팔로워수, 좋아요 수가 엄청나니 마케팅을 해볼까. 카피라이터 이런 거 하면 잘할 거 같은데. 인스타에 제품 홍보하고 바이럴 하고 하면 그게 마케팅 아니야?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 뭐야. 근데 무슨 마케팅종류가 이렇게 많아. 스포츠회사는 스포츠브랜딩, 식품회사는 식품 마케터, 패션회사는 패션 MD, 쇼핑몰은 이커머스 마케팅. 뭐야 이거. 종류도 많다. 인스타그램이니까 이커머슨가? 피피티랑 디자인툴을 배워야하나? 분명 이쪽은 이런 것도 다 잘하겠지? 특히 여자들....걔네들을 무슨 수로 이겨. 아 몰라 안 해.


다르게 접근해 본다. 이 소국 안에서만 살았던 지난 30년. 앞으로 나와 이 대한민국이 발전하려면 당연히 글로벌로 진출해야 한다. 왠지 이 영역이 유망해보이고너무 멋있고 끌린다. 그래. 요즘 대기업들은 당연히 해외진출하잖아? 달러벌이. 와. 개 멋있어. 그러면 양복 입고 해외출장도 다니면서 회사돈으로 해외 호텔에 묵으면서 간간히 여행도 하고 맛있는 거도 먹고. 이야.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하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멋진 삶이다. 승무원이 왜 매년 경쟁률이 박터지나. 해외 다니면서 여행하고 하니까 그렇지. 그래! 난 미국교환학생도 1년 갔다 온 인재 of 인재 아닌가. 스스로 자만에 빠진다. 영어를 할 줄 아니까 당연히 영어를 쓸 수 있는직무를 가야 맞아. 암. 그렇고 말고.

엇, 그런데 잠시만. 꼴랑 일 년 갔다 와서 내 토익점수는 800점이 겨우 넘고, 영어말하기 시험은 1년 전에 봤던 오픽 IH가 전부다. 이 정도로 해외직무를 할 자격이 있을까? 뽑아줄려나? 요즘은 유학도 많고, 영어 못하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경쟁력이 있을까. 흠. 고민이 된다. 해외사업 쪽 공고를 보니 이 안에서도 다양하다. 글로벌 영업이니, 해외마케팅이니, 해외영업이니, 식품회사는 해외소싱이니, 해외물류, 아. 머리야.일단 보류. 단순히 언어만 좋아한다고 되는 영역은 아닌 것 같다.


다음은 경영지원 쪽을 한번 보자. 아놔, 대학시절 회계원리를 수강했을 때가 떠오른다. C+받아서 교수님한테 겨우 빌어서 재수강해서 B0 받았던 나 아닌가. 회계는 절대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신기한 사람이 회계사, 세무사다. 다시 태어나도 못할 것 같다.

또 밑에 내려보니 SCM이란게 있다. SCM? 이건 물류라고만 대충 알고 있다. 워낙 영역이 광범위하기에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단다. 일단 내가 이쪽 분야에 아는 건많지 않지만 나랑 맞지 않을 거라는 거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물류관리사를 검색해본다. 일년에 한번 시험있고, 이미 날짜는 지났다. 갑자기 의욕이 확 떨어진다.


다음은 홍보. 친구가 기자라 과거에 친구한테 익히 들은 적이 있다. 기업의 ‘홍보’직군에 대해서.

여기는 한마디로 기자를 상대하면서 기업의 좋은 뉴스만 계속 내보내게 해야 한다. 그래서 친구는 맨날 접대 아닌 접대를 받는다고 한다. 법인카드로 회도 사주고 소고기도 사준다고. 매일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갑의 위치에 있다고 한다. 기자는 박봉이지만 어쨌거나 회사에서 맨날 맛있는 거 사주니까 그걸로 식비가 충당이 된다나 뭐라나. 명예직이란다. 개뿔. 그래서 기레기 기레기 하나보다. 아씨. 네이버만 봐도 기자는 개똥 같은 필력에, 클릭수 높이려고 제목 어그로만 끄는 것 같은데 뭐지. 매일 네이버 뉴스 보면서 '아, 이럴 거면 나도 기자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모든 회사 홍보팀에서 이렇게 굽실댈 만큼 기자가 이렇게나 대단했다고? 이래서 언론고시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어쨌거나 내가 어떤 회사의 홍보팀을 가면 술 시중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고, 술을 잘 마셔야 한다는 거잖아. 하. 술에는 자신 없는데. 이제 나이도 있고. 건강 신경써야된다고! 패스.


어라. 생각해 보니까 끝났다. 나는 서른 살 문과다. 문과는 이게 끝이다. 내가 넣을 수 있는 분야는 그냥 이게끝이란 거다. 다른 건 다 공대다. 이 세상 모든 취업준비생분들. 또 다른 할만한 직무 있으면 좀 알려줘요.

아. X된 거 같다. 내가 그럼 우리나라에서 일할 수 있는게 없다는 거잖아.

멘탈이 나간다. 생각해 보니, 어제 경섭이가 했던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경섭이는 통신회사에 다니는데 경쟁사 통신회사, 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연봉을 많이 주는 SK텔레콤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말이지. 이번 신입사원을 모집하는데 600명 언저리가 뽑혔는데 그중 문과생, 인문학전공이 4명이란다. 4명. 나머지는다 이과. 이건 SK 신입사원 OT 실제 자료다.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가 되는 와중에 생각 하나가 든다. 아니, 그럼 도대체 이 네 명은 뭐 하는 새끼들인 거야?

알파메일인가? 해외유학에, 5개 국어, 6개 국어는 기본이고, 전문자격증 있고, SKY 학벌이란 건가? 이런 새끼들이 꼭 보면 얼굴까지 잘생기고 키도 크다. 하. 인생은 진짜 불공평하구나. 여기서 만약에 운동까지 하면 반칙인거 알지?


갑자기 엄마가 방 노크를 한다. 점심 먹으란다. 벌써 11시 반. 그래도 밥 챙겨주는 건 엄마뿐이다. 점심을 먹으면서 엄마가 말한다.


"어제 모임에 갔는데, 정현이는 내년에 결혼한단다, 정현이랑 연락하니?"


"에이, 안 하지. 정현이는 잘 지낸대?"


"응 취업하고, 남편이 현대자동차 다닌다네. 부럽더라. 11월에 서울에서 결혼한다는데 너 갈 수 있어? 아니면 나 혼자 가고. 너한테 청첩장 보냈다는데 못 받았어?"


"어어 나 못 받았는데?"


사실 받았다. 받았는데 내 처지가 너무 쪽팔리고 해서 축하한다는 말도 아직 못 했다.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 축의금도 해야 하고, 불편한 스몰톡도 해야하고, 간다는 시늉도 최소 해야 할 텐데. 갈 용기도 없고 돈도 없다. 가서 또 정현이 친구들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취업얘기를 피해 개소리만 늘어놓다 오겠지. 사실 정현이 결혼축하는 안중에도 없다.


"취업준비하느라 바빠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한창 그때 인적성 시험 있고 면접 있는 시즌이잖아. 특히 주말이면 더더욱. 일단 못 가는 걸로 알아둬 엄마!"


"에이, 그래도 정현이 결혼식인데 가야지! 어떻게 나 혼자 가니?"


"안 간대도! 내 취업이 더 중요하지, 걔 결혼식이 뭐라고ㅡㅡ"


괜히 짜증을 내면서 나온다. 정현이는 내 초등학교 친구다. 나랑도 종종 연락을 하지만 엄마끼리 더 친해서 엄마를 통해서 자주 소식을 듣는다. 남편이 현대자동차라니. 그 말로만 듣던 현대자동차 사무직? 이야.

‘현차갓무직’이라는 단어도 있지 않나. 진짜 개 부럽다. 현차갓무직. 장난 삼아 요즘은 지구상에 이 직업을 이길 직업은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라 한다. 귀족노조에 매년 월급은 계속 오르고, 천프로다 넘는 성과급에, 평생 잘릴 일 없으니. 누군가는 전문직과 비교를 한다. 한 취업 커뮤니티 앱에서 제조업 쪽은 잘 모른다는 글쓴이와 대화 중 현재자동차를 다니는 직원이,


"나 현차 사무직이야. 대답이 됐으려나..?"


라는 말이 밈이 됐다. 아, 저 정도 회사는 다녀야 요즘 결혼이라는 걸 할 수 있구나. 이제 25년도 결혼 기준을알 것 같다.


노트북과 마우스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온다. 도저히 집에서 자소서를 쓰는 건 못할 짓이다. 엄마는 매일 저런 잔소리만 하고, 주변 사람들과 비교만 하고, 내가 한없이 작아진다. 곧 정신과가야할 것 같다. 괜히 엄마 탓을 하면서 씩씩댄다. 이 방구석 골방에 갇혀있느니, 밖에서 하는 게 사람들도 보고 적당한 소음도 들으면서 더 집중이 잘 될 것 같다고 자기 위안 삼는다.


집에서 15분 정도 거리에는 스타벅스가 있다. 스타벅스에 들어가 가장 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킨다. 저번에 친구한테 받은 기프티콘으로 한다. 왠지 돈을 번 기분이다. 사이즈업을 한다. 난 카페인 중독자니까.

오늘은 기분이 꿀꿀하니 500원 더 낼 여유정도는 있다.

스타벅스에는 젊은 청년들은 다 출근했는지 아주머니 몇 명만 있다. 그들은 옆에서 다 들릴 정도로 크게 자녀교육얘기를 한다.


"요즘은 최소 두 개 학년 정도는 선행학습 필수야 얘"

"집 앞에 해냄학원이 그렇게 잘 가르친다는데?"

"요즘 딸이 과학을 잘 못 따라가는 것 같아 걱정이야"

"야. 뭐래. 이번 국어 시험에서 아들 60점을 받았어"

"헐 우리도. 우리 딸은 외우기를 너무 싫어해 역사가 40점이야"


세상 무너지는 표정들을 하고 있다. 저 고민들의 끝은 어디일까 생각해 본다. 자녀들의 명문대학교 합격일 테지. 그럼 그 다음은? 취업이겠지. 근데 저들이 하나 간과하는 건 명문대를 아무리 나온 들 취업이 힘들다는 사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전문직이 아니고서야 이 대한민국 땅에서 돈 벌어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거. 왜 AI기술이 중국에 밀리는지 이제 알겠지? 미래가 불확실하니 의대만 보내는거다.

심지어 전문직도 결국은 영업이다. 영업을 얼마나 잘해서 고객을, 환자를, 의뢰인을 더 많이 끌여들이느냐가 내가 돈을 벌 수 있냐 없냐를 결정짓는다. 이 말은 뭐냐. 어머니. 역사 40점은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100점 받아도 취업 못해요. 저 한국사 1급이에요. 근데지금 일도 못하고 어머님 옆에서 커피나 홀짝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야 정신이 든다. 내가 본인을 알아간답시고 나와 맞는 직무를 찾고, 회사를 찾고. 다 개소리였다.

신한은행 계좌잔고를 확인해 본다. 96만 1500원이 남아있다. 역시 사람은 간사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철이 든다. 나는 지금 가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마치 비유를 하자면 정글 한복판에서 주위를 살피는 자식이 5마리나 있는 수사자와 같다. 그냥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눈에 보이는 거 다 사냥해야 한다. 그래야 내 자식이, 내가 먹고살 수 있다.


'그래, 그냥 눈에 보이는 거 다 넣자. 경섭이 말이 맞아.인턴이든 뭐든 이거 안되면 나는 공사장 가는 거야. 나는 문돌이라 회사에게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죄송해야 하는 존재야'


기안84도 패션왕 연재 전 딱 이런 마음이었을거다. 이거안되면 포기한다 마인드. 근데 봐봐. 성공했잖아.

그렇게 노트북을 열고 키보드를 다시 잡는다. 공사장 가기 싫은 마음은 그래도 꼴에 대학은 나왔다고 절실하다. 지금 공사판에 4년제 학사 졸업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모른 채.



-6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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