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이 질량보존법칙
정년퇴직을 한 달 앞둔 지인이 있다. 이 분에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퇴직하고 뭘 할 거냐고 묻는다한다. 물론 나조차 조심스럽게 물은 적이 있다.
따로 특별히 생각해 둔 건 없고요, 일단 좀 쉬려고요
같은 직장동료에게 숨기고 싶어서 이런 식으로 둘러댄게 아니다. 진짜 뭘 해야 할지 생각을 못하신 것. 자영업은 매일같이 죽는소리하고, 따로 기술을 배우기엔 늦었고, 시간이 이렇게 지나 보니 결국 뭘 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이건 하지 말아야겠다는 기준이 생겼다 한다. 그걸로도 만족한다고.
이 지인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몇십 년 간 회사를 위해고생하셨으니 당연히 쉬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이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이 좀 늦으면 어떤가. 모아둔 돈도 있겠다, 자식 다 키웠겠다, 퇴직금도 받겠다 뭐가 그렇게 급한가. 2030처럼 취업이나 아등바등 치열하게 사는 것보다 한 템포 느리고 여유롭게 진짜 본인이 원하는 걸 준비해 보면 될 테다. 오히려 정년퇴직 후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은 사람이 오히려 드물겠지.
반대로 2030이 회사에 취업했는데 회사에 몰입하지 않고 벌써 퇴직 후를 걱정하고 준비한다면 사실 그것도 어불성설. 그 사이 결혼도 해야 할 거고 자녀도 키워야 할 것이고, 내 집마련도 해야 할 거고 돈 들어갈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그럼 여기서 중요한 건 뭐냐.
정년퇴직을 얼마 앞두든, 아직 몇십 년이 남은 신입사원이든, 대기업에 다니든, 중소기업에 다니든, 자영업을 하든 지금 잘 나가든 말든 뭐든 언젠가 이 시기는 본인의 생각보다 빠르게 온다는 것에 있다. 한 우물에만 매몰되고 안주해서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이 미래에 적절히 대응할 수가 없다. 준비가 안되어있으면 그 시기에 잃는 것이 두려워 ‘그냥 쉰다’라는 표현으로 둘러대버리고 진짜 100% 몰입해서 쉬지 못하고, 100% 놀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흐르게 된다. 이 얼마나 슬픈 삶인가. 내 자산이 50억, 100억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 사실은 아주 높은 확률로 슬플 것이다.
과거의 만 60세면 곧 죽을 날이 머지않았으니 이 정도로 산 자체에 축하했고, 지금의 만 60세는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는 축하의 의미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40년 또 남은 거다. 심지어 회사나 장사 말고도 어디 고용되어 있는 상태 말고도 돈 벌 수 있는 구석은 널리고 널린 이 자본주의에서 우린 살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굶어 죽진 않는다. 하지만 이걸 아주 조금이라도 미리 준비하고 대비했더라면 아주 스무스한 랜딩으로 본인과 주변인들이 행복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수 전문직이 아니고서야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 랜딩을 위한 준비를 생각하기엔 시간도, 방법도, 그 어떤 힌트도 없다. 회사에서 갈리고, 장사하면서 문 닫고 집에서는 육아하랴, 밥 먹으랴, 씻고 개인정비 하다 보면 또 다음날 출근 무한반복이거든. 돌아보면 밤 열한시, 열두시다. 지금 자지 않으면 내일 출근길 체력에 지장이 생긴다.
일과 삶을 분리해서 자아를 찾으라는 말도 사실 망상에 가까운 게 야근을 한다거나, 스트레스에 조금이라도 예민한 사람이라거나, 생계를 위해 일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사람이라거나, 부모님이나 아이나 돌봐야 할 누군가가 있을 때에는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끝내 본인의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한 한 집안의 가장은 자녀에게 본인의 꿈을 투영시켜 교육비에 열을 올리고, 자녀를 하여금 자아실현을 원하는 악순환의 무한반복.
그래서 대통령은 말한다. 창업을 해야 한다고. 월급쟁이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국가가 도와준단다.
자, 근데 생각해 보자. 월급쟁이 회사원은 위에서 정해주는 대로 일하고 월급 받으면 그걸 차곡 모으기만 해도 어떻게든 살아진다. 정년퇴직을 한 지인도 퇴직금이라도 두둑이 손에 쥐고 나온다. 근데 창업을 하면 본인이 다 의사결정하고 돈도 다 투자하고 모든 위험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그리고 그 위험부담을 국가에서
100% 절대 책임져주지 않는다. 나랑 상관없는 한 개인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무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그게 아무리 국가라 해도 그건 말도 안 되는 얘기다. IMF 금 모으기 운동을 생각해 보자. 내 나라가 이렇게나 힘든데도 장록 속에 묵혀놨던 금을 무상으로 기부한 사람 대한민국 국민은 아무도 없다. 다 그들도 언론과 매스컴에서 ‘함께 이겨내고 극복한 IMF'라는 기가 막힌 프레임을 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원래는 그들도 다 뜯어보면 국가에게 돈을 받고 판 것 아닌가. 심지어 당시 국가가 원래 시세보다 20% 정도는 더 얹어줬기 때문에 금 가지고 줄 서서 기다린 거다. 아니면 미쳤다고 내 소중한 금을 나라가 어렵다고 팔겠나? 똑같은 논리. 내 돈 잃으면 전부 구제해준다? 그런 거 없다. 유튜브나 전자책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돈 번 사람이 많아 창업이 뭔가 회사원의 대체품으로 여겨져 쉽다고 여기는 사람이 간혹있는데 실제로 해보면 사무실 월 임대료도 못 내는 사람이 태반이다. 월급 받는 전문직도 개업해서 일 이 년간 자리 잡으려면 월 임대료도 부담스러운데 무슨 창업인가.
이 시대의 흐름에 정확히 타기 위해서는 자기 규율과 통제, 그리고 그 통제 속에서 얼마나 미칠 수 있냐가 앞으로의 50년을 결정지을 수 있다고 본다. 회사원이든 자영업자든 물론 일을 하는 시간 자체에서는 한결같이열심히 해야 한다. 퇴근 후 일과가 끝난 후 시간이 없음에도 자기 규율이 몸에 베여있다면 십분 아니, 한 시간,두시간도 시간은 낼 수 있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운동할 시간이 과연 없어서 못하는 걸까. 그냥 시간내기가 귀찮으니 안 하는 거다. 그리고 그 규율 속에서 ‘또라이’만 결국 살아남는다. 무엇을 좋아하고 관심 있는 개념을 넘어 그냥 거기에 미친 또라이.
젓가락질 하나도 완벽히 잘하기 위해서는 백번 아니 천번을 연습해야만한다. 그 천 번의 과정들이 얼마나 지루하고 괴롭겠나. 근데 예를 들어 이 젓가락질에 미친 또라이는 그 순간마저 즐거울 것이고, 천 번, 만 번 뒤 남들과 다른 퍼포먼스를 보일 거고 그곳에 사람이 몰리고 돈이 몰린다. 누구나 좋은 말 하고 싶지.
‘잘 될 거야’
‘아직 너의 때가 아니야’
’너가 좋아하는 걸 찾아봐‘
’다양한 경험을 해봐‘
라는 맹목적이고 원론적인 말 뒤에는 이 간과할 수 없는 명확한 핵심이 숨어있다. 그냥 미쳐야 한다. 앞서 말한 창업도 진짜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은 일단 본인의 분야에 미친 사람들이다. 그게 창업을 시작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겠지. 자, 그런데도 그 중 90%는 망한다.
그런 토 나오는 일련의 과정을 겪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만 누군가는 본인에게 전문가라고 불러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멋있다고 말한다. 그제야 본인이 불특정다수에게는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힌다. 그리고 그는 떼돈을 번다. 가장 간단한 구존데 나를 포함한 아주 많은 사람들은 딱 하나 그게 없다.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 그래서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그 또라이가 되질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