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떤 삶을 사신 겁니까

이야기와 관습 그 사이

by 홍그리

강한 내면을 가진 이들이 있다. 그들과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각자 고유한 본인만의 사연 혹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로 하여금 그 강한 내면이 만들어졌음을 연상케 한다. 근데 이 이야기라는 건 우리 일상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관습과 이야기의 차이를 먼저 보자.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구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풍습. 바로 ‘관습’의 정의다. 이 사회는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일터에 나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관습에 기인되어 움직인다. 이는 사람이 한 행동의 해석 말고도 어떤 원인에 따른 당연한 결과도 물론 포함된다.

아침 출근길 횡단보도는 초록불이 있을 때만 걸을 수 있고, 버스를 탈 때에는 임산부나 노약자석에는 의무는 아니지만 ‘의례적으로’ 자리를 양보해야 하며, 버스는 언제 오는지, 몇 분 동안 달리는지, 어디에서 내리는지, 중간에서 왜 탈 수는 없는지. 회사에서는 왜 A일의 매뉴얼이 있고, B일의 매뉴얼이 따로 있는지. 이 모든 게 사회적 질서 속에 오랜 시간과 함께 형성되어 왔다. 회사에서 인수인계를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 “그 누구도 A와 같은 일을 인계받을 때 왜 이렇게 하나요?”라고자세히 물어보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해왔고, 이렇게 앞으로 계속하라고 하니까 하는 거다. 그 조직의 관습이다. 누군가 묻는다.


“쟤는 왜 비싼 옷만 입고 다녀?”

“응. 쟤는 돈이 많기 때문이야”


원론적인 얘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이것도 관습이다. 돈이 많은 사람은 비싼 옷을 입든 비싼 차를 타든 자기 마음대로 그냥 입어도 상관이 없다. 어떤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 합리적인 방법으로 그 돈을 벌었다면 더더욱 비싼 옷을 입든 말든 그 누구도 알빠아니다. 누군가는 다이어트를 하다 스트레스를 받아 생각한다.


‘아, 나는 왜 이렇게 뚱뚱한 걸까?’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혹은 유전적으로 부모님, 형제 모두가 뚱뚱하거나. 이것도 관습이다. 칼로리를 높은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당연히 살이 찐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들 절제하며 살아갈 뿐. 본인은 많이 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찌는 거다. 이렇듯 하루 24시간 중차지하는 대개 모든 것들은 관습이 된다. ‘기차가 왜 늦게 오지?‘, ‘버스가 왜 안 왔지?‘, ’왜 어른을 공경해야 하지?‘ ‘장애인을 왜 돌봐야 하지?’, 들었을 때 당연 혹은 바로 수긍할 수 있는 정답이 떠오르는 건 우리 모두 대개 오랫동안 많은 사회 구성원이 인정하는 관습에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관습 중 도덕적 요인이 포함된 것들을 아니라고 단정 짓는 사람은 사이코패스거나, 범죄자거나, 사회의 질서를 흐리는 사람들일 테지.

관습이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거쳐서 오류를 수정하고시행착오를 겪어 자리 잡을 수 있는 배경엔 모두가 보편적인 정답인 줄 아는 착각 혹은 무심함이 한몫한다. 즉, 당연하고 이유가 필요 없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랄까.


반면, ‘이야기’를 보자. 이야기는 조직, 사회 전체가 어우르고 공감하고 지켜야 하는 앞선 관습과 달리 개인적인 요소가 강하게 자리한다. 개인의 성장배경이나, 개인의 신념, 개인이 겪은 각자의 경험, 개인의 성격. 이는 사람마다 전부 다 다르고 정답이 없거니와, 이 이야기가 독특할수록 본인의 개성과 취향이 된다. 이야기가 관습과 다른 가장 큰 매력은 강력한 책임전가를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각자 권리나 이익을 따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주장에 힘을 싣는 근거가 된다. 어떻게? 내가 유리한 쪽으로. 가령, 장발장 얘기가 있겠다.


“너 왜 빵을 훔쳤어?”

“훔치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죄송합니다”

이건 관습. 자, 근데,

“3일 동안 돈이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해 이렇게 가다간 진짜 쓰러질 것 같아서 도저히 참지 못해 하나 먹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면 물론 훔친 것 자체는 잘못된 거지만 본인의 이야기가 실려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나중에 재판을 가거나 본인의 입장을 얘기할 떄 그 죄가 분명 참작요소가 된다. 반대로 부정적인 상황일 때도 마찬가지. 회사에서 가령 문제가 터졌다 해보자. 회사가 피해볼 수 있는 큰 사고가 났다. 한 담당자가 오류를 발견하지 못해 잘못된 패키징이 5천만 원어치 생산됐고 이를 다 폐기해야 한다고 해보자.


A: “너는 규칙을 여겼기 때문에 징계를 받아야 해”

B: 패키징 관련 교육을 수차례 했고, 너는 그 교육을 받았다고 서명도 했으며, 단 한차례 일어난 일도 아니고 이 외에도 근무태도가 불량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나왔다. 심지어 5천만 원이라는 회사에 큰 피해를 줬기 때문에 그에 맞는 징계를 받아야 해“


이처럼 B처럼 본인이 생각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더 가중의 처벌을 할 수도 있다. 월급이나 성과급의 차등을 두는 일도, 퇴근 후 집안일에 관한 일도, 공금을 쓰는 일, 술을 마시는 일, 동업자와 이익을 나누는 일, 이 모든 걸 본인이 유리하게 이야기를 통해 이익을 취할 수 있고, 반대로 관계의 개선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관습에 따라 일을 하더라도 점심시간만 되면 주말에 뭐 했는지, 요즘 취미가 뭔지, 재테크의 정보를 나누면서 본인 이야기를 하는 직장인처럼 말이다. 혹은 이야기는 청자로부터 궁금증을 더 자아내는 역할도 한다. 가령, 차량 사고가 났다. “사고 났어요! 보다, 뒤차가 갑자기 제 차를 세게 박았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더 설득력과주의를 끌기 쉽잖아.

911 테러가 났는데 그냥 테러발생! 보다, “지금 비행기 두대가 뉴욕 쌍둥이 무역빌딩에 충돌했어요!” 가 더 궁금하고 더 놀라고, 더 다음 얘기를 듣고 싶어 지는 것처럼.


자, 이 뜻은 뭐냐. 관습과 이야기의 가장 큰 차이점. 본인에게 유리한 무언가를 끌어올 수 있다는 거다. 내가 내 마음대로 이 사회에 떠도는 어떤 정해진 관습과 규범 외에 무언가를 조종할 수 있다.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본인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힘이 있다. 세상이 정한 그 어떤 관습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꼭 책임전가나 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게 문제가 된다 하더라도 일단 본인이 마음이 편하고 당당하다. 그리고 그 본인의 내면은 더 단단해진다. 스토리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유명한 사람도 금세 자취를 감춘다. 지금 최정상에 오른 가수 BTS라던가, 케대헌, 모든 셀럽, 캐릭터들은 본인만의 스토리와 역사가 있지 않은가.


근데 이 이야기라는 것이 어떻게 사람들로부터 강한 설득력과 개성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생각해 보면 신기할 정도로 간단하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건 아까 말했듯, 개인의 경험이나 신념, 성격이 바탕이 된다.대부분이 경험의 양이 모든 걸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경험의 양만 많다고 해서 강한 신념과 성격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사소한 경험을 해도 어떻게 지금 내 ‘현재의 삶’에 유리하게 적용시킬 것인가.그 연습을 하는 데 본인만의 이야기가 조금씩 자리 잡는다고 여긴다. 그게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그래서 회사 면접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질문이


“그걸 통해서 뭘 배우셨죠?”


지 않을까. 산전수전 다 겪은 면접관들의 눈에 자기소개서에 쓴 학생들의 하찮은 경험을 점수매기고 있는게아니다. 그 경험을 통해 어떤 걸 얘가 배우고 본인 삶에유리하게 적용시키고 있지? 그걸 보고 있는 거다.

토론을 하든, 영화를 만들든, 책을 쓰든, 스토리텔링이 각광받는 것도 동일한 이유다. 사람들은 개인의 이야기가 가미된 어떤 내용에 미친다.

이 세상은 원인과 결과라는 게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런 곳이라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본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인사대천명처럼 노력할 만큼 하고 하늘에 맡긴다는 것도 다 그런 논리. 근데 본인만의 강한 이야기가 있으면 조금 더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써 내려간 강한 본인만의 이야기가, 본인의 이유를 설명할 때 뒷받침이 되고, 강한 근거자료가 되고, 그 당당함이 실제 불가능을 가능케 만들고, 그 어떤 것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내면이 단단해지는 사람이 되는 결국엔 그런 루트 아닐까.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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