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등바등 사는 삶
우리 각자의 일상은 나 하나쯤 없어도 신경이나 썼냐는 듯 너무 잘 굴러간다. 애초에 마치 안 태어났던 사람처럼.
뉴스에 모르는 사람이 어느 지역에 화재가 발생해 몇십 명이 죽었다라던가, 교통사고가 나 중상을 입었다던가 신경이나 쓰나? 그냥 뉴스 클릭 한번 해보고 넘기기 일쑤다. 혹여나 자아가 비대해서 나 없으면 우리 가족은 존재할 수가 없다거나, 나 없으면 이 회사는 절대 굴러가지 않는다라고 확신에 찬 누군가 있다 하자. 실제로 없어지는 어느 순간이 올 때 잠시 삐걱대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어떻게든 다 굴러가고 다 살아진다. 다른 사람에게 본인은 아무리 소중한 사람인들 어쨌거나 타인일 뿐.
자,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개개인 각자의 가치대로 중요도의 비중을 조절해 가며 그 사이 행복과 만족을 느끼면서 살아갈 뿐이다. 자, 그럼 대다수가 느끼는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뭐가 있나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본인의 사명이나 목표(가치관), 건강, 가족, 돈, 시간 결국 이 안에서 다 파생된다고 보면 된다. 가지치기를 하더라도 결국 큰 그림에서 본다면 여기서 뻗어나간다. 이 결과에 따른 희로애락을 10대부터 느껴간다. 대체로 비교문화에 익숙해진 한국사회에서는 희와 락보다는 로와 애. 즉, 낭보보다는 비보가 많다. 혹은 본인이 그런 식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오고, 우울, 과로, 고독, 절망, 좌절, 슬픔 이런 단어가 우리 삶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거다. 아주 보통의 삶을 사는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을 보며 생각해 보자.
먼저 입시가 있겠다. 목표와 현실의 괴리감에 좌절하며 피나게 인서울대학교에 가려 노력한다. 목표하는 방향이 높을수록 그 노력의 결과가 대체로 긍정적이진않다. 목표를 이룬 사람 중 공통점이 피나게 노력했다는 것일 뿐, 노력은 그냥 디폴트거든. 그렇게 누군가는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성적표를 받아들인다.
‘아, 난 왜 이것밖에 못했지. 왜 아는 문제가 없었지. 찍은 게 틀렸지’
정말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시험은 1년에 단 하나뿐이니, 운이 나쁘게도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수도 있고,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았을 수도, 긴장을 너무 해서 일수도 있다. 목표를 이룬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의 삶은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지방대면 뭐 어떤가. 그냥 산다.
다음은 취업. 자기소개서를 쓴다. 인턴도 하고, 외국어 시험도 몇십 번이나 쳐서 점수를 만들어놓고, 대외활동이며, 공모전이며, 학점이며 취업에 도움 되는 그 어떤 방법을 다 찾아서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지원서를넣는다. 처음에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방법을 몰라 첨삭을 맡기기도, 계속 바꾸면서 좋은 표현들을 고쳐나간다. 그렇게 20개, 다음 시즌엔 30개, 1년이 지나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70-80개를 넣는다. 그리고 고작 서류는 9-10개 붙는다. AI역량검사를 하고, 면접준비를 하다가 또 면접장에서 긴장한 나머지 준비한 답변을 얼버무린다. 그렇게 최종면접에 떨어진다. 가장 힘든 건 이 전형별 단계를 처음부터 다시 또 해야 한다는 것. 기다렸던 회사의 공고는 뜨지 않는다. 1년, 2년이 지난다. 서류를 100개 넣는다. 그러다 또 가까스로 1번, 2번의 면접기회가 온다. 1개가 또 떨어졌다. 나머지 딱 하나 남았다. 이번에 떨어지면 더 이상 버틸 돈도없고, 자신도 없으니 공장이나 들어가야겠다 하고 다짐한다. 안 되는 거 붙잡아봐야 시간만 날린다. 포기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런데, 딱 그 순간 붙는다. 심지어 대개 이럴 때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그냥 힘 빼고 한번 쓰기나 해 봐야지 했던 곳에서 합격연락이 온다는 것. 그렇게 그 기회를 소중히 간직하면서 직장에서 어떤 힘듦이나,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참고 다닌다. 내게 주어진 최선의 운명이라 생각하면서.
이제 연애와 결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날 싫어하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날 좋아한다. 이 미스매치는 과학이다. 20대엔 헤어짐에 펑펑 울어도 보고, 처절하게 매달리면서 붙잡아도 본다. 그러다 내가 진짜 어떤 이성을 좋아하는지 가치관을 명확히 확립해 간다. 30대가 되면 이제 그런 데 힘을 쏟을 여력도 없다. 이미 직장에서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있는데 나한테 아무 관심없는 누군가에게 매달리라고? 매달릴 힘이 있을 턱이 있나. 열정이 없는데. 이건 마치 나에게 아무 관심조차 없는 직장동료들에게 아무에게도 말못할 내 소중한 사생활을 얘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건 상대방도 곤욕일터. 전혀 궁금하지가 않을 거거든.
그러다 지인에게 소개를 받아 우연히 소개팅을 한다. 내가 가진 이성관이랑 ‘얼추’ 잘 맞는다. 소비습관이나,외모나, 집안이나, 성격이나, 뭐 하나 모난 것이 없다. 그렇게 몇 번 더 만나 연애를 하고 남들이 다 가본 데이트코스를 하나 둘 밟아간다. 네이버에 쳐서 핫플이라던가 데이트명소를 싹 훑어주고 도장깨기를 시작한다.그리고 마침내 수많은 이성을 거쳐 시행착오를 겪은 뒤, 마침내 결혼을 한다. 이 여자(남자)가 미치도록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가? 에 대한 질문에는 여전히 물음표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있다. 이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이만한 상대는 찾기 힘들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 타협을 하기로 한다. 내 인생 최선의 반려자라고.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구석도 살아보니 많지만 억지로 참으며, 장점을 극대화하는 노력을 하면서 그냥 산다.
그러다 임신을 준비한다. 임신이 쉽지 않다는 얘기는 주변에서 여럿 들었는데 역시나 쉽지가 않다. 자연임신을 여럿 시도하다 난임병원을 찾는다. 그리고 정자/난자 검사를 해본다. 결과는 당연 좋지 않게 나온다. 이유는 모른다. 현대사회에서 내가 좋아하고 스트레스 푼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은 이 결과지에 악영향을 미쳤을 거라 맘 편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임신을 몇 번 시도해 보다 안돼 배란유도제를 먹어보기도 하고, 배란일을 맞춰 도전해보기도 한다. 근데 실패한다. 의사는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을 권유한다. 시험관을 결심하고 만만의 준비를 한다. 누군가는 여기서 힘든 시험관의 길로 간다. 그러다 하늘이 도운 듯, 아기천사가 찾아온다. 남들은 시험관 하느라 힘들어 죽는데, 심지어 시험관을 해도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는데 이 정도로 본인들은 너무 축복받은 인생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회사는 적응을 해서 어느 정도 다니다 보면 승진할 때가 된다. 그 사이좋은 상사도 안 좋은 상사도 몇 번 거친다. 누군가는 닮고 싶은 사람이, 누군가는 저 사람처럼은 절대 안 되어야지 라는 생각이 자리한다. 내가 한 것이 아닌데 내가 혼나는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하고, 예상치 못하게 공이 내게 돌아와 칭찬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인센티브를 많이 받기도 한다. 그러다 인사시즌이 된다. 직장인에게 가장 큰 보답이 뭔가. 월급과 승진 아닌가. 근데 승진이 누락된다. 동기들은 승진하고 막 잘 나가는 것만 같은데 나만 아직 제자리다. 그리고는 본인을 탓한다. 아, 내가 어디가 부족하지, 열심히 했는데 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자책한다. 그리고 꾸역꾸역 다닌다. 그러다 또 시간은 잘 흐른다. 어느덧, 나도 마지막으로 승진을 하고 어느 순간 보니 나이를 한참 먹어있다. 이게 내 인생에 뭘 그렇게 의미 있었나 생각해 본다.
회사는 나를 평생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퇴근 후 뭐라도 해보려고 한다. 독서를 하는데 눈에도 잘 안 들어오고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도 감이 안 온다. 영어공부를 하려니, 놓은 지 몇 년 된 영어를 다시 하려니 마냥 지루하기만 하다.유튜버를 하자니, 할만한 주제나 콘텐츠도 없고 도저히 시작할 엄두가 안 난다. 그리고 누워서 다른 사람이 만든 유튜브와 쇼츠를 본다. 그리고 2~3시간이 벌써 지나있다. 대충 밥도 배민에서 시켜 먹는다. 그렇게 씻고 잠이 든다. 아, 내가 시간을 오늘도 허비해 버렸다며자책하다가 다음날 아침을 맞는다.
재테크를 위해 꾸준하게 나스닥 100과 S&P500을 모아간다. 결국은 꾸준함이 답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누군가는 주식으로 대박을 쳐 몇억을 벌고, 누군가는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돈을 잃는 걸 본다. 누구는 벌써 서울에 집을 샀고, 누구는 아직도 정규직 취업을 못해 계약직을 전전한다. 누구는 원래 금수저라 일을 따로 하지 않아도 매월 돈이 들어온다. 건물을 물려받았고, 회사를 물려받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장가 간 지인도 있다. 다 각자가 만족하는 돈으로 그렇게 살아간다. 누가 돈을 잃었든 땄든 그냥 내 돈과는 전혀 상관이없기에 나만의 속도로 그냥 천천히 가기로 한다.
어쩔 때는 병원에 간다. 눈이 아플 때도, 독감이 걸릴 때도 있다. 머리가 아프거나,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수액을 맞거나. 작은 교통사고라도 난다거나. 영원할 것 같았던 부모님은 아픈 곳이 많아지시고 연로해 간다. 친구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살이 쪄서 몰라보게 변한다. 과거 예비군을 갈 때 군복이 안 맞는 사람들을 ‘왜 저렇게 자기 관리를 못할까’ 하며 한심해했는데 이젠 본인이 맞는 옷이 없어져간다. 그게 딱 본인이었다. 결혼식 때 입었던 예복은 작아서 입지도 못한다. 웬만한 음식은 소화도 이제 잘 안된다. 그렇게 소화제를 달고 살다가, 조금이라도 소식하고, 퇴근 후 운동을 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젊을 때 조금만 운동하면 빠졌던 살은 이제 두 배, 세배해야 겨우 빠질까 말 까다. 그리고 큰 데 아픈 곳이 없는 본인이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는다.
건강, 가족, 돈, 시간 앞에서 이렇게 모두가 만족하는 삶은 대체로 잘 없다. 바라는 날은 본인이 노력한들 쉽게 오지도 않는다. 나한테만 안 좋은 일이 몰아치는 것 같다가도 또 주변을 둘러보면 이 정도를 하고 있는 것이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크고 작은 상념들이 오간다.
가장 삶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본인은 잘 지키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 가만 보면 그냥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것만 같거든. 이 보통의 나날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자신이 작아진다.
근데 그 보통의 나날들을 채워가는 그 자체도 실제론 너무 대단하다. SNS에만 비치는 타인의 모습도 실제론 크게 대단하지 않다. 그곳에선 본인의 바닥과 타인의 하이라이트를 비교하고 있으니 당연히 자책할 수밖에. 그나마 이 일상을 지키는 작은 루틴 자체가 내게 운이라는 게 다가올 수 있게끔 만들어주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지금까지 운 좋게도 이룬 것조차 모두 내가 그냥 얻은 건 아님은 확실하다. 일단 뭔가 하려는 마음가짐이 부른 결과일 테니. 조금씩 조금씩 모든 게 익숙해질 것이고 어떻게든 더 나아질 것이기에 더 큰 운이 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도 해본다.
보통사람에게 보통날이란 건, 좀 더 나은 일이 일어나게끔 본인에게 운이라는 게 다가올 수 있게끔 노력하는 것이며 그 작은 희망 자체가 어쩌면 매일의 바쁘고 지친 일상을 채워가는 이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