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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보다 무서운 건

사랑.

by 멜로디

반 년전,

관계가 무섭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깊은 관계를 두려워하는 나를 돌아보며, 앞으로는 기회가 온다면 도망치지 않고, 조급해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보고 마음 가는대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글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상대가 찾아왔다.

운명같은 순간들을 선물해준, 마음껏 사랑을 주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

그동안 만난 그 누구보다도 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그래서 좀 느릴지라도 이해할 수 있고, 기다릴 수 있는 그런 사람. 나에게 안전함과 설레임을 동시에 주는 그런 사람.


그저 건강한 관계만을 목표로 했던 나에게, 그보다 더 큰,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다가왔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을 참 많이 느꼈다.

나는 원래 관계에 진심을 쏟지 않는 편이라 그런지, 내 스타일과 많이 다르면 그걸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그냥 나랑 안 맞나보다, 하고 말아버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도 이해해보고 싶고,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고 싶고, 그 사람이 힘들어보이면 내가 안식처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했다.

'그대를 쉬게 하고 싶어, 내 귀한 사람아' 라는 내 최애 가사가 절로 떠오르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인 줄 알았다.


결국,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요즘.

생각보다 마음이 많이 많이 힘들다.

나는 그동안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그리 와닿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성적으로는 헤어져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남아서 헤어지지 못하는 사례들을 들을 때마다,

'저건 저 사람이 이성적이지 못하고 분별력이 없는거지. 왜 저런 멍청한 짓을 해?'말하기도 했다.

그럼 옆에서 엄마가, '네가 아직 사랑을 안 해봐서 그래. 사랑하면 그게 안 된단다.' 하고 웃었다.

나는 그래도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요즘 그 장면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른다.


맞다. 그게 안되더라.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는 놓는 게 맞다는 걸, 나는 더 큰 사랑과 배려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쉽게 기대를 놓지를 못하는 내가 나도 웃기다.


기대라는 건, 참 무서운거다.

그 사람은 애초에 내가 기대한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 내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그 사람은 어디쯤에 있는지.

모두 처음 겪는 것들 뿐이라 너무 혼란스럽기만 하다.

감정에 휘둘리는 내가 싫지만.. 어쩌면 반갑기도 한 이 마음은 뭘까?

괜찮은 척 하고 싶으면서도, 힘들다고 티 내고 싶은 이 마음들은 뭘까.


아무튼, 여행을 떠나려 한다.

그 여행에서, 내 마음에서 비워져야할 것들은 비워지고,

채워져야할 것들은 채워지길.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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