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신주쿠구 신주쿠 교엔
2026. 03. 08.
오늘의 산책길은 신주쿠 교엔. 날씨가 너무 좋아 아침에 일어나 즉흥적이고 직감적으로 정한 목적지다. 함께 온 동료들은 신주쿠 교엔의 연간 패스를 끊고 이미 몇 번이나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기에, 그리고 녹지를 잘 보존하고자 하는 도쿄 도의 노력을 여기 지내는 5개월간 숱하게 피부로 느껴왔기에, 고민 없이 나도 연간 패스를 구매할 마음으로 목적지로 향했다. 우리 동네 역까지 가는 길에도, 역사에서 덴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신주쿠 역에 내려 신주쿠 교엔까지 걸어가는 길에도 파란 하늘과 청명한 빛이 비친 도심의 풍경들이 어우러져 마음을 활짝 펴게 했다. 며칠 전 기바 공원을 산책할 때처럼. 선명하고 깨끗한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꼭 마음이 청소되는 것 같다.
신주쿠 교엔의 입장료는 500엔. 고등학생과 대학생, 65세 이상의 경우 250엔, 15세 이하의 청소년과 영유아의 경우 무료이다. 이곳에서 나는 대학생 신분이기에 250엔에 입장할 수 있으며, 연간 패스(2000엔)를 구매할 경우 1년간 8번 이상 오면 패스를 잘 사용한 셈이 된다. 신주쿠는 도쿄 시내 중 우리 동네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인 데다가 공원 산책을 사랑하는 나에게 1년에 이곳을 8번 오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으리라. 패스를 구매하고 간단한 신청서를 작성했더니, 그 자리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이렇게 1년간 신주쿠 교엔을 무제한 입장할 수 있는 연간 패스 티켓이 생겼다.
그런데 신주쿠 교엔(新宿御苑)은 분명 공원 같은 곳인데 왜 코엔(公園)이 아닌 교엔(御苑)이라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곳은 '황실'의 정원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라 원래는 '공공'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엔에는 보통 일본어의 존칭에 많이 쓰이는 한자인 '御' 자가 붙는다. '苑' 자도 '격식 있는 큰 정원이나 원림'을 뜻하는 한자로, '공원'이나 '정원'에 쓰이는 '園' 자보다 존경, 높임의 의미가 담겨있다. 실제로 신주쿠 교엔 내부에 있는 신주쿠 교엔 박물관에서 신주쿠 교엔은 황실 정원으로 쓰이다가 1949년에야 민간에 개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목련 나무 한 그루.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목련 나무를 올려다보거나 사진을 찍고 있다. 마땅히 그럴 만하게도 목련 나무는 다른 푸르거나 앙상한 나무들 틈에 혼자서 밝은 상아빛의 꽃을 피우고 우뚝 서있다.
목련이 이렇게 예쁜 나무였나. 크림 같은 꽃잎들이 새파란 하늘과 만나 고흐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고흐가 그린 꽃은 아몬드나무의 꽃으로 엄연히 다른 나무의 다른 꽃이지만,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그 아래 흰 꽃을 피우고 이제 잎을 돋우려는 두 나무의 모습이 비슷해 보였다. 내가 커다란 목련 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본 것처럼 고흐도 아몬드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이런 그림을 그린 건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 보며 목련 나무와 하늘을 한참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시계 방향으로 둘러 걸으며 구 서양관과 대온실, 신주쿠 교엔 박물관 내부를 구경하고 풍경식 정원 쪽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걸어 다니며 인상 깊었던 것은 발바닥에 느껴질 정도로 잔디가 매우 푹신하다는 점이었다. 교엔 내에는 아스팔트가 거의 깔려있지 않으며 나무나 꽃이 심어져 있지 않은 부분도 그냥 맨 잔디로 두었는데, 이 잔디가 굉장히 푹신해서 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혹은 그냥 잔디에 바로 앉아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이곳은 아무것도 심지 않고 그저 잔디로 두어 더 멋진 풍경이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곳을 걷기만 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푹신한 잔디 위에 털썩 앉거나 드러누워 시간을 보낸다. 이곳이 황실의 정원일 때 관리하던 자들의 의도가 그러하였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비워냄이 만들어낸 또 다른 채움이다.
플랫 슈즈를 신고 가길 잘했다. 맨 잔디 위에 앉거나 누워보진 못했지만, 신주쿠 교엔의 포근한 잔디를 발바닥의 감각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엔을 크게 반 바퀴 정도 돌아보며 걷다가 센다가야역 쪽 문으로 나왔다. 나머지 반 바퀴를 돌며 느낄 감동은 다음 방문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센다가야문으로 나와 신주쿠 역 방향으로 걷다가 이번엔 매화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줄기가 없이 가지에 바로 붙어 피는 분홍빛 매화. 매화나무 역시 푸른 하늘을 바탕으로 삼아 분홍빛 꽃잎을 더 생생하게 뽐내고 있었다.
도쿄 내에서도 가장 복잡한 도시 중에 하나인 신주쿠에서 자연과 함께 봄의 생동을 느끼는 하루.
아무래도 금방 다시 신주쿠 교엔에 오게 될 것 같다. 빨리 지나가는 봄을 붙잡으러 와야지.
그때는 목련과 매화가 다 떨어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