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흑백요리사 맛집을 방문하다

5 - 신주쿠구 신오쿠보

by 히요쿄

2024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한국인이라면 이 프로그램을 직접 보진 않았을지언정 프로그램 이름이나 출연한 셰프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전문 셰프와 숨은 실력자를 백수저와 흑수저로 나누어 경합하는 이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외식 트렌드 전반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을 뿐만 아니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덕에 이른바 K-푸드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최근 방영된 시즌 2의 경우 출연 심사위원의 의혹 및 논란, 프로그램 중 제작진의 실수로 강력한 스포가 방영된 것, 흑수저 셰프들이 더 이상 숨은 실력자가 아닌 이미 유명한 네임드 셰프들로 구성되어 진짜 ‘흑수저’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시즌 1만큼의 강력한 파급력을 갖진 못했다만, 프로그램에 출연한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은 일찍이 예약하지 않고는 방문하기 어려울 만큼 분명 여전히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중 내가 가보고 싶었던, 궁금했던 식당 중 하나는 ‘옥동식’이다. 옥동식을 운영하는 셰프는 흑백요리사 시즌 2에서 ‘뉴욕에 간 돼지곰탕’이란 닉네임을 달고 흑수저로 출연하였다. 평소 돼지곰탕을 즐기는 편도 아닌데, 조리법에 큰 변수를 줄 만한 요소도 찾아보기 힘들며 자극적이지도 않은 돼지곰탕이 뉴욕 맨해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니 그 맛이 궁금하기도 했고, 프로그램 내 ‘흑백대전’ 경합에서 뉴욕에 간 돼지곰탕 셰프가 선재 스님과 가평 잣을 주제로 대결했던 것이 인상 깊어 더욱 그의 식당이 궁금해졌다.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다 알게 된 사실인데, 뉴욕에 간 돼지곰탕 셰프의 본명도 ‘옥동식’이라고 한다. 자기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식당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방증이니 어마어마한 맛집일 거라고들 예측하지 않는가. 과연 옥동식 셰프는 자기 이름의 식당을 서울에 이어 뉴욕, 파리, 도쿄에 내걸며 명성을 떨치고 있다.


서울에서 옥동식을 방문하려면 주말에는 11시에 식당이 오픈하기 전에 줄을 서야 하고, 그마저도 11시 30분쯤 되면 하루 전체 웨이팅이 마감된다고 한다. 아침에 줄을 서서 웨이팅 등록을 하고 저녁에나 먹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나는 돼지곰탕을 위해 그런 웨이팅을 감수할 자신은 없기에 언젠가 인기가 잠잠해지면 방문해 봐야지, 생각하던 참이었다.


도쿄에도 글쎄, 옥동식이 있다는 것이다! 도쿄에 같이 온 동료 중 한 명이 이 사실을 알고 방문했는데, 웨이팅 줄에서 10분 정도의 대기 후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럴 수가. 도쿄에 산다는 이유로 흑백요리사 맛집을, 그것도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들 중 하나를 이렇게 쉽게 경험할 수 있다니!


옥동식 도쿄 지점은 최근 한류의 성지로 일본인들에게 인기를 끄는 신오쿠보에 위치해 있다. 신오쿠보는 도쿄의 코리아타운으로, 한식집이나 한국 코스메틱 브랜드, 한인 마트 등이 즐비하여 정말 한국에 온 것만 같은 풍경을 가진 곳이다.


나처럼 아직 옥동식을 가본 적 없는 J에게 함께 옥동식에서 점심을 먹고, 디저트로 두바이쫀득쿠키(이하 두쫀쿠)를 사 먹고, 한인 마트에서 장을 봐 오자고 제안했다. 기숙사에서 주로 요리를 해 먹는 우리는 몇 달 전 신오쿠보에서 치킨과 떡볶이를 사 먹고, 각종 김치와 청양고추를 사서 돌아왔던 적이 있다. 우리의 두 번째 신오쿠보 데이트가 그렇게 성사되었다.


2026. 03. 12.


내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여준 J와 신오쿠보에 실제로 가보니 평일이었는데도 붐비는 사람들로 K-문화, K-푸드의 인기와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동선상 두쫀쿠를 파는 카페 ’마카프레소‘에 먼저 들렀는데, 한국인은 물론이고 일본인들도 두쫀쿠를 사기 위해 긴 줄에 서 있었다. 이 카페는 원래 필링이 두껍게 들어간 뚱뚱한 마카롱 ‘뚱카롱’이 유명한 곳으로, 한국에선 인기가 제법 시들해졌는데도 일본인들은 두쫀쿠와 함께 뚱카롱도 꽤 구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도 괜히 마카롱이 먹고 싶어져 딸기맛 뚱카롱 하나와 두쫀쿠 하나를 주문했다.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은 한국인 알바생으로 보였는데, 일본인으로 보이는 고객에겐 일본어로, 한국인으로 보이는 고객에겐 한국어로 응대를 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서울이나 도쿄의 거리에서 혼자 동북아시아계 사람들의 국적을 짐작해 보곤 하는데, 같은 동양인임에도 화장법, 스타일 같은 것들로 이렇게 국적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두쫀쿠를 사들고 드디어 오늘의 진짜 목적지인 옥동식으로. 운이 좋게도 우린 웨이팅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두쫀쿠를 사는 데 생각보다 대기시간이 있었기에, 기다리지 않고 입장하는 그 순간이 더욱 기뻤다. 가게에 들어가면 키오스크로 먼저 주문부터 하게 되어 있는데, 첫 화면에 사이드메뉴를 선택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3개의 사이드메뉴 돼지덮밥, 새우동그랑땡, 항정살 무침을 모두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사이드 3개 세트’와 곰탕 2개를 주문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다들 돼지곰탕은 무조건 주문할 것이고, 첫 화면에 사이드메뉴가 나오게끔 하여 주문을 안 할 수 없게 하는 그런 상술인 것 같은데, 다음에도 나는 그 상술에 기꺼이 넘어가줄 정도로 사이드메뉴의 맛은 만족스러웠다. (다만 한국에서는 사이드 메뉴가 김치만두 단일 메뉴로, 도쿄와는 다르다.)


돼지곰탕, 옥동식


주문하고 얼마 기다리지 않아 금방 곰탕이 나왔다. 곰탕과 함께 깍두기와 옥동식의 특제 소스라는 ‘고추지’가 나왔는데, 이 고추지는 얼핏 보기에 그냥 고추장이나 쌈장이랑 비슷한 것 같이 보이지만 고기에 살짝 올려 먹으면 꼭 좀 전에 밭에서 따온 풋고추를 씹은 것 같은 알싸하고 시원한 고추의 맛이 난다. 이 고추지가 옥동식의 킥이었다. 곰탕과 고기는 돼지 냄새 없이 맑고 깨끗한, 뜨끈한데 시원한 맛이었다. J와 나는 신이 나서 “와, 너무 좋다.”, “아, 너무 맛있어.” 와 같은 1차원적 감탄을 연신 내뱉으며 식사를 했다. 간만에 느끼는 한국의 맛에, 간만에 젓가락이 아닌 숟가락으로 퍽퍽 퍼먹는 밥, 얼마든지 리필 가능한 김치와 고추지. 먹는 것으로 그렇게 큰 행복을 느끼는 타입은 아닌데, 과연 옥동식에서의 식사는 정말 행복했다. 매장 내 테이블이 전부 바 형태로, 직원 분들이 계속 내 앞을 지나가시기 때문에 따로 부르지 않아도 자연스레 반찬 리필이나 물 같은 것을 요청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아마 그걸 한국어로 편하게 할 수 있어 더 좋았던 것 같다.


행복한 식사를 마치고, 날씨가 좋아 우린 신주쿠 교엔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두쫀쿠를 먹기로 했다. 지난 정기권 산책 때 구매한 신주쿠 교엔 연간 패스를 알뜰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번엔 그때 가보지 못했던 일본식 정원 쪽으로 걷고, 신주쿠 교엔 내부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해를 등지고 앉아 온 등으로 햇빛을 맞으며 디저트와 커피타임을 즐겼다. 하늘, 잔디, 나무들을 멍하니 보며 J와 시간을 보냈다.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잔디가 좀 더 푸릇푸릇해진 것 같은 걸 보면, 신주쿠 교엔에도 봄이 훌쩍 건너오고 있었다.



다시 신오쿠보까지 걸어와 한인 마트에서 김치와 고추, 깻잎 같은 것들을 사며 우리의 긴 산책이 끝났다. 요즘 김치는 보통 일본 마트에서도 팔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매콤한 진또배기 김치는 신오쿠보에 가야만 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어쩔 수 없이 신오쿠보에 계속 가야만 할 것.


아마 그때마다 옥동식도 함께 가는 코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돼지곰탕이 좋아하는 음식 메뉴가 될지도.

도쿄에서 한식이 생각날 때, 또는 웨이팅 없이 흑백요리사 맛집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신오쿠보를 찾아가 보기를.

옥동식에서 배를 채우고 나면, 신주쿠 교엔을 산책하며 행복을 음미하기를. 손에 커피와 두쫀쿠가 쥐어져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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