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정말 도쿄 맞아?

7 - 도쿄에서 가장 국제적인 곳, 시부야구 히로오

by 히요쿄

2026. 03. 16.


일본에서의 생활을 좀 더 다채롭게 하기를 기대하며, 언제든지 차를 빌려 몰고 나갈 수 있게 준비하고자 한국 면허를 일본 면허로 바꾸기(切り替え,키리카에)로 했다. 이 키리카에를 하기 위한 인터넷 예약이 그날을 기점으로 두 달치만 열리며, 외국인을 위해 비워두는 자리가 한정되어 있어 예약일을 잡기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나는 1월 말 그날로부터 두 달 뒤인 3월 30일에 겨우 빈자리를 예약했고, 면허 키리카에는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하지만 키리카에를 하기 전에 영사관에서 서류를 발급받아야 했다.


그리하여 외출의 시작은 영사관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산책은 전혀 예상치도 알지도 못했던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일본에서의 행정처리란 대체로 아주 느리고, 아주 얄짤없기 때문에(중요한 일이라면 대개 그렇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에서도, 작은 오탈자 하나도 그 자리에서 수정할 여지없이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 행정처리를 할 일이 생기면 시간을 넉넉히 비워두어야 하고, 필요한 서류도 미리 꼼꼼히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그 많은 시간을 들여 다시 처리하러 와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면허 키리카에를 하러 가는 날도 아니고, 키리카에를 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 날이다. 각종 서류는 주일본대한민국영사관에서 발급받을 수 있기에, 도쿄의 영사관이 있는 아자부주반으로 향한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영사관에 갔다가 근처에 어디에 가 볼지 구글 맵을 둘러보았다. 아자부주반에서 롯폰기 쪽으로 가는 산책은 이미 여러 번 했기 때문에, 그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의 구역 중에 저장해 두었던 아리스가와노미야 기념공원(有栖川宮記念公園)이 눈에 들어온다. 에비스와도, 지난번에 우연히 방문했는데 좋았던 야마타네 미술관과도 가까워 이후의 여정은 공원을 둘러보고 난 후의 기분이 내키는 대로 정하기로 한다.


먼저 해야 할 일을 하러 도쿄 내의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영사부(이하 영사관)에 도착했다. 간만에 태극기와 한글을 봐서 반가웠던 마음도 잠시, 영사관 직원의 매우 불친절한 태도에 기분이 언짢아지고 말았다.


일본에서 지낸 지도 6개월 차에 접어들며, 어느새 일본의 극친절서비스에 나는 익숙해져 있었다. 우선 일본에서는 주문했던 음식을 서브할 때, 행정 기관에서 호출된 고객을 마주할 때와 같은 상황에 관용적으로 ‘お待たせしました。’ 라고 직원이 말한다. 의미는 ’많이 기다리셨죠?‘,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 시간이 짧았더라도 고객에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보편화된 것이다.


간단히는 이 문장에서, 이외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것, 고도화된 경어를 사용하는 것, 기본적으로 서비스를 하는 순간은 하이톤의 목소리와 미소를 장착하는 것 등 일본에서 생활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에서 일본의 친절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 물론 비교적 서비스가 러프하고 친근한 한국에서는 융통성 있게 대응해 주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일본에서는 서비스는 친절하지만 사소한 문의에도 융통성 없이 FM으로 대응하여 비효율적이고 답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간에 이곳에서 생활해 보니 적어도 상호 간에 기분은 상하지 않는 친절한 서비스가 더 나에게 잘 맞는다고 느끼고 있다. 효율과 빨리빨리가 대수는 아니니까.


아무튼, 다시 영사관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나를 응대한 한국인 직원은 벌건 얼굴에 마른세수를 계속하고 있던 것으로 보아 체력적으로 피곤한 것 같았다. 그건 그럴 수 있는데, 내 번호가 호출되어 그의 앞으로 가자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의 요구를 그저 기다리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문의가 있는 쪽은 내 쪽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면허 키리카에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하러 왔다고 이야기하니, 역시나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서류 견본을 내밀며 그저 작성해 오라고 한다. 견본은 스테이플러로 찍힌 여러 장의 종이였으며, 다시말해 간단히 작성할 수 있는 서류는 아니었다. 나는 서류발급을 하러 오기 전부터 다시 올 일을 만들지 않고자 여러 번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검토하며 어떤 부분에 주의하며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지 숙지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머릿속의 기억들을 꺼내어 정신을 차리고 서류를 하나씩 써나갔다. 물론 견본 서류에 어떻게 작성하면 되는지 간단히 나와있기는 하다만, 아무리 그래도 놓치기 쉽거나 주의를 요하는 부분들은 직원이 한 번 짚어주었으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서류를 제출하자 일부 서류를 보완해서 다시 제출하라는 직원. 간단한 내용이라 직원과 마주한 그 자리에서 바로 써야 할지, 다시 서류를 준비하던 테이블에 가서 써야 할지 나는 확신이 들지 않았는데, 왠지 빨리 해서 내야 싫은 소리를 안 들을 것 같은 무의식 속 마음에 그 자리에서 급히 수정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 직원은, “저기 가서 쓰세요.” 또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한 마디를 건넨다. 아니, 그러면 수정해서 제출하라고 할 때 저쪽에 가서 쓰고 오라고 하면 될 것을. ‘나한테 말 시키지 마.’ ‘나한테 물어보지 마.’라고 쓰여있는 듯한 얼굴을 하고 대충 다시 제출하라고 하니 고객으로서는 제대로 물은 뒤에 행동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필요한 서류들은 문제없이 발급했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과 그 이외에도 전반적인 서비스가 불편했기 때문에 기분이 언짢았다. 그래도 외국에서 열심히 생활해 보겠다는 자국민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할 수 있지 않았나. 얼른 공원으로 가서 자연을 보며 마음을 녹여야겠거니 생각하며 영사관을 나서 걸음을 시작한다.


도쿄 아자부주반 근처의 거리들


몇 걸음 내딛지도 않았는데 기분은 금세 좋아졌다. 도쿄의 거리란 마법을 부리는 것처럼 그냥 걷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것은 파란 하늘과 푸른 나무들, 정돈된 거리,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평화와 여유가 부리는 마법일 테다. 나는 놀랍도록 금방 마음이 가볍고 상쾌해졌다. 사실 이런 것들이 도쿄가 부러운 이유이자 도쿄에 살고 싶었던 이유이다.


공원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대사관이 보인다. 우리나라 대사관이 이곳에 있듯 주로 해외의 대사관이 모여있는 곳인 것 같다. 그리고 그래서 그런지, 걸어가는 길에는 국제학교도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대사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이곳에 많이 거주하거나 일을 하는 만큼 그들이 이룬 가정, 그들의 자녀들 또한 이곳에 많이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 아리스가와노미야 기념공원에 도착했는데,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큰 건물이 있어 보니 그곳은 바로 도쿄도립중앙도서관이었다. 그저 공원이 있는 줄 알고 찾아온 곳에 도립 중앙도서관이라니! 안 들어가 볼 수가 없잖아.


도서관은 리모델링 중으로 일부 구역만 둘러볼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여기 얼마나 좋은 자료들이 많이 있는지 알기에 충분했다. 이 도서관은 일반적인 도서관이 아닌 ‘도민의 조사연구를 지원하는 도서관’으로, 일반 도서관에서 보기 어려운 분야의 책들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외국 도서도 다량 소장하고 있어 한국 도서도 꽤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한국 도서를 소장한 곳은 리모델링으로 들어가 볼 수 없어 한국 도서를 읽어보진 못하고, 대신 1층의 도쿄의 정보를 소개하는 책장 코너에 한국어 자료가 있어 간단히 읽어보았다. 한국에서 이런 책을 봤다면 절대 열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디자인의 오래된 책(이라기보다는 책자에 가까운..)이지만, 도쿄에 살며 이 도시에 대해 매번 놀라며 감탄하기 때문에 대체 이 도시는 어떻게 발전하며 만들어져 온 것인지 궁금하여 집어 들었다. 너무 재미있어 대출을 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해가 지기 전 공원도 둘러보려면 한정된 시간 안에 읽어야 했기에 도쿄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첫 부분과 ‘동경(東京)의 녹화(緑化)‘ 부분을 집중해서 읽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진 지명의 도쿄 지역들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도쿄가 녹지를 어떻게 보존해 왔는지 알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다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싶은 책이다.


아리스가와노미야 기념공원


도서관에서 기획한 작고 귀여운 펭귄 전시도 보고 나와서는 진짜 목적지였던 아리스가와노미야 기념공원의 안쪽으로 걷는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공원 안쪽으로 걸어가는 길은 마치 조성되지 않은 자연의 숲처럼 느껴졌다. 아주 오래된 키 큰 나무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본격적인 봄이 되면 얼마나 무성해지고 풍성해져 더 아름다울지. 공원 내부에는 작은 연못과 그 안을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오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종종종 뛰어다니거나 벤치에 앉아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동네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인데, 너네들은 그걸 알까?


대사, 영사가 모여있는 곳이라 그런지 역시나 국제가족들이 많이 보인다. 공원을 나서 라테를 마시러 카페에 갔는데, 고객 중엔 서구적인 외모를 한 사람들이 반 이상이며, 그들은 자연스레 주문도 영어로 한다. 여긴 관광지도 아닌데. 일본에서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영어가 통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테라스 자리에 앉아 따뜻한 라테를 마시며 기분 좋은 멍 때리기를 한 뒤 다시 나가 그냥 걷다 보니, ‘Real Estate for Expats(주재원을 위한 부동산)'이라는 문구의 간판을 단 부동산이 보인다. 그리고 영어로 대화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긴 대사와 영사뿐만 아니라 주재원을 둔 여러 해외 기업들도 위치한 지역이었던 것이다. 국제학교와 국제가족들, 영어로 대화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동네에서는 부유한 느낌이 물씬 나기도 했다. 이 동네의 이름이 바로 ‘히로오(広尾)‘. 다시 둘러보니 유독 도쿄의 다른 동네에서보다 영어로 된 간판이 많이 보인다. 공원 앞에 있던 식자재 마트도 세계 각국의 식료품을 파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도쿄에서 가장 일본스럽지 않은, 국제적인 곳이 아닐까 생각했다.


멋진 동네를 산책하며 왠지 여긴 관광객이 놀러 오는 곳이 아닌 진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라는 느낌이 들어 재미있었다. 에비스에서 덴샤를 타기로 하고 에비스까지 걸어가는 것으로 오늘의 산책은 마무리되었다. 덴샤를 탈 때쯤엔 이미 사위가 캄캄해져 있었다.


오늘도 정기권을 들고 나선 외출에서 여기가 정말 도쿄가 맞나 싶었던, 도쿄의 몰랐던 또 하나의 새로운 곳을 발견하고 탐구했다. 별 계획 없는 산책으로부터.

모든 재미있는 일은 그렇게 계획하지 않은 어떤 것에서 비롯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계획하지 않았던 것을 그냥 해 보기를. 그게 그저 사소한 산책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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