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즐겨 듣던 노래 제목이 떠올랐다.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노랫말 속의 '너'는 연인을 뜻하지만 오늘의 글에서는 연인보다 더 소중한 한 사람. 내 아이를 떠올리며 음악과 함께 글문을 열어본다.
주말에는 하루의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다. 속된 말로 짤 없이 육아가 우선이다. 더욱이 오늘처럼 날이 화창한 날에는 집에만 있을 수 없다. 어제 처가 모임으로 하루 종일 밖에 있었던 탓에 오늘은 집에서 쉴까 했지만 온몸을 감싸며 내리쬐는 오후 햇살이 마치 '진심이야?'라고 묻는 기분이었다. 아니, 묻는다는 표현보다는 좀 더 강렬한 느낌. 그러니까, '날이 이렇게 좋은데 아이를 집구석에서 TV만 보게 만들어야? 이 무책임한 아빠야?'라고 질타하는 느낌이랄까.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아이에게 근처 공원에 가서 놀다 오자고 하니 좋다며 지금 당장 가잔다. 아무리 TV가 재밌어도 역시 아이는 밖에서 뛰어노는 게 더 좋은가보다. 얼른 가보자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 우연히 형네 차를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 통화를 하다 급 성사된 나들이. 근처 공원이 아닌 파주 출판단지로 급 선회했다.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책이 있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서 카페가 있는 공간에서 내 아이와 조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생인 첫째, 둘째 조카들은 알아서 자리 잡고 책을 읽거나 막둥이들과 함께 놀아주며 신나 한다. 나와 형이 아이들을 보는 동안 아내와 형수는 카페에서 티타임을 즐긴다. 한참 놀다가 살짝 출출해질 무렵 아이들은 아이스크림과 빵을 먹고 그 사이 나와 형도 커피 한 잔 하며 함께 쉼을 누린다. 크흐, 이 환상의 발란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별 것 아니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 상황이 매우 조화롭다고 여겨질 때 마음속에 일어나는 혼자만의 감탄. 오늘이 딱 그런 하루였다.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 댁에 들러 저녁식사를 했다. 아이는 할아버지랑 신나게 놀고, 아내는 어머니랑 가볍게 와인 한 잔, 정말 딱 한 잔 하고 헤어진 저녁마저 내적인 감탄이 일어났다.
이런 날엔 늘 내뱉는 말이 있다. '행복이 뭐 별 건가!'라는. 아마 지난 글들을 뒤적여 보면 분명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어떤 날엔 행복이 뭐 별 건가 했다가 또 다른 날엔 세상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그랬다. 소소한 감탄이 쌓이는 것, 그것이 행복 아닐까 싶은 하루였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육아를 하다 보면 분명 사랑은 하지만 부딪히는 내면의 나와의 싸움도 존재한다. 특히 노매드의 삶을 사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일과 육아, 개인의 삶이 구분되어 있지 않은 채 흘러가는 하루는 때론 그로 인해 의지가 불타 오르고 또 때로는 그로 인해 하루가 뒤죽박죽이 된다.
잘 풀릴 때야 문제가 없지만 이래저래 꼬여버린 하루의 끝자락엔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러면서 마치 하루를 다 까먹어버린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비록 그럴지라도 잠자리에 들어 이미 잠들어 있는 아이의 세상 평온한 얼굴을 보며 버리를 쓰다듬고 볼에 입을 맞추고 나면 그날의 찌뿌둥한 마음이 마치 욕조 위에 가득한 비누 거품을 샤워기로 쏴아 쓸려 내리듯 시원하게 사라진다. 그렇게 딱 1분. 그거면 충분하다. 23시간 59분 동안 불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해도 딱 1분이면 잊힌다.
아이는 그런 존재다. 나의 하루가 어땠든지, 그 하루를 정화시켜 주는 힘이 있다. 지친 마음을 재부팅시켜준다. 어른이 되면서 인생의 행복을 위해 세웠던 10가지, 20가지 조건들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로 충분하다.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원곡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아픔은 사라지고
나의 마음이 포근해지네.
서태지와 아이들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할까. 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내가 나를 찌르던 아픔은 사라지고 마음이 그저 포근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육아는 정말 아이가 나를 기르는 게 더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