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명 아이의 취향을 찾아라

by 알레

어느새 부쩍 커버린 듯한 아이에게 전보다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이 아이는 어떤 취향을 가진 아이일까?' 하는 것이다. 굳이 '재능'이라는 단어 보다 '취향'을 선택한 이유는 재능은 어쩐지 단정 지어 버리는 기분 때문이다. 재능이라 단정 지을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겨우 37개월에 무슨 재능을 논할까. 40대인 나조차 헷갈리는 게 재능인데.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기억나는 건 예체능 3 대장, 음악, 미술, 체육 중 음악과 체육에는 재능이 없지 않았는데 미술은 영 젬병이었다는 사실이다. 살면서 내 기억 속에 강렬하게 각인된 기억이 있다. 인생 첫 '포기'가 미술이었다는 것. 설마 포기한 게 미술뿐이겠냐만은 중학생 때 '나 이거 포기!'라고 자신에게 선언했기에 늘 미술은 내 인생 처음으로 포기의 경험을 안겨준 과목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탓에 사는 내내 미적 감각에 해당되는 모든 걸 못하는 사람으로 나를 정의했다. 참 어처구니없게도. 미술 과목이 그 모든 걸 아우르는 게 아닌데도.


취향이란 단어가 좋은 건 방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방향을 담고 있다는 건 다양한 열린 가능성을 가지고 해석할 수 있다는 소리다. 가령 내 아이는 남자아이 치고 또래 아이들보다 말이 빨랐고 상황에 따른 표현이 적확한 편이었다. 그렇다고 아이의 언어능력을 속단할 수는 없다. 그저 속도의 차이일 뿐일 테니. 다만 언어와 관련된 활동을 상대적으로 좋아할 것 같다는 가능성을 열어 둔 상태로 아이를 지켜볼 수는 있다.


아내는 운동신경이 좋은 나를 닮아 아이도 대근육 발달이 좋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이 또한 어린이집에 있는 또래 아이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워낙 날쌘돌이 같은 녀석이 있기에. 그렇다고 운동신경이 영 없는 건 아니고 단지 아이의 취향은 큰 움직임보다는 작은 움직임을 더 좋아하는 듯 보일 뿐이다.


언어감각도 운동신경도 아주 약간의 차이일 뿐이기에 이걸 재능이라 속단하는 건 확증 편향만 키우는 일인 것 같고, 그저 그와 관련된 활동을 하나씩 더해주기 위한 판단 근거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내심 바람이 있던 건 내 아이는 미적 감각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 시절 나보다는 더.


마침 지인 중에 미술 교육을 하시는 분이 있어 아이의 미적 감각을 길러 주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 번 만나라도 볼까 생각하며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우선 집 근처에 있는 미술놀이에 보내 보기로 했다. 이게 뭐라고 괜히 떨렸다. '가서 싫다고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슬몃 들었다. 내 안에 스스로 단정 짓고 살았던 '미술에 대한 재정 없음'의 오류가 생각보다 깊게 무의식에 박혀있나 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미술'과 관련된 것에 괜한 우려를 나타내는 걸 보면.


다행히 아이는 무척 재밌어했다. 투명 유리창에 물감으로 마음껏 낙서도 하고 손바닥으로 문지르기도 하며 처음 만난 선생님과 교감하는 모습에 나의 생각들이 쓸데없는 기우였음을 느꼈다. 미술 가운을 입고 들어가 마음껏 놀 수 있었던 덕분에 옷이 더럽혀질 걱정 없이 아이도 꽤나 집중한 모습이었다. 그 와중에 손은 여러 번 씻겨달라고 하는 깔끔 쟁이의 면모를 보이긴 했지만.


요즘처럼 확실한 재능이 회사라는 곳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재능이라는 영역에 늘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뒤늦게 나의 재능을 찾기 위한 고민을 많이 했기에 자연스레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재능에 대한 자기 인정이 어려웠던 건 재능은 대체로 비교우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준 이상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기준점은 언제나 그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래서 늘 나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오히려 취향의 깊어지다 보면 재능이라 불릴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것처럼. 그리고 누군가는 자기의 취향이 담긴 다이어리를 꾸미는 것처럼.


내 아이가 살아갈 시대는 더욱 각자의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일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 자산을 쌓아 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다행히 미술 놀이가 재밌다고 하니 다음번에 한 번 더 데리고 가봐야겠다. 꾸준히 재밌어하면 혹시 그 안에서 어떤 재능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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