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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 May 11. 2024

아이는 내달리고 아빠는 후달리고

빗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기아기 잘도 잔다’라는 한 소절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문화센터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빗소리 ASMR를 들으며 아이는 금방 잠이 들었다. 이번주 유난히 일정이 많아 아이도 평소와 다르게 피로감이 몰린 듯하다. 주말, 유일한 평화가 찾아오는 순간은 아이가 잠들 때다. 나머지 시간은 그저 평강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아, 혹시 이래서 'Rest In Peace'라는 말을 쓰는 거였나?


'주말 육아하는 모든 아빠 엄마들이여! 부디 아이가 낮잠 자지 않는 나머지 시간에 평강이 있기를!' 뭐 이런 느낌. 하하.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의 에너지는 넘쳐난다. 낮잠을 자 주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이후엔 엔진이 고장 난 트럭처럼, 폭주 기관차처럼 아이의 시간은 내달린다. 나의 체력은 점점 후달린다. 겨우 한두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왜 이리 시달린 기분인지.


'아빠가 저전력 모드로 살아가는 중이라 미안하다 아들아.'


주말에 아이랑 시간을 보내는 건 항상 급박하게 주어진 숙제 같다. 흠, 숙제 보단 '미션' 또는 '퀘스트'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 듯하다. 결국 완수해야만 하는 단계. 토요일에 만족스럽게 완수하지 못해 혹여라도 자책할까 봐 신은 우리에게 일요일이라는 하루를 더 주셨나 보다. 이번엔 만족스럽게 잘해 보라고.


'아니, 그럼 주말마다 비를 내리지 마시던가요!'


생각해 보니 지난주도 날이 흐리고 비가 왔던 것 같은데 하필 오늘도 비라니. 비라도 오지 않았으면 낮 동안 산책이라도 갔을 텐데. 안 그래도 어제부터 아이는 산책을 가자고 하는 걸, 어제는 오전에 어린이집 운동회가 있어서 하원 후에 놀이터에서 노는 걸로 퉁치고 넘겼다. 근데 하필 오늘 아침부터 비바람이 불 줄이야. 괜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일기예보가 잘 맞는 듯해서 좀 야속한 마음이다. 기상청은 잘못이 없지만.


'이제 아이와의 주말을 보내기 위해 놀이를 만들어야 하나?' '육아 아빠들과 놀이 연구회라도 만들어야 하나?' 참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래도 자투리 시간에 글이라도 써서 다행이다. 아무리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고 해도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이가 자라는 건 금방이라고 하지만, 그래서 지금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고 하지만 적어도 리프레쉬하는 시간 정도는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차오르는 답답함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어 타이머를 돌리기 시작하니까.


어쨌든 오늘도 글 한 편 쓰는 시간 덕분에 다시 평온을 찾았다. 책도 읽고 싶고, 콘텐츠도 만들고 싶지만, 뭐 이만하면 충분하다. 주말은, 그럼에도 아이가 우선이니까.


지금은 밤 10시. 내 아이는 아직도 대낮 같다. 잠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아이와 놀아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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