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 비가 내려 적잖이 하루가 고되었던 육아 아빠의 마음을 글에 담아 아주 짧게 신에게 한 말씀 올렸다. '주말마다 비를 내리지 말아 달라고요'라고. 그리고 오늘. 신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화창한 일요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 선선한 바람도 아주 적당한 오후!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기다리고 기다리던 산책길에 나섰다. 가까운 공원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아이는 준비물이 빠진 게 없는지 하나씩 확인한다.
"아빠, 비눗방울 챙겼어?"
"(꽃에) 물 주는 거랑 물 담는 거는?"
"공도 챙겼어? 트니트니 장난감도(문화센터에서 나눠준 캐치볼 세트다)?"
"상어 돗자리도 챙겼지?"
"네네, 다 챙겼습니다 아드님."
언제 이렇게 컸는지. 혹여 뭐 하나라도 빠뜨렸을까 싶어 꼼꼼히 챙기는 모습에 아내와 나는 그저 웃는다. '흠, 아무래도 이건 내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아내의 성경이거나 그보다 더 확실한 건 아버지이긴 하다. 훗날 더 자라면 여행 갈 때마다 아이가 하나씩 빠진 게 없는지 챙기는 모습을 슬몃 기대해 본다.
'부디 너라도 미리미리 챙기는 사람이 되어주려무나.'
아무튼. 그랬는데. 꼼꼼하게 챙길 땐 언제고 집에서 공원까지 가는 10분에 불과 주차장을 코앞에 두고 잠드는 건 무슨 상황인지! 어째 불안 불안했는데, 그래도 집에서 공원까지 금방이라 설마 잠들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주차장 낮잠 시간을 가져야만 했다.
아버지는 먼저 산책하러 가시고, 피곤했는지 아내도 잠깐 눈을 붙였다. 아이는 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두면 해가 질 것 같다. 산책을 가셨던 아버지도 돌아오셨다. 결국 자는 아이를 깨워 밖으로 나갔다.
공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앉아 저마다의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캠핑용 의자를 깔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돗자리에 누워 잠들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 근처에서 음식을 사 와 먹는 사람, 공을 차며 뛰어노는 아이들, 그 가운데 예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커플,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는 사람들 등. 모두 다 어제의 한을 풀기 위해 작정하고 나온 사람처럼 보이는 건 아무래도 내가 그런 기분이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이라 잠깐 뜨겁긴 했지만 이내 건물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나니 부는 바람이 오히려 서늘함을 더해 가지고 나오는 셔츠를 입었다.
우리도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는 공놀이를 하자며 잔디밭으로 간다. 전에 놀아본 기억이 있어서인지 아이는 잘도 뛰어다닌다. 공을 차며 노는 것도 잠시, 이번엔 비행기를 가지고 놀자고 한다. '아빠는 뭐든 좋지!' 비행기도 한두 번 날리더니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이번엔 간식을 먹겠다고 신발을 벗고 앉는다. 손을 닦고 간식을 먹으며 핫도그를 사달란다. 이 또한 지난번에 아내랑 셋이 산책을 나와 돗자리를 깔고 했던 기억의 재생이었다. 핫도그를 사 와서 함께 먹고 나니 대체 산책은 언제 하려나 싶어서 그냥 자리를 정리했다.
아이는 할아버지랑 함께 잔디밭을 가로질러 제 가고 싶은 대로 가고, 나와 아내는 자리를 정리해 유모차를 끌고 천천히 걸어갔다.
공원이 워낙 넓어서 작정하고 도는 게 아니면 한쪽에서만 시간을 보내도 충분하다. 아이는 이쪽에서 돌멩이를 가지고 놀다가 또 저쪽에선 식물들을 만지며 놀고. 이쪽으로 걷다가 다시 돌아 저쪽으로 걷고. 그러다 또 뒤돌아 오던 길로 걷기를 반복. 비눗방울 총으로 꼬셔서 겨우 무한 반복의 구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엔 물고기를 보며 또 한참. 결국 아이를 업고 걸었다. 중간중간 경로를 이탈할 위기가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잘 구슬리고 달래며 산책을 마쳤다. 뭐 사실상 오늘의 산책은 내내 아이를 업고 걸어야 했던 나의 16kg 군장 행군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화창했던 날씨 덕분에 아이랑 함께 뛰어놀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다. 아버지도 함께라 더 좋았던 시간. 공원에서의 여가를 마친 뒤엔 어머니를 만나 다 함께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늘 가던 코스대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헤어졌다.
문득 오늘 교회에서 사모님께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후에 사모님께서 아이들을 돌봐 주시는데, 오늘 내 아이에게 가족에 대해 질문을 하셨다고 했다. 그랬더니 보통의 아이들의 답은 '아빠, 엄마, 나' 이렇게 한 집에 사는 사람을 답하는데 내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빠, 큰엄마, 누나들, 엄마, 아빠, 나' 모두를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내심 고마웠다. 부모님이나 형네 식구나 모두 따로 살고 있지만 자주 만나다 보니 아이에게 가족의 개념은 모두 함께라는 것이 좋았다. 아이가 자라면서 사촌지간에 더 돈독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이의 기억 속에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산책과 할머니 할아버지와 먹었던 저녁식사 코스가 행복한 순간으로 남아있기를 또한 바라본다.
부디 다음 주말에는 토요일, 일요일 모두 비가 내리지 말기를! 이 또한 너무나 진심으로 바라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