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팔찌를 좋아하는 아이

by 알레

어릴 적 살던 아파트 뒤편엔 넓은 잔디밭이 있었고 토끼풀이 잔뜩 퍼져있었다. 친구들과 수시로 그곳에 가서 네 잎 클로버를 찾겠다고 온종일 땅을 짚고 기어 다녔다. 그러다 토끼풀 꽃이 올라오면 항상 꽃 팔지와 화관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지만 지금도 생생한 이유는 내 아이가 꽃팔찌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아이가 먼저 그것을 찾았던 건 아니다. 동네 놀이터에서 놀 때 한 번 만들어 줬던 것이 아이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았었나 보다. 그다음부터는 제가 먼저 만들어 달라고 한다. 오늘도 그랬다. 교회 예배 후 모두 함께 간 공원에서 둘이 산책을 하다 아주 실한 토끼풀 꽃을 보자마자 소매를 걷으며, "아빠, 팔찌 만들어줘"라고 했다. '요 감성적인 녀석.'


유난히 둥글고 줄기도 기다란 녀석 두 송이를 꺾어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줄기에 구멍을 냈다. 그다음 하나를 교차로 엮어 아이의 가냘픈 팔목에 둘러 끊어지지 않게 잘 묶어주면 팔찌 완성! 산책하는 내내 혹여 팔찌가 상할까 봐 한쪽 소매를 절대 내리지 않는 걸 보며 어찌나 귀엽던지. 참 소소하지만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가만 보면 아이의 모습이 이해가 되는 듯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다. 내 기억 속에 어린 시절에 토끼풀을 가지고 놀던 것을 제외하면 꽃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다. 물론 기억력이 좋지는 않은 편이긴 하다. 그럼에도 꽃보다는 곤충들을 괴롭히며 놀던 기억은 또렷한데. 내 기억 속에는 없는 나의 면모가 혹 부모님이나 그 시절 나를 자주 보았던 어른들의 기억 속에는 있으려나?


어쨌거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지금 내 아이의 모습이 신기하지만 반면 불과 3년 전 퇴사한 직장이 원예회사였고 그 회사에서 5년이나 근무했던걸 떠올리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회사에 근무할 때 식물을 무척 좋아했다. 분갈이도 좋아했고, 화훼단지에 가서 둘러보는 것도 좋아했다. 또 거래처이긴 했지만 농장에 가면 이런저런 식물들을 관찰하고 질문하는 걸 즐겼다.


이뿐만 아니라 해외 박람회가 열리는 때에 맞춰 출장을 가면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양질의 꽃나무들을 보면서 감동했던 기억도 난다. '다 가져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것들을 우리 집 마당에 심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텐데!'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아, 물론 나는 아파트에 살았으니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먼저였을 테니만. 아무튼.


이런저런 정보를 종합해 볼 때 내 아이가 식물을 좋아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관엽식물을 아내는 꽃을 좋아하니 우리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뭐 더 말할 게 없다.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작고 연약한 것을 소중히 대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믿는다. 물론,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팔찌를 만들기 위해 꽃을 꺾는 행위는 모순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가 식물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에 감사하다.


'꽃팔찌'는 나와 아이에겐 시공간을 뛰어넘는 문과 같다고 믿는다. 나에겐 어린 시절 뒷동산이 떠오른다면 과연 내 아들에겐 어떤 날 어떤 곳이 떠오를까? 한참 지나 물어볼 날이 있길 바라본다. 혹시 또 모를 일이다. 내 아이도 훗날 제 아이에게 토기풀을 엮어주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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