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이가 팬티를 입기 시작했다!

by 알레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일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기까지 수면아래의 발놀림을 멈춘 적이 없기에 가능하다는 걸 우리는 쉽게 망각한다.'




요즘 아이는 배변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 벌써 40개월이 넘은 아이는 또래 친구들에 비하면 매우 늦게 시작했다. 1월생이기에 어린이집 친구들보다 말도 빨랐고 걸음도 빨랐던 터라 친구 엄마들은 모두 이 아이가 기저귀를 언제 떼는가 주의 깊게 바라볼 정도였다. 아무래도 일종의 신호탄 같은 역할이었으니.


결과는 내 아이가 가장 늦었다. 같은 해 12월에 태어난 친구를 제외하고는 모든 아이들이 기저귀를 뗐다. 이러다 때를 놓칠까 싶어 주면 육아 선배들에게 걱정하는 마음으로 물어보면 모두 하나같이 이렇게 답했다. "그냥 내버려두어요. 스트레스받으면 더 안 해. 때 되면 지가 알아서 해요. 오히려 늦게 떼는 아이들은 실수도 거의 안 해요. 저희 아이는 5세 때 유치원 가서 뗐어요."


신기할 정도로 아이는 갑자기 팬티를 입기 시작했다. 바로 이틀 전 상반기 부모 상담이 있어서 선생님을 만나고 왔는데 그날의 화두는 배변훈련이었다. 근데 바로 그날 하원 후부터 아이는 팬티를 입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상담 내용을 밖에서 몰래 듣고 있었던 건가 싶을 정도로.


지금 아이는 적응 중이다. 어린이집에서도 두 번 실수를 했고, 하원길에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또 한 번 실수를 했지만 아이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잘 다독여 주고 있다. 실수의 과정 없이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기에. 오늘은 공공화장실 소변기에서 쉬를 해보는 경험을 했다. 생각보다 아이용 소변기가 없어서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아이는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모든 상황이 너무 갑작스럽게 진행돼버려 나와 아내는 조금 어리둥절하다. 갑자기 아이 속옷 빨래가 훌쩍 늘어나 재고 현황을 잘 파악해 둬야 한다. 외출할 땐 여벌옷을 꼭 챙겨 나간다. 배변 훈련은 아이만 적응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의 실수가 수치심의 경험으로 남지 않도록 옆에서 기민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 역시 아빠 엄마가 적응해야 할 부분이다. 심지어 오늘은 혼자 그런 생각도 했다. '주로 다니는 길에 있는 화장실 위치와 아이용 변기 유무를 미리 파악해 놓아야 하려나?'


어쩌면 아이는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르긴 모르지만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어린이 집에선 이미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민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구분 지어 가르치고 있다고 하셨다. 다른 친구들이 모두 팬티를 입고 있는 상황에 혼자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는 아이는 혼자 내심 어떤 부담감을 갖고 있던 건 아닐까? 친구들이 철 없이 자기들 팬티 자랑을 할 때 아이는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건 아닐까?


혹여라도 그랬을까 괜한 걱정이 올라오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뭐, 내 아이라면 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집에서 줄곧 기저귀가 편해서 입는 거라도 얘기했던 녀석이니까.


아이의 성장을 보며 오늘도 나를 돌아본다. 지나친 자기 계발 중독자의 결론 같지만, 아무렴 어떤가. 육아는 최고의 자기 계발이라 믿는 아빠이기에 생각회로가 자연스레 그리로 향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튼.


나는 나의 원하는 삶을 이루고 싶어 매일 고민한다. 어제의 글에서도 표현했든 지나온 삶의 순간을 꿰어 보배로 만들기 위해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작가로서 나를 브랜딩 하고 싶어 나를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 도달해 보지 못한 목표지점에 닿기 위해 계속 깃발을 옮겨 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가는 길에는 너무 많은 좌절과 낙심의 구덩이가 있다. 깊이도 제각각이라 빠지면 온몸에 진이 빠질 정도로 발버둥 쳐야 나올 수 있었던 적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과정을 통해 나도 깃발을 뽑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저만치 앞에 찍고 그 과정을 되풀이한다.


남들의 성공은 상대적으로 쉽게 또는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당연한 소리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성공한 사람치고 구덩이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좌절해보지 않은 사람도 없다. 그래서 그들의 웃음이 철부지 웃음과 농도가 다른 것이다.


나는 나의 삶도 그렇게 나아갈 거라 믿는다. 아이가 이만큼 자라 어느새 기저귀를 완전히 떼는 날을 목전에 두고 있듯 나의 날도 그런 날이 올 거라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힘 빠지지 말고 계속 걸음을 내디뎌 보자. 아이는 곧 기저귀를 뗄 것이고 아빠는 자기 의심을 벗어던지는 날이 곧 올 테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