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나 우린 가족

by 알레

어제 느지막이 집에 돌아온 피로 탓에 아이는 아침 내내 곤히 잠든 모양새다. 먼저 일어나 주섬 주섬 나갈 준비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요거트를 먹었다. 아내도 짙은 피로감에 도저히 일어나긴 힘들어 보여 오늘은 나 혼자 교회를 다녀와야 할 분위기였다. '이렇게 된 거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나가겠다'생각하며 혹 그라인더 소리에 아이가 깰까 봐 방 안의 동태를 살피려고 방문을 살짝 열었는데, 아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헉!'


정말 자리에 누워 무표정을 눈만 뜨고 멍하지 열리는 문쪽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인 듯 순간 놀랐다. 근데 사실 그 장면 보단 '앗! 괜히 열었다!'싶은 마음에 놀란 게 더 크다. 조용히 살피고 문을 닫으려 했는데, 어떤지 딱 걸린 느낌이랄까.


눈은 마주쳤고, 태연한 척 아이에게 다가가 아침 인사를 나눴다. 우리 집 아침인사는 마구 만지작 거리고 얼굴을 비비며 뽀뽀를 남발하는 것이다. 아이가 깔깔 거리며 '하지 마'라고 할 때까지. 아내와 나는 이 시간을 '누리는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아이가 클수록 점점 민첩해지고 있어서 이전만큼 곁을 내어주지 않으니 이 시간이 절호의 기회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만끽한다.


한참을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서도 아직 누워있는 아이와 아내 사이게 엎드려 물끄러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천사 같은 얼굴. 너무나 사랑스럽고 세상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면 순간의 행복지수는 최고조에 달한다. 아이가 숨을 내쉬는 순간 화들짝 놀라긴 하지만. 4살짜리 아이의 입에서도 입냄새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현실이다. 아무튼.


셋이 나란히 누워있는데 아이가 내 손을 손깍지를 끼며 잡는다. 그러더니 "엄마도 손 잡아"라고 한다. 아내가 손을 잡으니 아이가 이야기한다. "엄마, 아빠, 나, 우린 가족이야." 아내와 나는 순간 세상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서로 쳐다봤고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들, 이런 표현은 어떻게 알았어? 우린 가족이라니." 듣고도 믿기지 않는 표현에 다시 행복지수는 급 상승한다.


내 아이는 남자아이지만 주변에서 말을 잘한다는 소릴 자주 들었다. 어린이집 또래 친구들에 비해 더 빨리 말문을 열기도 했지만 발음도 꽤 정확한 편이었다. 선생님들도 대화가 되는 게 너무 재밌다고 했을 정도다. 그만큼 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른 의미전달까지 가능한 수준이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영재는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


아이는 가끔 기가 막힌 타이밍에 생각지도 못한 표현을 하곤 한다. 근데 그게 너무 적확해서 그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언어에 재능과 감각을 타고난 듯 보인다. 그래서 슬몃 두려워진다. 앞으로 이 아이는 탁월한 잔소리꾼이 될지도 모른다. 또는 어른들의 융통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너무 올바른 지적을 하여 겸연쩍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기대된다. 언제 또 어떤 말로 우리를 놀라게 할까. 어느 순간 훅 들어오듯 내뱉은 말로 어떤 감동을 선사할까. 이미 저물어 버린 하루에 여전히 아침의 그 한 마디와 그 장면이 떠오른다. 배시시 미소 짓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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