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그저 건강만 해다오

by 알레

아침부터 아이가 기력이 없다. 어젯밤, 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와 집에서 먹은 걸 다 게워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탓인지 어제저녁때도 평소만큼 먹지 않았는데 얼마 먹지 않은걸 다 게워 냈으니 얼마나 속이 허했을까. 물만 마셔도 토하는 게 영 심상치 않아 보여 서둘러 병원에 다녀왔다. 역시나, 장염 증상이었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아이가 짠해 보였나 보다. 평소 병원에 갈 때면 늘 활기차 보였던 아이가 축 처진 모습으로 아빠한테 안겨 들어와 내내 안겨있다 갔으니 오죽했을까.


아이가 기운이 없으니 나와 아내도 기분이 가라앉는다. 이번주에 뭘 잘 못 먹었을까. 괜히 의미 없는 추측만 오갈 뿐이다. '금요일에 하원하며 먹은 핫도그가 안 좋았던 걸까? 맛이 평소와 조금 달랐던 것 같은데.' '날이 더워지면서 아이스크림을 매일 먹어서 탈이난 걸까?' '아니면 괜히 팬티에 적응하느라 혹 스트레스를 받았나?' 마치 추리소설이라도 쓰는 것처럼 단서가 될 만한 조각 기억을 꺼내어 보지만 솔직히 원인을 알면 뭐 어쩌겠나. 이미 벌어진 일인데.


요 며칠 전부터 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땐 팬티를 입기 시작해 변을 잘 못 봐서 그러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직 4살짜리가 배가 어떻게 아픈지 그 느낌을 소상히 얘기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배가 아프다면서도 아이스크림도 먹고 젤리도 먹길래 꾀를 부리나 싶었는데, 괜스레 미안해진다. 결국 토하기 전까지 내내 속이 편하지 않았을걸 생각하니 미련하고 안쓰럽기만 하다.


오전 내내 기운 없이 누워있던 아이는 자다 깨기를 반복하더니 오후가 되어 다시 살아난 듯 보인다. 문제는 일어나자마자 뽀로로 주스를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 안타깝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해 막아야만 하는 상황이니 안된다는 말만 돌려 돌려 계속 반복할 뿐이다. 일단 집에 있는 사과 주스라도 먹어보라고 줬다.


아무래도 목이 탔는지 벌컥벌컥 마신다. 이러다 또 게워낼까 싶어 일부러 조금만 컵에 담았는데 그걸 그렇게 들이 마시니 짠하기만 하다.


그래도 약기운이 도는 걸까? 더 이상 게워내진 않았다. 주스도 잘 넘기고 죽도 잘 먹어 다행이었다. 아이는 계속 누워 있겠다고 하지만 일단 소화가 될 때까지 좀 앉아있으라고 했더니 또 실랑이가 한 바탕 벌어졌다. 역시 이럴 땐 협박(?) 아닌 협박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TV 리모컨을 쥔 자가 곧 힘을 가진 자다! TV가 보고 싶다는 아이에게 앉아있어야 보여 주겠다고 하니 결국 옆에 와 앉는다. (사실 그러고도 바로 틀어주지 않았다. 이게 바로 권력의 힘 아니겠나. 훗!)


오늘 밤부터 내일까지 약을 먹이면서 잘 지켜봐야겠지만 그래도 아이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아오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인다. 옆에 누워있던 아빠를 향해 발길질을 날리며 깔깔거리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안심은 되었지만 어금니는 꽉 깨물고 있었다. 아오!)


아이는 또 부쩍 크려나 보다. 원래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부쩍 크던데. 하루새 얼굴이 반쪽이 된 것 같아 안 돼 보이지만 아픔 없는 성장이 어디 있겠나 생각하며 그저 아이를 지켜볼 뿐이다.


아이의 이번 주말은 다른 때 보단 스펙터클 하다. 팬티로부터 기저귀로의 회귀와 장염까지. 아무래도 당분간은 그냥 기저귀 생활을 해야 할 것 같다. 사람 마음 편한 게 먼저지 기저귀 떼는 거야 뭐 결국 뗄 수밖에 없는 거니까.


이래서 어른들이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하시는가 보다. 육아를 하다 보면 참 별게 다 자랑거리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갓난아이일 땐 목을 가누는 것부터 뒤집기에 성공하는 것. 조금 크면 '엄마, 아빠' 말을 하는 것.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 잘 걷는 것과 잘 뛰는 것.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잘하는 것, 기저귀를 떼는 것 등. 솔직히 '자랑거리'라는 것에는 '비교우위'의 마음이 숨겨져 있다. 어쩐지 내 아이는 특별한 아이 같이 여기는 조금은 과한 애정 어린 마음. 그런데 이런 마음들이 다 부질없다 여겨지는 순간이 바로 아이가 아플 때다. 그땐 딱 한 가지 마음만 남는다. '그저 건강만 해라.'


근데 사실 이 마음은 나 자신에게도 건네줄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 뭘 해야만, 성과를 내야만 가치 있게 여기는 게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이어서 괜찮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나에게 대하는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아이에게도 향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가족 모두 그저 건강만 한 걸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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