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갑자기 팬티 입기를 시작한 아이는 주중 내내 잘 입고 다니다 놀이터에서 바지에 실례한 뒤 다시 기저귀로 회귀했다. 주말부터 장염으로 컨디션도 안 좋았던 상황이라 우리도 굳이 아이에게 팬티를 다시 권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번주 내내 적절한 타이밍을 찾고 있었던 이유는 부모 상담 기간에 어린이집 선생님이 이번주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면 팬티 적응과 배변 연습을 본격적으로 시켜 보자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부터는 집에서 필히 팬티를 입혀 보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다시 팬티를 입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목요일 아침, 아이에게 슬며시 다시 제안해 보았다.
"아들, 우리 다시 팬티 입어볼까?"
"(웃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
이대로 물러설 순 없지.
"아들아, 지금 어린이집 친구들 중에 우리 아들 빼고는 다 팬티 입는데."
"OO도 입어?"
"그러어엄. OO도 팬티 입는데."
"OO는 트니트니 갈 때도 팬티 입어?" (트니트니는 문화센터 프로그램 이름이다.)
"응! 아빠가 이모한테 물어봤는데, OO도 트니트니 갈 때 팬티 입고 간데."
"......그럼 나도 입을래."
"정말? 그럼 오늘 입고 어린이집에 갈까?"
"아니!"
"(뭐..지?) 그럼 언제?"
"트니트니 갈 때."
"그래? 그럼 내일(금요일)까지는 기저귀 하고 토요일에 트니트니 갈 때부터 팬티 입을까?"
"그래."
그렇게 재도전의 실마리를 만들어 놓고 드디어 토요일을 맞이했다. 토요일 아침.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우리 집의 아침은 아이가 먼저 일어나 엄마를 깨우고 거실로 끌고 나가 TV를 보며 죽을 먹고 있었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씻고 간단하게 요기를 한 뒤 아내가 준비하는 동안 아이를 준비시켰다.
목요일 아침의 대화를 상기시키며, 분위기는 최대한 '오! 내 아들이 대단한 결심을 했구나! 실로 장하도다'라는 느낌을 고조시키며 팬티 입기를 재시도했다. 처음에 아이는 살짝 머뭇거리다가 '친구 OO'를 떠올리더니 이내 팬티를 입겠다고 했다. 극적으로 성사된 '우리 아이 팬티 적응기: 재도전 편'이 시작되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주말 내내 아이는 팬티를 잘 입고 보냈다. 토요일 문화센터에서 위기의 순간이 한 번 찾아오긴 했다. 문화센터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아이는 참지 못하고 바지에 실례를 했던 것이다. 다행인 건 다른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구석 어디쯤에 숨어서 했다. 얼른 상황을 수습하고 아이를 들쳐 매고 나와 화장실로 달려갔다. 옷을 갈아입히며 "괜찮아, 처음엔 실수할 수 있어"라는 말과 함께 아이를 최대한 안심시켰다. 땀 좀 뺐지만 다행인 건 이후에 별다른 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잘 보기도 했다.
일요일은 내내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하루를 보냈다. 나와 아내는 아이에게 진심을 담아 감격스러움을 표현해 줬다. 아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잘 때도 팬티를 입겠다고 했다. "아들아, 우리 잘 때 팬티 입는 건 좀만 더 연습하고 해 볼까?" 달래며 기저귀를 입혀 재웠다. 다행이다. 하마터면 새벽에 이불빨래가 발생할 뻔했다.
아이가 있기 전까진 전혀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다. 아이가 태어났어도 '그게 뭐 대수라고'라며 쉽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이에겐 작은 변화도 용기를 내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옆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안심시키고 북돋아 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를 통해 아이가 한 걸음 내디딜 수 있었다는 것에 찡한 감동이 밀려왔다.
아이를 보며 항상 나를 생각한다. 나에게도 작은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많았다. 퇴사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지금도 풀어내야만 하는 인생 숙제들 앞에 해법을 구해보지만 정작 필요한 건 '작은 용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들의 용기를 보며 내가 용기를 얻는다. 아들의 성장을 보며 나의 성장에 불을 지피게 된다.
이게 바로 육아의 묘미이지 않을까!
나는 매일 아들과 함께, 아들 덕분에 다시 성장하고 있는 아빠라는 게 감사한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