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한 주가 지나고 주말이 왔다. 아침부터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처럼 집에 물도 시원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모로 피곤했던 시간이었다.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다. 결혼 11주년. 아내와 연애했던 시간까지 포함하면 17년째 함께다. 참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오며 가장 고마운 건 어쨌든 오늘도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 며칠 단수가 되는 상황을 겪고 났더니 당연한 게 당연하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부부사이도 그렇다. '부부라서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확률이 높은 건 맞지만 그럼에도 착각해선 안된다. 부부관계는 공기처럼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워서는 안 된다. 언제든 관계를 지키기 위해 서로 애써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부사이야 말로 원수가 되는 건 삽시간이다.
요즘은 결혼도, 아이를 낳는 것도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시대인 것 같다. 그만큼 개인의 자아실현 욕구가 극명하게 커졌을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론 살아갈 방법이 막막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린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신혼 초 엉겁결에 집을 마련한 게 지금껏 내 집에 살 수 있게 해 줬다. 부동산에 대한 모든 규제가 심해질 무렵 딱 지금 집에 오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운이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집이 있다는 건 결혼생활에 보다 큰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둘 다 안정감을 원하는 성향이다 보니 적어도 우리의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현실의 버거움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근데 또 '안정감을 원하는 성향'이라고 써놓고 지금 내 모습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안정감을 원하는 사람이 퇴사하고 여태 근근이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돌아보면 아내가 나에겐 첫 번째 안정감이었다. 아내와 7년간 연애하며 불안정했던 시기를 잘 넘겼으니까. 그다음엔 집이 우리의 안정감이 되어줬다. 언제든 마음껏 쉴 수 있고, 어딜 가도 편안하게 돌아올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 그리고 정말 최악의 상황엔 처분할 수 있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거니까. 지금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안정감은 아이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갖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고생을 했던가.
물론 나보다는 아내의 고생이 말도 못 할 정도였지만. 마지막이다 싶은 심정일 때 깜짝 선물처럼 우리에게 찾아와 준 아이. 이 아이는 우리에게 기쁨이었고 축복이었으며 매일을 버티고 내일을 소망하는 이유가 되었다.
나에게 가족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가끔은 스스로 너무 매여있는 걸까 싶을 때도 있었다. 지금의 삶이 프리랜서의 삶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에 적극적으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종종 초청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선택의 기준은 아내였고 아이였다. '둘과의 시간과 맞바꿀 만큼 중요한가?'라는 생각이 늘 기준이 되었다.
덕분에 대부분의 필요한 만남은 평일 낮에 이뤄진다. 스스로를 '애데렐라'라고 표현하며 양해를 구한다. 가끔은 아쉬움도 있다. 주말에, 평일 저녁에, 참여해보고 싶은 모임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은 것은 그 시간만큼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결혼 11주년이라고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그냥 보통의 토요일처럼 아이와 문화센터에 가고, 쇼핑몰에서 맛있는 셰이크를 먹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조촐하게 요리를 하여 한 끼 저녁을 맛있게 먹은 것, 그것이 전부였다.
글쎄, 아내의 마음은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이 이상 바랄 게 없다. 무엇보다 이번 한 주는 '일상'을 다르게 보냈기에 더욱.
아이는 쑥쑥 크고 시간의 흐름은 해가 갈수록 점점 속도를 낸다. 현실 고민은 깊이를 더해가고 피로감은 더해가지만 가족이 있어서 견디는 요즘이다. 다른 어떤 이유도 필요 없다. 그저 함께라서 고맙고 행복하다. 부디 이 행복이 살아가는 날 동안 계속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