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은 May 31. 2023

나의 나무에게

자작시

나의 나무에게

                                                          

어느 날 내 안에 불안이 가득 차

내가 거센 파도 되어 하얗게 부서저 내릴 때

너는 내게 천천히 숨 쉬는 법을 가르쳐주었지

하나    둘     셋      넷     후우

차분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타일렀지


너의 그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들자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대하고 따스한 태양이

나를 향해 엄마처럼 아빠처럼 미소 짓는 것을 보았고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평화로움이

파란 하늘 위로 끝없이 펼쳐진 보드라운 구름들처럼

두둥실 두둥실 내 마음속을 날아다니는 것을 느꼈지

너의 존재만으로 나는 이렇게 온 세상의 신비로움에

흠뻑 취해서 자유롭게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지


차가운 물에서 걸어 나와 너에게로 걸어가는 이 길은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어린 풀잎들로 가득하고

미풍에 몸을 맡긴 어여쁜 꽃들이 향기롭게 인사했어

어느새 나는 아주 크고 우직한 참나무 앞에 서있어

숨이 멎을 만큼 무수히 많은 잎사귀들의 녹음(綠陰)이 

한꺼번에 나를 향해 별들처럼 쏟아지는 듯하고

나는 나무옆에 앉아 조용히 머리를 기대었어

그리고 이 꿈같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시간이 내게 온 것을 

마음깊이 감사하고 또 마음껏 기뻐했어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모든 불안과 의심들은

네 앞에서 하얀 파도 되어 부서져 흘러내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듯이 사라져 버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저 손을 들어 너의 심장에 가져다 대는 일

나와 똑같이 뛰는 심장을 가진 너를 온전히 느끼는 일


상냥하고 섬세한 너의 마음과 눈길이

잠든 내 영혼을 깨워 부드럽게 이끌어주는 것 같아

함께라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함께니까 뭐든지 가능하다고.

어쩌면 너는 내가 아득히 먼 옛날 심은 나의 일부가

한그루의 나무가 되어 내게 돌아온 것이 아닐까

내게 그늘과 사랑을 주기 위해 이 순간을 기다려온 것이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