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톱을 깎다가

새글 김경진 에세이시

by 새글

엄지손톱을 깎다가


세상 이치가 그렇다.

쓰일 곳이 있어서 생겨난 것이고

쓰일 만큼만 필요하다.

이유 없는 존재는 없다는 말이다.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있을만하니까 있는 것이다.

엄지가 짧고 굵고 투박하고 뭉툭한 이유는

가운데 있지 않고 첫 번째 자리에 있지만

무게중심을 다부지게 잡아서 다른 손가락들을

거느리는 역할을 무겁게 하라는 거다.

첫 번째로 태어나 울퉁불퉁하고 성질 거칠지만

어깨 움츠리지 못하고 진중하게

늘 가장이어야 하는 나처럼

엄지손가락은 앞으로도 뒤로도

나머지 네 손가락 어디에도 무리 없이 닿는다.

세상 순리가 그렇다.

없어서는 안 돼지만 없임을 받아도

티를 내지 않는 존재가 있다.

세상인심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야 말로

찐 존재라는 것을 망각한다.

엄지손톱을 깎다가 있을 곳에 있는

같은 존재라고 이심전심이 되다니

못난 것들은 서로 통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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