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에 대처하는 자세

새글 김경진 에세이시

by 새글

무례에 대처하는 자세


상수리나무에 단풍이 들었다. 숲에서 가장 먼저 가을과 이별하려 한다. 여름내 모든 힘을 다해 만든 상수리를 털어내고 기진맥진한 잎들이 나무와 결별을 준비하고 있다. 나뭇잎은 광합성으로 전부를 다 쏟아 내고 나면 결실이 좋거나 시원치 않거나 상관없이 비굴하지 않게 된다. 좋은 결과만 있을 수 없다. 결과가 좋아야만 인정받아서는 안 된다. 상수리 열매의 실함과 수량으로 나뭇잎의 노고를 평가하려 드는 것은 무례한 셈법이다. 상수리 잎의 최선에 경의를 표한다.


누군가의 박한 평가와 참견에 모욕감을 느낄 때가 자주 생기는 계절이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그동안 살아온 날들에 대한 자취가 정성적으로 또는 계수화되어 평가를 받게 된다. 나름 성심을 다해 살아온 시간이 내가 아닌 타인의 눈높이에서 다뤄지게 된다. 나의 정성과 노력은 주관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결과물만이 객관적인 평가의 대상으로 입에 오르내린다. 나의 최선을 나만이 정당하게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칭찬에 인색한 평가가 살아온 시간을 초췌하게 한다. 그러나 스스로가 초라해지면 안 된다. 나는 나에게 치열했음을 알고 있지 않는가.


무례 앞에서 참을 수 없다는 변명은 하지 않기로 한다. 참지 못하겠거든 회피하면 된다. 최선을 하지 못하면 차선을 택하면 된다. 울화는 생기겠지만 수습하지 못할 파탄을 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제풀에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것이 좋다. 무례하게 굴다 응하지 않는다고 날뛰게 하면 통쾌하지 않겠는가. 역할을 다하면 분수를 알고 스스로 나무에게서 떨어지는 상수리 나뭇잎을 무례 앞에 깔아놓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도 무례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스스로 무례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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